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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단상

[단상] 주의(主義, ~ism)에 주의(注意)해야 할 이유

맑은바람청풍 2017. 8. 1. 09:47

[단상] 주의(主義, ~ism)에 주의(注意)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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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나 침팬지 등 일부 동물들도 낮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지니며 때로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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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간과 시간을 아우르는 총제적인 사유능력은 인간만의 고유능력입니다. 이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것으로서 하나님의 형상”(1:26)의 일면을 상징한다는 것이 성도들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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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이름짓기(2:19)가 인류 최초의 사유능력 현시였을 것입니다. 일견한 것만으로 그 생물의 특성을 파악하여 적합한 이름을 지어준 아담의 능력은 심히 놀라운 바가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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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영적인 사유능력은 심각히(거의 제로 수준) 제한받게 되었지만, 지적인 사유능력은 원형대로 유지되어 온 것 같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류문화는 대단한 발전의 소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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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신사(精神史) 분야의 사유력은 많은 주의’(主義, ~ism)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불교(Buddhism)나 유교(Confucianism) 같은 종교는 물론이요, 각종 철학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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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으로 주의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이라 하며 하나의 의견을 뜻합니다. 이러한 모든 주의는 인간 사유능력의 결과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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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앙이라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소위 신학으로 알려진 학문 범위만 하더라도 수많은 주의가 존재합니다. 개혁주의(Reformism), 근본주의(Fundamentalism), 복음주의(Evangelism),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자유주의(Liberalism) 등의 사상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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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에도 칼빈주의(Calvinism) 및 알미니언주의(Arminianism) 등의 개념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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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독교 사상들과 개념들에도 거의 ‘~주의’(~ism)라는 접미어가 붙어 있으며, 당연히 인간 사유능력의 결과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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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의는 결코 전체를 아우르는 유일한 대표성을 지니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생적으로 다양하고 부분적이라는 것이 주의의 숨길 수 없는 속성이자 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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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신학(神學)이라는 용어 자체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신학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연구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인간으로서는 일정 부분의 제한을 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신학 역시 부분적이고 다양하다는 속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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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신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속하는 주의역시 부분성과 다양성이라는 이중적인 제한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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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계는, 그 어떤 학문도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원죄와도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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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들은 종교문제로 말다툼하지 말 것을 권면 받곤 합니다. 지당한 권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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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앙을 믿은 이들도 같습니다. 아무리 기독신앙 내에서의 주의라 할지라도, 독선적이고 단정적인 주장은 조심스럽게 절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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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부분성과 다양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확신의 강도와 무관하게, 불완전한 몇몇 인간들의 불충분한 이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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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강한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의 항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주장(주의)만큼은 명백히 성경적이고 따라서 하나님 편이다!”라는 확신을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확신 역시 독단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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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핀 바와 같이 주의가 지니는 부분성과 다양성이라는 한계 외에도, 유념해야 할 점이 더 있습니다. ‘주의에는 한번 빠지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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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花園)에 오래 있으면 꽃향기가 옷에 배고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구린내가 배듯, 어떤 일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친숙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때 우리는 친숙한 냄새에 호감 지니기 쉽고 그것에 강하게 집착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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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냄새의 범위는 꽃향기와 구린내를 전부 포괄해야 합니다. 꽃향기가 냄새 전부를 대표할 수도 없고 구린내를 냄새 범위에서 배제해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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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를 자주 접하면 그것이 좋아 보이고 알미니안주의에 호감이 가면 그것이 옳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모두의 범위는 성경의 범위 내에 존재해야 합니다. 칼빈주의나 알미니안주의가 홀로 성경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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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신학자나 목회자들의 애환이 읽혀집니다. 이들은 자신이 이수한 특정 신학을 지지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미 익숙해졌고 그리하여 편해졌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이 빠졌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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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속으로 다소 미심쩍게 생각되더라도 겉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냥 계속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속내를 표출하면 집단으로부터 경고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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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교단과 그들의 신학(교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반성도들은, 특정 교파나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은 이해들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성도들의 유익일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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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과 교리는 무척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그리고 명백히 부분적입니다. 이미 특정 신학(교리)에 익숙한 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신학의 부분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선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깊이 함몰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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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지 한 발자국만 옮겨 딛는 용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간 보이지 않던 더 넓은 세계가 저절로 펼쳐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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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주의’(~ism)로 칭해지는 특정 신학과 교리를 만날 때마다 세심하게 주의’(注意)하는 슬기를 지녔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