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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단상

[단상] 목회자들의 설교와 예화 – 이대로 좋은가?

맑은바람청풍 2017. 6. 26. 16:16

[단상] 목회자들의 설교와 예화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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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사전은 설교종교의 교리를 설명함 또는 그런 설명이라고 간략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좀 매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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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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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설교에 관한 신학적 정의가 별로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사변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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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다소 부정적인 관점으로 설교를 희랍의 궤변론자들(소피스트)로부터 유래된 수사법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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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날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설교는 부인할 수 없는 예배 핵심으로서 자못 최고의 가치이자 심지어 신령한 행위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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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성도들이 듣고 싶어 하는 설교는 신학/교리적으로 또는 학문적으로 분석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아주 단순명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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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란 성경 안에서 전문가들이 먼저 검토하고 이해한 것을 잘 정리하고 준비하여 성도들에게 전달해 주는 하나의 함께 및 서로 나눔이라는 것이 양식있는 일반성도들이 바라는 설교의 대강(大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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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 각 지역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설교들이 성경을 바르게 전달하는 함께 나눔’(일반성도들의 기대)으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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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마디로 판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각 지역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설교는 앞에서 말한 신학적 정의는 물론 일반성도들의 기대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형적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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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교회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설교란 단지 람보식 난사에 불과합니다. 목회자들은 마치 람보나 되는 것처럼 마음껏 아무 말이나 설교라며 난사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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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설교에 대한 파괴되지 않는 철옹성 방호벽을 미리 처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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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비판 없이 수용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추호라도 의심의 마음을 지니면 이는 돌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멸망당할 뿐이다. 교회 안에는 이런 불쌍한 이들이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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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만 이것은 궤변입니다. 왜냐하면 설교=하나님 말씀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려면 설교는 항상 옳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설교가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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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에서는 옳은 설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설교도 무수히 존재합니다. 이때 옳지 않은 설교는 절대로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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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설교가 옳지 않음에도 아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면 이단의 존재 필요성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이단들도 설교무지무지 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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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점은, 목회자들이 강변하는 설교=하나님 말씀의 등식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면, 일반성도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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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100% 수용의 대상이라는 주장은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 사악한 궤변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한 말(=전도=설교)까지도 덥석 믿지 않고 꼼꼼하게 성경에 비추어 살폈던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 태도(17:11)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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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종교개혁 이후 수백년 동안 무수한 목회자들이 이러한 엉터리 주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했고 불가사의 하게도 이것이 먹혀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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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현대의 대부분 목회자들은 설교에 대한 조심성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설교가 마치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면 되는 강연 내지 웅변으로 변형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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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목회자들은 설교를 통하여 성경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급급해졌고 이것이 곧 성경적 설교인양 착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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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목회자들은 설교를 철저히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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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목회자들이 설교의 이해를 돕겠다며 자주 사용하는 예화의 폐해도 짚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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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는, 예수님께서도 자주 사용하셨던 비유와 유사한 기능을 지니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매우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잘 활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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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목회자들의 설교에 등장하는 많은 예화들은 거의 대부분이 픽션이고 심지어 거짓인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에 기초한 예화는 극소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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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설교에 사용되는 예화는 매우 신중하게 취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성경의 인격성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이거나, 사실이 아니며 가공 내지 조작된 내용이거나, 교훈적으로 타당하지 못한 내용이거나, 또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라면, 예화로 인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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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예화들은 설교의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철저하게 망쳐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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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접했던 설교와 예화의 폐해사례를 아래와 같이 각각 의문, 묵상, 단상형식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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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 063] 이사야는 어느 시대에 활동했는가?

. [묵상] 선한 싸움은 무엇으로?

. [묵상] 하나님의 진짜 마음은?

. [묵상] 칭찬받을 만한 이유(1, 2, 3)

. [단상] 벼룩의 한계?

. [단상] 거지 강냉이 - 대박인가 쪽박인가?

. [단상] 난로 밖으로 뛰쳐나온 석탄의 운명은?

. [단상] 말은 참 잘 하는데...

. [단상] 배운 대로 하는 것일 뿐이데?

. [단상] 첫 월급에 눈독들이시는 하나님?

. [단상] 록펠러 십일조의 마력

. [단상] ‘쇠똥 십일조에 감동 먹으신 하나님?

. [단상]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대박이 하나님의 편애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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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들을 읽어보면, 목회자들이 얼마나 무신경하게 설교를 준비했으며, 전혀 엉뚱한 예화를 인용함으로써 어떻게 설교를 망쳤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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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이 설교를 엉뚱하게 오해하여 가볍게 처리해 버리면 말씀을 갈급하게 사모하는 일반성도들에게 악한 영향이 그대로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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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가 일반성도들의 신앙에 걸림으로 작용하는 위법(違法)’은 절대로 방지해야 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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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밝힌 바처럼 신학이 말하는 설교의 정의(설교=하나님 말씀)’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성경의 뜻을 바르게 살핀 내용을 함께 나누는 행위(진정한 설교)’는 교회에서 바르게 또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성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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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목회자들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장 뿐 아니라 성경과 대치되는 인간사상에 사로잡힌 악담들을 철저하게 제하여 버리고 오직 성령님의 조명하심에 힘입은 참 설교만으로 승부하는 진정한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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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목회자들로 인하여 느꼈던 진한 아쉬움을 떨쳐버리고, 신실한 마음으로 분발하여 준비한 귀한 설교들이 넘쳐나기를 간곡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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