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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단상

[단상](개혁34) 신학 공부 중인 형제와의 논쟁(8)

맑은바람청풍 2021. 6. 13. 18:00

[단상](개혁34) 신학 공부 중인 형제와의 논쟁(8)

이어지는 8건의 글은 NS교회에서 함께 고등부 교사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 중이던 어느 형제와 공동목회 분란에 대하여 논쟁을 폈던 내용입니다.
교회홈페이지 소리방에 개혁을 주장하는 글을 올리자 N형제가 격한 질책을 발했습니다.
소리방에서 2번을 더 논박하다가, 설득이 여의치 못할 것 같아서, 개인 이메일로 전환하여 계속하였습니다(‘소리방에 있던 논박은 스크랩해 두지 않았습니다).
초기에 N 형제는 담임목사편을 강력히 옹호하면서 개혁진영을 질타하는 논조였습니다. 글의 뉘앙스가 나는 신학을 공부 중인데 일반성도가 뭘 아느냐?’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나마 나중에 다소 유화적인 논조로 변했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것입니다.
당시 오고 간 이메일을 통하여, 교회운영과 개혁 사이의 진통에 대한 작은 통찰 정도는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논쟁의 진행과정과 논조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고간 이메일 날짜순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받은 메일(4)> (2002.07.10.)

 

감사합니다. 저를 신뢰해 주셔서

 

모든 아픔을 다 이해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형제님의 글속에서 형제님의 아픔과 교회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NS교회 지체들의 교회 사랑이 무척 크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자기 욕심으로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반드시 경계되어야 마땅합니다. 다른 이의 달지 않겠습니다. 형제님의 부탁대로 목사님이나 다른 분들께는 일절 보이지 않겠습니다.

 

다른 이의를 달만한 것이 없습니다. 목사님의 행동은 무엇보다 목사님이 가장 잘 아시고, 하나님이 아시겠지요. 어떤 점에서 지체들로부터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것은 목사님 스스로 뿌린 씨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만 조심하여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목사님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미국에서 이런 실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는 정신병원에 정상인 10명을 정신병력을 담은 기록과 함께 입원을 시켜서 의사들로 관찰하게 했답니다. 6개월간의 입원동안 단 한명의 의사도 10명의 환자가 정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오히려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 사람들 정상인데 왜 여기 있어요?" 우습죠. 인간의 삶이 이런 아이러니 투성이인 것 같습니다.

때론 우리의 관찰이 매우 정확한듯하지만 때론 내가 가진 한계나 경험 때문에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혹 말입니다. 목사님이 변하시기를 원하시는데 몇 지체들의 이런 견제 때문에 그것이 가져다주는 오해 때문에 더 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살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멜에서 햇볕 이야기 드렸지요. 정말 목사님으로부터 그런 변화를 기대한다면, 햇볕이 필요합니다.

이런 실험도 있었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다 아무 의미없는 검사를 실시하고 난수표에서 무선추출된 학생들을 학교에다 통보하기를 "이 아이들은 정말 특별한 아이들이니 주의 깊게 관찰해보세요"라고 말입니다. 1년 뒤 그 아이들은 정말 특별한 아이가 되어 있었답니다.

 

이것을 "피그말리온효과"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 왕이 아름다운 여성을 조각해놓고 그것을 매일 정성스럽게 닦고 이뻐하였더니 신들이 그에게 정말로 그 조각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신화에서 유래한 제목이지요.

우리에게 좋은 처세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제가 가까이 뵈온 목사님은 목자의 심정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다만 그분의 인간적 한계가 어떤 다른 분들에게는 큰 아픔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존경받는 목회자들에게는 다 이런 문제가 있구나 생각이 됩니다.

어떤 분의 개인적 프라이버시라서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이 말이 다른 곳에 퍼지지 않으리라고 형제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어제 저희 학교 전도사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전도사님이 사역하는 교회가 SJeK 목사님이 시무하였던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분에 대한 존경에 마음으로 근황을 여쭈었더니 그곳 교회의 성도들의 S 목사님에 대한 평은 마치 지금의 NS교회와 흡사하더군요.

 

성도들이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는 교회의 분위기를 전해들은 저는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목회자 정말 어려운 길이구나, 그들도 사람일 텐데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은 누가 목회하여주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제가 목회자의 길로 접어 들었기에 목회자들의 아픔에 대해서 보다 평신도들이 듣지 못하는 많은 것들은 듣게 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목회자는 속이 썩어서 텅비어버린 고목나무와 같다", 겉모양은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자신의 아픔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외로운 존재라구요?

저로서는 참 고민과 숙제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아직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이 길이 두렵기만 합니다.

형제님! 저도 목회자의 길을 갈 사람으로 어쩔 수 없이 목사님의 편을 들었나봅니다. 그러나 형제님의 교회를 향한 애정과 사랑은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NS홈피에 실은 글처럼 갈등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좀 힘드시겠지만, 그 가운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이후 NSSoo 형제는 안수 받고 목회활동하는 것으로 압니다. 인터넷 어디선가 한번 접한 듯도 한데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함께 고등부 교사생활할 때, 이미 성경을 100독 이상한 신실한 성도였으니, 지금쯤은 오직 성경에 충실한 목회자로 바로 섰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