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바람소리
[의문 047] 사도들이 생전에 성서를 선별했는가? 본문
[의문 047] 사도들이 생전에 성서를 선별했는가?
) -->
) -->
신양성서는, 학자에 따라 각 권별 기록연도와 기간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AD 50-1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기간을 100년 이후까지 좀더 길게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 -->
그리고 기록된 각권이 교회에서 수용되다가 AD 397년경에 오늘날의 27권 정경으로 공인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물론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다양한 기록들도 많이 있습니다).
) -->
아무튼, 신약성서가 기록된 기간도 짧지 않았고 그것이 성서로 공인되기까지는 3세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 -->
이는 신약성서가 사도들 생전에 성서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
그런데 어떤 분의 애매한 주장을 읽었습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것이어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 -->
) -->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리켜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22:29)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10:40) 하며 사도의 권위를 역설했다. 예수께서 자기의 권능을 제자들에게 부여했으므로 예수의 사도가 교회를 대표하고 성서를 선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사도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도의 입장에서 다른 사도들이 기록한 문헌을 선별하는 데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정한 기준으로 삼은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다. 이를테면 예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했느냐 또는 기록 자체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기록되었느냐는 것이 성서 선별의 기준이었다.』(남홍진, 성서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p.208-209).
) -->
【위 인용글에 나오는 “사도”는 ‘속사도’를 칭하는 단어】라고 억지 부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주장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점 2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
먼저, ‘예수의 사도가 교회를 대표하고 성서를 선별하는 것은 당연했다’.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 -->
앞에서 아주 간략히 요약한 것처럼, 신약성서가 선별되는 데는 약 3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별의 방법 또한 특정한 인간 또는 집단이 강권적으로 지정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교회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령님의 보이지 않는 역사로 받아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 -->
혹시 벧후3:15절의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싶을는지 모릅니다.
) -->
그러나 이 구절은 ‘사도들 간의 신약성서 선별 내지 확정’ 구절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바울의 편지를 알고 있었고 또 읽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고, 나아가 그 내용이 무척 경건하다는 의미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무방하겠지만, 이 구절을 ‘성서 선별’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 -->
심지어 베드로 전후서가 베드로의 기록이 아니라(전승에는 베드로의 구술을 마가가 기록했다고 합니다) AD 125년 전후 어느 무명인의 저술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 -->
아울러 눅1:2절의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는 말씀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 -->
누가가 활동하던 시기(당연히 사도들 생존 기간 포함)에 다양한 저술들이 많이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후일 신약성서에 포함된 각 성경들의 일부와 포함되지 못한 여러 기록들이 혼재했을 것입니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는 어느 것이 성경이고 어느 것이 외경이라는 구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성경(정경)이 기록되기 이전이기도 합니다.
) -->
둘째, ‘그러나 사도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도의 입장에서 다른 사도들이 기록한 문헌을 선별하는 데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정한 기준으로 삼은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다’.는 표현도 살펴야 합니다.
) -->
신약성서의 정경화 과정에서 ‘사도성’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자신이나 사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이들의 기록이냐 아니냐가 제1의 기준이었습니다.
) -->
하지만 이러한 기준에 의한 정경화 논의는 1세기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생존기에는 이러한 일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
12사도들이 27권과 수십 권의 외경들을 모아놓고, 어느 것은 정경, 어느 것은 외경으로 선별하고 확정하기 위한 종교회의를 개최하지 않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 -->
) -->
그렇습니다.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주장합니다만, 합리적 논리성이 결여된 견해입니다. 한마디로, 위의 주장에 동의하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 -->
사도들 생전에 성서를 선별하여 확정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것입니다.
) -->
) -->
♣ 이의 : 사도들이 자신들의 생전에, 서로서로 성경들을 선별하고 확정하는 사역을 수행했다는 주장은 타당한 견해인가요?
) -->
'신앙의 여정 > 거룩한 의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문 049] 정말 1세기 이전에 신약성경이 “성경”으로 대접받았는가? (2) | 2017.08.14 |
---|---|
[의문 048] 바울 시대에 이미 구약과 신약이 구분되고 있었는가? (0) | 2017.07.24 |
[의문 046] 사도들 생전에 이미 서신서들이 ‘성경’으로 대접받았다? (0) | 2017.05.22 |
[의문 045] 모세의 장인 이드로에 관한 의문 3가지 (0) | 2017.04.30 |
[의문 044] 언제부터 이스라엘엘 왕이 에돔을 통치했는가? (0) | 2017.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