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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무익한 논쟁 경험 - 그 이후(4)
진화론자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적자생존(용불용설)과 유전’ 이론이 진화론을 보증하는 과학적 진실로 착각하는 이들이 참 많다. 아주 암팡진 신뢰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치명적인 논리적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것은 곧 ‘시간 또는 시점’에 관련된 자가당착이다.
진화를 논하려면 ‘종속과목강문계’ 각 단계마다의 시발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하나의 종(種, Species)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순간에 주목해야 한다. ‘屬(Genus)’도 마찬가지이고 ‘科(Family)’도 마찬가지다.
옛 기억을 더듬어도 어사무사할 것이므로 속 편히 포털 검색을 통해 조금 정리해 보자.
먼저, 적자생존이다. 적자생존은 유명한 2개의 이론을 살펴야 한다.
첫째는 프랑스 학자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로서 ‘기린의 목’이 예시로 제시되었다. 높은 곳의 나뭇잎을 따먹기 위해 목이 점점 길어졌다는 설명이었다. 이 설은 후일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의해 부정되었고 요즘에는 그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다.
둘째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이다. ‘환경에 적합한 개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개체는 도태되며 이 과정이 계속되면 변이가 누적되어(개체변이) 새로운 종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이 적자생존 이론은 ‘진화론’에 아래와 같은 근원적인 저촉을 유발한다.
‘용불용설’의 기린은 처음부터 억지였다. 즉, 목 짧은 기린이든 목 긴 기린이든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였다. 각기 혼재되어 탄생된 생물들인 것이다. 마치 오늘날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것이 ‘용불용설’을 입증할 수는 없다. 목 짧은 기린은 (만약 진짜 존재했었다면) 오늘날 멸종위기동물들처럼 그냥 멸종의 운명을 맞이한 것일 뿐, 진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다.
‘자연선택설’ 마찬가지이다. ‘형질이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유리한 종만 유전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제한점을 지닌다. 다윈 자신은 몰랐으나 이후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되어 해결되었다 여기지만 ‘유전법칙’ 또한 제한을 받는다.
다음, ‘유전’이다.
유전하면 누구나 ‘멘델의 완두콩 실험’을 떠올릴 것이다. 포털을 검색하면 ‘순종과 잡종’, ‘우열/분리/독립의 법칙’, 돌연변이 등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부모의 형질이 자식에게 유전된다고 결론짓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 유전법칙은 그 신뢰도가 무척 높다. 그리고 이것이 진화의 결정적이고도 핵심적인 법칙의 하나로 인정받는다.
개인적으로 이 설명에 반대한다. 쉽게 논리적으로만 생각해 보자.
첫째는 멘델의 실험이 인위적이었다는 점이다. 자연에서의 자연적인 발생이 아니었다.
둘째는 멘델의 실험이 ‘진실’로 입증되기 위한 조건은 2가지이다.
① ‘조상 완두콩’이 모두 멸종되고 ‘자손 완두콩’만 존재한다면 ‘우성유전에 따른 진화’가 입증된다. 열성은 사멸하고 우성은 생존한다는 의미에서 ‘사멸유전’이라 칭하자.
② ‘조상 완두콩’과 ‘자손 완두콩’이 공존한다면 이것은 ‘진화’라기보다 ‘병존’이라 함이 더 타당하다. 조상과 자손이 함께 생존하므로 ‘병존유전’이라 칭하자. 인류의 조상으로 간주되는 오랑우탄이나 침팬지 등이 현대인류로 진화(?)한 것과 동일한 개념이다.
이제 ‘사멸유전’이 되었든 ‘병존유전’이 되었던 어느 시점에서의 2종은 완전한 다른 종이어야만 한다. 침팬지와 인간처럼 말이다. 유전인자도 다르고 DNA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종’으로 변화되어야만 비로소 ‘진화’라고 칭할 수 있게 된다.
멘델의 실험에 빗대어 보자. ;
‘조상 완두콩’은 그냥 ‘완두콩’으로 사라지거나(사멸유전) 남고(병존유전), ‘자손 완두콩’은 ‘완세콩’(농담조로 작명한 명칭)으로 불리며 존재하게 될 때라야, 멘델법칙의 신빙성이 확보된다 할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혼신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을 가져온 것은 이의없이 인정한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부분까지 무조건 수긍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적자생존과 유전이론이 ‘새로운 종을 창출하는 요소 중의 하나’라는 주장은 아직 설득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창조론으로 설명하되 환경에 따라 멸종하는 생물이 많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싶은 소견이다.
그러므로 신앙적인 신조를 수정하고픈 마음이 조금도 없음을 다시 확언한다!
- 계속 -
※ 인간의 분류
동물계(Animalia) → 척삭동물문(Chordata) → 포유강(Mammalia) → 영장목(Primates) → 사람과(Hominidae) → 사람속(Homo) → 사람종/사피엔스(H. sapiens)
※ 원숭이 분류
동물계 → 척삭동물문(Chordata) → 포유강(Mammalia) → 영장목(Primates) → 곡비원아목(Strepsirrhini) → 직비원아목(Haplorrh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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