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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49] 정말 1세기 이전에 신약성경이 “성경”으로 대접받았는가? 본문
[의문 049] 정말 1세기 이전에 신약성경이 “성경”으로 대접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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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후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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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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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이전에 이미 신약성경이 성경으로 대접 받았다.’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대한 반대 의견을 어느 사이트에 게재한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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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사도들 생전에 이미 서신서들이 ‘성경’으로 대접받았다?
[이의] 사도들이 생전에 성서를 선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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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하여 어느 분께서 고전12:10절의 “영분별의 은사”를 근거로 ‘1세기 이전에 신약성경이 성경으로 대접받았다.’는 확정적 선언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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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고후3:15-16절도 가볍게 거론되었는데, 여러 주석 내용 등, 세부적인 부분을 인용하며 상세히 논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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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후3:15-16절에 대한 몇몇 주석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1세기 이전 신약성경의 확정’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몇몇 주석의 내용들을 인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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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전문 학자들의 주석임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들은 많은 하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너무 단세포적인 논리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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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 수 있다는 것인지, 앞서 제기한 2번의 ‘이의’에 이어, 최종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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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정리해 두어야 할 개념 = 역투사(逆投射) 역사(과거) 해석의 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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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사 역사해석’이란 ‘현재의 인식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역사해석 방식’을 지칭하는 개인적 용어입니다. 즉 어떤 역사적 사실을 그 사실이 발생했던 당시의 인식과 정황으로 해석하지 않고 현재의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할 경우 대부분 부정확한 이해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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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근한 사례 1 : 어느 조손(祖孫) 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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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 “내가 어렸을 때는 밥을 제대로 못 먹고 굶주렸단다.”
- 손자 : “거 참 이상하네? 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고 빵 먹으면 되는데, 왜 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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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근한 사례 2 : 율곡 선생의 십만양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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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사람들 : 우리가 살던 시절에는 율곡의 방책을 실행할 의식(정세판단력)도 의지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 율곡의 생각은 오히려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가까웠다.
- 후손들 : 율곡 선생의 십만양병설이야말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혜지(慧智)이다.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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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해설 : 위 2가지 사례는 전형적인 ‘역투사 역사해석’에 빠지기 쉬운 예입니다. 역투사 해석방식을 무리하게 적용할 경우, 과거의 사실인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경계를 요한다 할 것입니다. ‘사례 2’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별지로 첨부한 “[時評] 제주해군기지와 십만양병설”을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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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시에는 역투사 해석의 우려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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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빈번하게 역투사 기법을 적용하는 것 같아 걱정일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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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과의 논쟁이 바로 그것이었으며 아래 살펴볼 주석류 등의 해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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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학자들과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역투사 성경해석’의 오류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성경을 지나치게 신성시 하는 과도한 종교심 때문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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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자체의 영감성을 부인해서는 안 되지만, 여기에 축자영감설로 포장하여, 사실적 판단을 게을리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 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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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성도들의 성경관을 이렇게 요약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케 하셨으므로, 기자들은 한 자도 틀리지 않게 기록했으며(마치 기계적 영감설과 동일한 인식), 기록과 동시에 성경으로 인정 및 대접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보존해 주셨다. 따라서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되고 아무 의심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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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을 저는 ‘정경적 성경관’이라 부릅니다. 이 개념은 매우 신실한 고백인 것 같지만 거기에는 매우 미묘한 전제조건(前提條件)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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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경이 형성되기 이전에도 정경뿐만 아니라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다른 문서자료들이 함께 존재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전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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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형성사는 ‘구약과 신약이 성경으로 확정되기 이전의 기간’이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세심한 성도라면 결코 무시하지 않을 ‘정경확정 이전의 시기’를 간략히 요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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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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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피상적인 성도들은 구약성경이 본래부터 39권으로 형성되어 그대로 보존되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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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율법서가 BC 444년경에, 예언서가 BC 400-200년경에, 성문서가 BC 165-100년경에 정경화 완료된 것으로 봅니다만, 사실 유대인들은 수 천 년 간 39+a의 경전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 왔으며, 기원전 약 3세기부터는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을 가지고 신앙생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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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예수님 당시에도, 비록 히브리 성경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70인역이 가장 대표적인(당연히 권위를 지닌) 구약성경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70인역은 정경 39권과 외경 12권으로 이루어진 ‘정경+외경 구약성경’입니다. 학자에 따라 외경의 권수를 15권, 13권, 7권으로 다르게 셈하기도 하지만 이는 삽입 또는 부록으로 간주하느냐 아니면 별책으로 간주하느냐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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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39권의 정경을 확정한 것은 AD 90년 얌니야 회의에서입니다. 이 사실은 ‘유대인들도 구약의 각 권들이 기록되자마자 성경으로 인식 및 대접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수천 년 간 39+a권의 성경을 가지고 있다가 AD 90년에야 비로소 39권으로 확정했다는 것입니다.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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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천주교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70인역을 근간으로 하는 유명한 제롬의 불가타성경을 구약성경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공동번역 성경은 39+7권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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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1517년 종교개혁으로부터 시발된 개신교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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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천주교의 구약성경(39권+7권)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구약성경(24권=39권)을 정경으로 추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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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점은, 비록 유대교가 39권의 구약성경을 확정한 것은 AD 90년이었지만, 개신교가 39권의 구약성경을 확정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부터라는 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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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구약성경이 확정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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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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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에 따라 다소 시차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대체적으로 바울 서신들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49년 갈라디아서를 필두로 60년 전후에 13개 서신들이 다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복음서들과 공동서신서들이 기록되었고,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서 및 계시록은 가장 늦은 90년대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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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신약 정경이 기록되기 시작한 1세기 중반 이후부터 2-3세기에 이를 때까지, 도마복음을 비롯한 수많은 신약외경들과 위경들이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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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이 최종 확정되기까지 신약 기록물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오늘날 정경에 포함된 일부 성경들(특히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히브리서, 요2/3서, 유다서, 계시록 등 7권)에 대한 반대 견해가 심심치 않게 표출되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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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란의 시기를 거치고 난 후 AD 397년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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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도들도 오늘날 우리가 아는 27권만으로 신앙생활 한 것이 아니라, 27+a의 기록물들을 가지고 신앙생활 했습니다. 물론 정경 27권을 주도적으로 받아들였고 외경들은 크게 경계하며 경원시했을 것입니다(외경의 하나인 ‘디다케’라는 12사도 교훈집이 상당히 권위있는 기록물로 취급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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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초대교회 성도들도 신약의 각 권들이 기록되자마자 ‘성경’으로 인식 및 대접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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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 및 신약 성경 형성사 이해에 관한 주의사항
이 성경확정기간의 문제는 그 당시의 정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시기의 문제를 오늘날의 지식 즉 ‘정경적 성경관’(오직 66권만 성경이라는 인식)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던 ‘역투사 역사해석의 위험성’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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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조하지만 정경으로 확정되기 이전의 상황은 그 당시의 상황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만 합니다. 절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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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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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에서 살폈듯이 구약과 신약 모두 성경으로 확정되기까지의 기간이 존재했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거의 모든 성경형성사 관련 책에서 다루고 있습니다만, 간략히 요약된 내용 2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직접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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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daum.net/ipssen/11422879 「경전걸어온발자국」의 ‘성경의 정경화’, ‘외경이란?’
○ http://blog.naver.com/hongju1897/80055375043 ‘구약성서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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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관한 주석 해설들】
▲ 호크마 주석 : “… ‘다른 성경’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 서신과 성경을 구별하여 ‘또 다른 종류의 성경’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사도들은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을 믿기 때문에(1:20; 딤후3:16,17) ‘다른 성경’이라 함은 베드로가 바울 서신을 구약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성경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Robertson, Green, B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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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P 성경주석 신약(p.760) : “‘다른 성경’이라는 어구는, 바울 서신이 정경에 포함되거나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의 논거로 사용될 수 있다. 베드로의 가르침(벧전 1:10-12; 벧후1:19-21; 3:2)은 바울 서신이 정경으로 받아들일 만한 요건을 갖추었음을 보여 준다(저자의 사도적 권위와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쓴 것으로는 고전2:13; 4:17; 고후13:3-10; 살전2:13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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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P 성경배경주석 신약(p.846-847) : “1세기 말쯤 되자, 또 다른 초기 그리스도인 저자(클레멘트1서)는 바울의 서신들이 영감되었다고 주장했다. 바울의 초기 저술은 분명히 베드로가 죽기 전에 수집되지는 않았지만, 베드로는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바울의 저술 일부를 알았을 것이다. 요세푸스와 다른 저자들은 유대교가 완결된 정경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유대인 집단(쿰란 공동체 및 칠십인역의 여러 개정판을 사용하고 있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성경과 다른 교훈적인 문헌들 간의 구분에 대해 유동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몇몇 학자는 바울이 쓴 것을 성경과 동일시하는 이러한 진술을, 베드로후서가 베드로 사후에 쓰여졌음을 찬성하는 논거로 정당하게 사용하긴 했다. 하지만 베드로가 바울의 사도적 지위를 받아들였고 따라서 바울의 저술 일부가 선지자적(예언)으로 영감되었을 가능성을 받아들였다면, 진짜 베드로가 바울의 저술을 성경으로 본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지자적으로 영감된 많은 글 중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많았다(용어 해설에 나오는 ‘정경’을 보라). 베드로가 이 말을 썼다면 이 말은 당시로서는 주목할 만한 통찰을 반영한다.
▲ 브니엘성경연구소 발행 스마트폰 버전 ‘바이블렉스’의 ‘성경본문해석사전(그라페 해설) : “벧후3:16에서 벧후3:15과 함께 보면 사도 바울의 편지를 구약 경전과 동일한 반열에 드는 것으로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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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해설 1 : 위의 주석류들은 ‘역투사 성경해석의 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경에 익숙한 현대 성도들의 지식을 그대로 성경해석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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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해설 2 : 베드로 후서의 문체가 베드로 전서와 다르기 때문에 베드로 후서를 다른 사람이 기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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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했으며 벧후3:15를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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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베드로가 사도 바울을 언급하여 그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음을 증거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그와 같은 중상모략의 기회를 근절시키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나에게는 본서가 베드로 자신에 의해서 직접 쓰여졌다기보다는 어떤 다른 사람이 베드로의 마음과 일치되게 본 서신을 저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말을 결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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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바울 서신을 “성경”으로 인정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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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위 주석류들처럼 해설해서는 곤란한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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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서신서들의 기록연도와 사도들의 생존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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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과의 토론시에 상세히 밝혔지만, 다시 한번 기억을 되살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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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49년 갈라디아서를 시작으로 대략 60년대 초중반까지 모두 13편의 서신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64년 또는 67년에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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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베드로 후서는 66-69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부 학자들은 120-130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64년 또는 65년 또는 67년에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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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기록연도와 순교연도에 약간의 오차가 존재하지만, 대략적으로 바울의 서신들을 베드로가 읽었을 가능성은 높은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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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신빙성은 별 문제가 없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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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 “다른 성경과 같이”에 대한 해석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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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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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포스’는 실명사로 사용될 때는 ‘남은 자, 나머지’의 뜻이며, 형용사로 사용될 때는 ‘남아 있는, 다른’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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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어의 ‘남아 있는, 나머지’ 등의 의미를 부각시켜 ‘바울 서신서 이외의 신약성경’을 지칭한다고 해석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십상입니다(위의 주석류들이 바로 이 유혹에 넘어간 예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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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단어는 직접 수식하고 있는 “성경”이라는 단어와 연계하여 해석할 때라야 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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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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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페’는 단수로서 ‘성경, 편지, 기록물’의 뜻이며 복수는 ‘하이 그라파이’입니다. 대부분 단수는 성경의 일부, 복수는 성경 전체를 나타내지만, 간혹 단수도 성경 전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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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실은, 신약성경에 51회 사용된 ‘그라페’는 단수와 복수를 불문하고, 전적으로 ‘구약성경’, 그것도 ‘39권+12권인 70인역’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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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합니다. 본문에서의 “성경”은 오늘날 신약성경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 사용된 “성경”은 항상 구약성경을 지시하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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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위의 몇몇 주석들은 아주 큰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 근거도 없이 〔바울의 서신서 이외의 기록물들을 마치 ‘다른 성경=또 다른 신약성경’인 양 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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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이전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여러 기록물(후일 신약성경으로 확정된 것들)을 유익하고 감동된 기록으로 수용은 했으나, 구약성경과 대비되는 신약성경으로 취급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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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본문의 “성경”은 이를 수식하는 형용사 “다른”과 연계 해석하여, ‘다른 성경=구약성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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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신약성경에서 “다른 성경”이라는 단어가 요19:37에 한번 더 나옵니다. 여기서 “다른”은 ‘헤테로스’로서 벧후3:16절의 ‘로이포스’와 상이한 단어이지만 의미는 동일한 것 같습니다. 정확한 단어 의미는 학자들의 견해를 들어봐야겠지만, 요19:37의 “다른 성경”은 명백하게 ‘구약성경’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슥12:10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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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만약 베드로 사도가 기록한 본문의 “성경”을 ‘신약성경’으로 해석할 경우, 아래와 같은 매우 치명적인 논리적 하자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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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베드로를 비롯한 일부 사도들이 “영분별의 은사”로써 복음서와 바울 서신과 공동서신을 ‘신약성경’으로 간주했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교회에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논쟁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사실은 감출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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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형성 과정에서 논란이 제기 되었던 기록들에 관한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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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로구메나(Homologoumena) :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진 22권. 4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14권(히브리서 포함), 요한1서, 베드로전서, 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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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 : 일부에서 논란의 대상으로 삼으나 그래도 널리 채택된 5권.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2,3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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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타(Nota) : 가짜 책 또는 사생아 같은 책. 바울행전, 헤르마스의 목자, 베드로 계시록, 바나바서. 디다케(12사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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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해설 1 : 이를 분류한 유세비우스는 요한계시록을 노타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틴 루터도 요한계시록 인정하기를 꺼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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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해설 2 : 신약 외경의 수는 학자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그 일례는 아래와 같습니다.
- 복음서 40권, 행전 7권, 서신서 4권, 묵시록 10권, 시가서 2권.
- 복음서류(도마복음 등 17종), 행전류(바나바 행전 등 28종), 서신류(사도들의 편지 등 8종).
사도들이 미리(1세기 이전) ‘영분별의 은사로써 신약성경’으로 인정했는데(이런 회의를 한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불과 몇 십 년도 되기 전에 ‘성경이다 아니다.’의 논쟁이 시작되어 4세기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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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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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는 ‘~와 같이, 마치~처럼, ~할 때에, ~와 동일한 방식으로’의 뜻입니다. 이 단어 “같이”를 ‘동일한’(=)의 뜻으로 해석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한 것 같습니다. ‘마치~처럼’으로만 해석했더라도 이러한 혼돈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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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성경과 같이”가 아닌 “마치 다른 성경처럼”으로 해석했더라면 위 주석들의 오류는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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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베드로 사도가 의도했던 본문의 뜻은 ‘일부 사람들이 다른 성경 즉 구약성경을 억지로 또는 함부로 풀려고 했던 것처럼 바울 서신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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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서신이 신약성경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바울 서신도 억지로 풀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설명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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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서신을 신약성경으로 간주해야 할 절박성’이 전혀 없는 올바른 해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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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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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하게 살펴봤습니다만, 실제적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빠지기 쉬운 ‘역투사 역사해석의 유혹’만 경계한다면, 아주 간단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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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본문을 오늘의 우리 생각이 아닌, 1세기 성도들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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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는 바울의 서신들을 읽었고 그 내용이 참으로 귀하다는 것까지는 인정했으나, 감히 ‘성경’으로 격상시키려는 마음을 먹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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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유대인들의 구약성경관은 오늘날 우리 못지않게 경건했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인 인증절차를 거치지 않은 바울 서신들을 구약성경과 동등한 신약성경으로 선포할 배포가 없었을 것으로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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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51회의 ‘그라페’가 오직 ‘구약성경’을 지칭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1세기 이전의 신약성경 대접’ 이론의 무모함은 입증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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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비록 1세기 이전에 신약성경 기록물들이 ‘신약성경’으로 확정되고 대접받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시기를 포함하여 4세기까지 성령님의 보이지 않는 역사로 인하여 꾸준하게 ‘신약성경의 정경화’가 진행되었다는 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긴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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