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바람소리
[단상] 록펠러 십일조의 마력? 본문
[단상] 록펠러 십일조의 마력?
) -->
) -->
소위 유명하다는 목회자들의 설교나 책에, 약방 감초처럼 끼이는 것이 바로 ‘헌금’(특히 십일조)의 위력입니다. 목사가 말하는 대로 십일조 꼬박꼬박 잘 냈더니, 하나님께서 대박으로 갚아주셔서 소원 성취했다는 줄거리입니다.
) -->
그 중 최고의 압권은 미국 억만장자 록펠러 예화일 것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의 당부대로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철저히 했더니만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다는 내용입니다. 조금 세심한 분들은 막대한 재산을 사회사업에 헌납함으로써 병까지 나았다며 십일조의 위력을 한껏 부풀리곤 합니다.
) -->
성경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마6:24)을 분명히 하시면서, 성도에게 청렴한 물질관을 지니라고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성도가 헌금을 통해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많이 나누는 것이 옳습니다.
) -->
그러나 록펠러의 예화를 금과옥조로 여겨 엉뚱한 종교적 망상에 사로잡혀서는 곤란합니다. 이 예화는 은혜로운 것이 아니라 오해의 산물입니다.
) -->
몇 가지 따져 보겠습니다.
) -->
첫째, 록펠러의 예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보겠습니다. ‘십일조를 했더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르더라.’는 생각은 인간들의 케케묵은 ‘인과응보’ 사상입니다.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투자심리입니다만, ‘정성들여 설득하면 넘어가지 않을 신이 없다’는 속내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 -->
이 사상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보시고 그에 합당한 수준의 보상만 해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수동적인 위치에 계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 -->
둘째, 따라서 록펠러의 성공과 십일조는 일체의 상관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상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습니다.
) -->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십일조 단 한번 낸 적 없는 것으로 압니다. 오늘날 아랍권의 세계적 부호들 역시 십일조는 알지도 못합니다. 삼성그룹이나 현대그룹 총수를 비롯한 우리나라 부자들 중에서 십일조 생활하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 -->
록펠러가 십일조 열심히 해서 부자 되었다면, 십일조 한번 안 했는데도 막대한 재물을 축적한 위의 재력가들은 무슨 논리로 설명하려는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와 십일조의 연결 논리를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 -->
셋째, 록펠러의 축재과정은 결코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그의 모기업인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는 가장 강력한 시장독점 방식의 회사로서 미국법원으로부터 2회의 반트러스트법 위반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울러 그는 아주 차갑고 냉정한 성품이었으며 근로자 착취를 의심받기도 합니다.
) -->
얼마 전 한국의 기독사업가의 표상으로 인정받던 분의 경영행태(비정규직에 대한 냉혹한 횡포)에 대한 부정적 의문이 매스컴에 의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강조하는 그의 간증은 유명합니다만, 제기된 내용과 일치되지 않기에, 성도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 -->
만약 록펠러가, 근로자들의 보수를 불공정하게 지급했다거나, 기업합병으로서 시장독점을 시도하고 그 결과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았다면, 그의 기업 활동과 축재는 정당치 못합니다.
) -->
그가 노년에 아무리 자선사업을 많이 했고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일이 아닙니다. 부당한 재물로 생색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는 잘 사용하기에 앞서 먼저 잘 모아야 합니다. 성도는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야 합니다.
일한 자의 정당한 보수를 갈취하는 것은 성경에 반하는 일입니다(신24:15; 약5:4). 시장독점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가로채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처럼 부당하게 축적한 돈에 ‘십일조’라는 명목만 붙인다 해서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 -->
넷째, 록펠러가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것은, 반드시 신앙에 근거한 필연적 현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비록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 -->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공히 천문학적인 돈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들이 십일조의 달인이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 -->
재산의 사회환원은 성도라야 할 수 있는 신앙행위가 아닙니다! 신앙여부와 무관하게 사회에 대한 건전한 의무감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그런 선행입니다.
) -->
다섯째, 록펠러 예화의 주의사항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기입니다. 록펠러가 갑부 된 것은 십일조를 했기 때문이어서가 아닙니다. 불신자 갑부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적 노력(그들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하며 이는 인정되어야 합니다)의 산출물이며 시운도 맞았기 때문입니다.
) -->
) -->
십분 양보하여, 록펠러의 십일조 생활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더라도 꼭 기억해야 할 유의점이 있습니다. 그는 삶 자체(또는 사업의 성공)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십일조 했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후의 문제이며 원인과 결과의 문제입니다. 아울러 재산의 사회헌납도 그냥 인도적 취지에서 실행했던 일입니다. 비기독교인들의 기부와 동일한 맥이지요. 이러한 본질을 호도하여, ‘십일조라는 원인에 의해 촉발된 하나님의 보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무모한 억측입니다.
) -->
일부 목회자들이 의기양양하게 인용하는 록펠러 예화에 대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짚어 봤습니다. 이 예화는 매우 어리석게 설명된다는 점에서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을 엉뚱한 방향(교회의 재정확보 수단)으로 오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록펠러의 예화에는 그의 십일조 생활과 사회사업이 지녔던 성가(聲價)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흔히 접하는 그런 설명이라면 이 예화는 인용치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 -->
) -->
간혹 설교나 서적을 통해 록펠러 가문의 예화(후손들의 성공담)를 접하더라도, 위와 같은 점을 숙고하여, 잘 판단하는 슬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 -->
즉, 십일조 생활 열심히 하는 것과 부자 되는 것, 나아가 참 신앙으로 인정받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진실을 깨달아, 심한 압박감을 느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 ‘캔터기 후라이드 치킨’ 대박이 하나님의 편애 덕분? (0) | 2017.05.29 |
---|---|
[단상] ‘쇠똥 십일조’에 감동 먹으신 하나님? (0) | 2017.05.07 |
[단상] 첫 월급에 눈독들이시는 하나님? (2) | 2017.03.16 |
[단상] 배운 대로 하는 것일 뿐인데? (0) | 2017.02.05 |
[단상] 말은 참 잘 하는데…… (0) | 2017.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