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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50] 성막 안에서의 음행?

맑은바람청풍 2017. 9. 4. 13:59

[의문 050] 성막 안에서의 음행?

 

25: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R. E. 프리드만(Richard Elliott Friedman)누가 성서를 기록했는가?”는 한번 읽어볼만 한 책입니다. 문서설(Documentary Hypothesis=모세오경은 서로 다른 저자들이 몇몇 옛 자료를 결합한 결과물이라는 가설)을 주장하는 내용이지만 무척 재미있습니다.

 

사실 축자영감설(Verbal Inspirations)은 설명되지 않는 난점들을 너무 많이 안고 있습니다.

 

영어나 한글 번역본만 보더라도 오늘까지”(22:14; 26:33; 47:26), “에돔왕들의 목록”(36), “이 사람 모세는”(12:3), “요단 저편”(1:1), “모세의 죽음 장면”(34) 등은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이외에도 무척 많습니다).

 

히브리 성경도, 야웨와 엘로힘의 규칙적 혼용, 특징적 언어 및 용어들의 사용 등, 한 사람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부분들이 무수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프리드만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 모세오경을 비롯한 구약성경의 상당수는, 모세계열 제사장들(무시사람들=Mushites=모세를 조상으로 여기던 사람들)과 아론계열 제사장들 간의 알력 속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옛 자료에 근거하되 자신들의 사상과 가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편집하였다. , 상대편 자료를 무시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인정 및 통합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조금 더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J문서 저자는 BC 848-722년 사이의 아론계열의 제사장()이다(남왕국에서 기록).

 

E문서 저자는 BC 922-722년 사이의 모세계열의 제사장()이다(북왕국에서 기록.

 

BC 722-587년 사이에 J문서와 E문서가 JE문서로 결합되었다.

 

D문서는 좀 복잡하다. 먼저 BC 622년 발견된 율법책은 신명기일 것으로 보이며 이 책은 요시야 왕과 힐기야 제사장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BC 609년 요시야가 죽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Dtr¹BC 587년 유다 멸망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Dtr²22년의 간격이 존재하지만 예레미야가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기 예레미야는 신명기/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상하/열왕기상하 등 7권의 소위 전기예언서 또는 신명기역사서로 집대성했을 것이다.

 

P문서는 BC 722-609년 사이에 JE에 대한 대안으로 쓰여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JEDP 자료들을 편집하여 오경을 만들어 낸 사람은 에스라일 것이다.

 

 

성경형성사의 핵심인 영감설과 문서설의 첨예한 대립을 한 편의 글로써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각자 스스로 연구하면서 살핀 후에 동의 여부를 표해야 할 힘든 작업입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동의할 수 없는 단편적 부분들이 몇 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를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민수기 25장은, J본문(1-5)P본문(6-18)의 혼합이라 주장하면서, 이렇게 부연설명합니다.

 

아론 자신은 이미 앞서 있었던 P 이야기에서 죽었으나(백성이 회막에서 울었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제 그의 손자 비느하스가 영웅이 되어 있다. 이스라엘 남자 한 명과 미디안 여인 한 명이 모세의 목전에서회막으로 들어갔으나, 행동을 취한 이는 모세가 아니라 비느하스이다. 그는 남자와 여자를 따라 회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행한 행동은 창으로 그 남자와 여인의 배를 꿰뚫을 만한 짓이었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처형할 수 있었던 것은, 제사장이 아니면서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자의 운명은 죽음에 처해진다는 것이 당연지사였기 때문이다. 비느하스에게 내려진 보상은 영원한 제사장직의 계약이다. 따라서 이 사제문서 이야기는 제사장직이 영원히 아론계열에 속함을 말하는 것이다.”(p. 270)

 

그의 주장인즉, 이스라엘 남성이 미리안 여인을 회막(성막) 안에 데리고 들어가 음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쟁점은 그들이 음행을 행한 장소가 회막(성막)인가 그 남자의 천막인가 하는 점인데, 프리드만은 회막(성막)’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8절의 그의 막그 남자의 천막입니다!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회막 또는 장막이 아닙니다! , 프리드만은 전혀 잘못 읽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저런 이유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치밀한 학자인 저자가 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억지스럽지만 이렇게라도 추측해 봅니다.

 

천막이나 장막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3개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미쉬칸 : ‘거처, 장막, 성막의 의미. 구약에서 약 140회 사용.

오헬 : ‘천막(tent), 거처의 의미. 구약에서 약 340회 사용. ‘정한 때/장소/모임을 뜻하는 모에드뒤에 위치하여 회막’(The Tent of Meeting)으로 사용.

쿱바 : ‘대형천막, 장막의 의미. 25:8절 한 곳에서만 사용.

 

위의 단어 중에서 쿱바를 너무 경직되게 해석한 것은 아닌지요? 이곳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다는 점(hapax legomena)을 과도히 중시한 것이 아닌지요?

 

대형천막은 큰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에서 가장 큰 것은 회막일 수밖에 없고, 또 오직 한 번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쿱바는 회막이다.’

 

그가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면 다음과 같은 무리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구약에서 성막, 장막으로 표기된 모든 곳에서 쿱바가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쿱바=성막/장막의 고유명사화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구약은 성막/장막을 뜻하는 미쉬칸140여 회 이상 사용할 뿐, ‘쿱바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둘째, 회막의 입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모세와 온 백성이 군집해 있습니다. 남자가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헤쳐 지나가서 회막 안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럴만한 강심장을 가진 자가 있을는지요?


셋째, “the tent”의 정관사(the)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정관사는 지정된 사물에만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성막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The Tent). 그러나 다른 천막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the tent).

 

그러나 박학다식한 학자가 이러한 기초적인 사항들을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 프리드만은 아론계열 제사장에 집중하다보니 이 부분을 깊이 따져보지 않고 가볍게 처리함으로써 오해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5장을 개괄적으로 읽으면 현장의 모습이 의외로 쉽게 그려집니다. 모세와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고 있음(6)(프리드만은 아론의 죽음을 애도하는 울음이라 했지만, 실제는 이스라엘의 음행에 의한 염병 확산에 따른 죽음이 두려워서 운 것임:9절 참조). 이스라엘 남자가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자신의 천막에 들어가서 음행을 함(6절 하반절). 비느하스가 회중에서 이탈하여 창을 잡음.(NIV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he left the assembly'라고 번역하고 있음)(7). 비느하스가 그 남자의 천막에서 두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임.

 

성경은, 그 남자(시므온 종족의 족장 시므리)와 그 여자(미디안 족장 수르의 딸 고스비)는 법궤가 있는 회막/장막(=성막) 안에서 행음하다가 죽임 당했다고 기술한 것이 아니고, 그 남자의 천막에서 행음하다 죽임 당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의문 : 비느하스가 들어가서 음행 남녀를 죽인 장소를 성막(회막/장막)’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 오히려 그 남자의 천막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