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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단상

[단상](개혁33) 신학 공부 중인 형제와의 논쟁(7)

맑은바람청풍 2021. 4. 25. 07:54

[단상](개혁33) 신학 공부 중인 형제와의 논쟁(7)

이어지는 8건의 글은 NS교회에서 함께 고등부 교사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 중이던 어느 형제와 공동목회 분란에 대하여 논쟁을 폈던 내용입니다.

교회홈페이지 소리방에 개혁을 주장하는 글을 올리자 N형제가 격한 질책을 발했습니다.

소리방에서 2번을 더 논박하다가, 설득이 여의치 못할 것 같아서, 개인 이메일로 전환하여 계속하였습니다(‘소리방에 있던 논박은 스크랩해 두지 않았습니다).

초기에 N 형제는 담임목사편을 강력히 옹호하면서 개혁진영을 질타하는 논조였습니다. 글의 뉘앙스가 나는 신학을 공부 중인데 일반성도가 뭘 아느냐?’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나마 나중에 다소 유화적인 논조로 변했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것입니다.

당시 오고 간 이메일을 통하여, 교회운영과 개혁 사이의 진통에 대한 작은 통찰 정도는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논쟁의 진행과정과 논조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고간 이메일 날짜순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보낸 메일(3)> (2002.07.09.)

 

NSSoo 형제님, 마음고생 많았지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니 고맙습니다. 육체적 나이에 비해 정신연령과 영성이 워낙 낮은 위인이라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다시 한번 너그럽게 봐 주세요.

 

그리구 꼭 변명하고 싶은 말은, 나는 원래 투사가 아닙니다. 지금 이러는 것, 성격과 맞지도 않고 너무너무 싫습니다. 게다가 혼자만 주님 마음을 확실히 깨우쳤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나의 믿음 수준에서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기대로 이러는 것입니다.

 

왜 누구를 원망하며 믿음생활 하려 하겠습니까? 그냥 아무 의심 없이 서로 믿고 격려하며 함께 작은 천국을 이루어나가기를 얼마나 원한다구요.

 

헌데, 자꾸만 교회가 말씀을 벗어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어요. 그것도 한 사람 때문에, 너무 많은 지체들이 고통 당한다는 생각 지워지지 않아요. 사랑으로 감싸야 하지만, 당사자는 미동도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분만 마음 돌리신다면, 깨우치신다면 정말 우리교회 금방 회복된다고 믿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픔을 하소연하는 것은 단순한 불평으로 치부되고 그 책임이 모두 평신도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원인제공자는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고 진실을 토로하는 자는 분란주의자로 지탄받아야 하는 현실이, 과연 성경적 원리에 부합되는 것인지에 대해 강한 의문이 듭니다. L 목사님은 이해받고 보호되어야 하며, 그분으로 인해 상처받아 교회 떠나고 지금도 아파하는 분들은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절대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마도 관점의 차이겠지요. 목사님 편지를 보내달라는 부탁을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은 세 분 목사님들과 대화할 때, 목사님들도 보여달라고 하셨지만, 거절했었습니다. 너무 적나라하기 때문에 보여드리기 곤란하다고 말입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목회하실 형제님께 도움이 된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까지는 없을지 모른다구요.

 

불필요한 기우인지는 알지만, 한가지 약속을 부탁하면서 첨부하겠습니다. 사랑의 마음보다는 충격요법으로 사용키 위해 강하게 표현된 글이라서 그렇습니다. L 목사님께는 보여드리지 마세요. 또 한가지 밝히고 싶은 것은, 우리 인생은 어차피 선택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때론 쉬운 선택일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심히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닥치기도 합니다(이삭의 번제를 참고하면 도움이 되지요).

 

우리교회의 현실도 바로 이 상황이라고 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구도에서 살펴 볼 때, 우리는 지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어려운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둘 다 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차피 양자 모두 선택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려야 할 순간, 참 막막하지요. 형제님이나 KimGH 자매님 말씀이 옳다고 동의하고 또 이해합니다. 목사님도 용납하고 사랑으로 감싸야지요.

 

하지만 이게 평신도와 목사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라면, 달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오히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과감하게 평신도를 택하렵니다. 왜냐하면 평신도가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L 목사님 한 분을 보호하려다 이로 인해 잃게 될 수많은 평신도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결론일 것입니다(지금까지 L 목사님으로 인하여 너무 많은 양떼를 잃었습니다. 너무 시기가 늦었지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담겨진 뜻을 잘 알지요? 막내에게 정이 더 갈 수밖에 없듯, 길 잃은 양에 대한 주님의 마음을 깨우쳤을 것입니다. 갈등의 순간, 우리가 꼭 기억해야만 할 교훈일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 이상,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 인간은 피치 못해 선택하지만, 주님은 우리와는 달리 둘 다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L 목사님은 우리가 버리더라도 JU에서 주님이 다시 쓰실 것입니다.

 

편지에도 약간 언급되어 있습니다. 모든 욕심내려 놓고 JU로 들어가시라는 권고의 진의입니다. L 목사님을 JU로 들어가시라는 것은 야박한 것 같지만, 요나서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나를 바다에 버림으로써 배(NS교회) 안의 사람들과 요나(L 목사님) 모두가 살았다는 교훈을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문제, 수많은 사람들의 영생이 달린 막중한 문제를, 쉽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며, 작은 것(목회자 한 명)보다는 큰 것(평신도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을 더 귀히 여길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장성한 자인 목회자분들께서 마음 찢으며 처방을 내려야 할 일인데, 이게 너무 지연되고 있습니다. 아니 아예 생각조차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목회 잘 되고 있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 내에 분란이 있는 것입니다. 이 분란을 말씀의 조명을 받아가며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영적 지도자의 마땅히 해야할 일일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아주 강력히 말입니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반복하여 거론하는 참 이유인 것입니다.

 

정말 끝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지요. 동부 말입니다. 동부는 영적으로 하란일 수 있습니다. NS교회의 나아갈 영적인 사역에서 얻을 것은 하나도 없고 무조건 잃을 수밖에 없는 곳 말입니다.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더 많이 잃을는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까지는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겠지요? 여하튼 열심히 공부해서, 아무도 부인할 수 없고 자타가 공인하는, 참 목자로 우뚝 세움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샬롬.

 

왜 촌스런 믿음이라고 했는지 알겠지요?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믿음이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어리석음이 너무 적어 탈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나의 정신연령에 맞게 더욱 어리석어지기를 간구할 뿐이랍니다.

 

많이 망설였습니다. 회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 끝에 회신합니다. 그러면서도 잘 하는 일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충분히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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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한 세 번째 편지] ‘목회자 편지

 

○○○ 목사님! 주님의 인도하심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목사님을 만난 이후의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목사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기에 감사의 마음이 드는 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픔을 겪었기에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생각한다면 더욱 알차고 보람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로 유지되지 못하였던 점이 가슴 아프다 하겠습니다.

 

<이하 생략>

 

 

목회자 편지는 처음에는 NSSoo 형제에게 보내지 않겠다.”고 했었으나 상호 간 의견이 다소 좁혀진 듯하여 결국 보냈습니다. 편지가 워낙 길어서 <<[단상](공동목회) 09. L 목사에게 드린 질문(1)~(4)>>로 나누어 게재되어 있으니 전문(全文)’은 그것을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