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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70] 다윗은 정말 부하들과 진설병을 나누어 먹었는가? 본문
[의문 070] 다윗은 정말 부하들과 진설병을 나누어 먹었는가?
♣ 마12:3-3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 막2: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 눅6: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병행구절로서 매우 의미 있는 교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 ‘올바른 안식일’의 개념입니다.
안식일을 형식적 종교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바리새인들에게 ‘실질적인 안식일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목회자들이 수시로 설교하며 가르치는 구절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진의(眞意)는 충분히 알고 있겠기에 여기서 더 다루지 않겠습니다.
또 본문은 유명한 ‘성경난제’를 안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즉 다윗이 진설병을 먹을 당시의 대제사장은 ‘아비아달’이 아니라 ‘아히멜렉’(아비아달의 아버지)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학자들이 잘 설명하고 있는데, 아비아달은 아히멜렉 시대에 이미 아버지를 도와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표현은 아무 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의 병행구절인 오늘 본문들과 그 근거가 되는 삼상21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어?’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의구심이 핵심은 ‘다윗이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부하들까지 진설병을 먹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윗이 명실상부한 왕으로 등극하기 이전의 삶을 매우 간략히 개괄해 보겠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삼상15:35)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로 하여금 다윗에게 왕으로서의 기름을 붓도록 하십니다(삼상16장).
비록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지만 사울이 통치하는 동안에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무엘도 침묵했고 다윗도 침묵했습니다. 그 기간은 약 13년 동안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사울 왕의 악사가 되었다가 측근 장군이 됩니다. 그러나 이내 사울의 시기심으로 말미암아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십 년 이상 도망 다니는 신세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다윗을 따르는 부하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약 400명(삼상22:2)이었고 나중에는 약 600명(삼상25:13)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초기 즉 사울의 위협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시기의 개략적 정황입니다.
우리는 다윗을 따르는 부하들이 수백명 있었다고 기억하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이해할 때, ‘아하,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있었구나.’라며 쉽게 넘어가 버립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설병 사건이 일어나기 전후의 정황을 조금 더 살피겠습니다.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혈안입니다. 창을 두 번 던졌고(삼상18:11, 19:10), 아들인 요나단에게도 다윗을 죽이라고 수시로 윽박지릅니다.
요나단이 더 이상 다윗을 보호하기 어려움을 알고 눈물로 이별하는 장면은 삼상20:42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떠나보내면서 이러한 소망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다윗도 요나단의 우정을 잘 알았습니다. 나중에 요나단이 전사했을 때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1:26)고 회상하였습니다.
이제 사무엘상 21장 “진설병” 사건으로 돌아가 봅니다.
21장은 다윗이 요나단과 헤어지고 나서 맨 처음 발생한 사건입니다. 위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400명 또는 600명의 부하들이 따르기 전의 사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갔던 것이 아니라 오직 홀로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았고 다윗 혼자만 진설병을 먹었던 것입니다!
21장 1-6절을 세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혼자 온 것에 대해 매우 불안한 심리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에 다윗은 극비 군사작전인 관계로 부하들은 비밀장소에 집결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는 거짓말이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헤어진 후 단지 ‘홀로’ 찾아갔을 뿐입니다. 부하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홀로’(단신으로) 찾아갔을 것이라는 추정은 뒤에 나오는 아기스 사건(삼상21:10-15)에 의해 뒷받침 받습니다.
진설병으로 허기를 달랜 다윗은 곧바로(성경은 “그날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시기’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문자적으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아기스 왕이 망명을 수용할 듯하자 신하들이 강력히 반발합니다. 분위기가 급반전되어 목숨이 위험할 수 있겠다 판단한 다윗은 침을 흘리며 미친 체 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자, 이 망명사건의 분위기를 살펴야 합니다. 부하들과 함께 한 뉘앙스가 전혀 없습니다. 만약 다윗이 수백 명의 부하들과 함께 하였다면 아기스 왕을 알현하기도 전에 군사적 대치가 먼저 발생했을 것입니다. 모두 일당백인 다윗 부하들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부대가 아니었습니다.
망명사건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다윗의 단독행동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사실 다윗에게 부하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아기스 사건 이후입니다. 곧이어 명확히 밝혀집니다.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를 떠나 유다 땅 아굴람 굴로 도망했을 때 비로소 친척들과 도망자들이 모여들어 400여 명의 무리를 이루었습니다(22:2).
삼상21장을 자세히 읽으면 ‘다윗은 단독으로 제사장을 찾아갔고 진설병도 혼자만 먹었고 이때 부하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단독행동은 아기스 왕 망명사건 때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2가지를 더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삼상21:3에서 다윗이 한 말입니다.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라는 말은 상당한 양의 음식입니다.
이해를 위해 진설병(레헴 코데쉬, shewbread)에 대해 조금 살펴야 할 것입니다.
○ 재료 : 누룩 없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레24:5). 여기서 ‘에바’(ephah)는 22리터(출16:36)이므로 ‘십분의 이’ 에바는 4.4리터로서 한국식 ‘4되 반’ 정도의 분량입니다. 매우 큰 떡(백설기 비슷?)입니다.
○ 형태 : 덩어리 형태로 구워졌습니다(삼상2:36).
○ 진설방법 : 한 줄에 6개씩, 2줄로 12개를 놓았습니다(레24:6).
○ 교체시기 : 매 안식일마다 교체되었습니다.
○ 먹을 수 있는 자격 : 제사장만 먹을 수 있습니다(레24:9).
따라서 3절에서 다윗이 말한 “다섯 덩이”는 무척 많은 양입니다. 안식일날 물려낸 진설병 12덩이 중에서 제사장들이 먹고 남은 다섯 덩이를 다윗이 얻어 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많은 양 때문에 ‘다윗이 많은 부하들과 함께 먹었다.’고 지레짐작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정황과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관점을 달리하여 부연한다면, 다윗이 얻어간 진설병은 비교적 ‘많은 양’이었지만, 그것은 다윗 혼자 또는 소수의 사람들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다는 의미이지, 400여 명 이상의 군사들에게 합당한 음식량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성막에서 물려낸 진설병은 수백명의 식사로서는 턱없이 적은 양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지식이 부정확했는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는 다르게 이 당시 다윗이 부하들과 동행했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전에 세밀히 살펴본 정황과 예수님의 말씀은 상당한 부조화(?)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믿는 성도로서 예수님은 진실로 오류 없으신 지식의 소유자임을 고백하기에 예수님의 말씀(지식)을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사무엘상서의 기록 부실(약간의 오류)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사무엘 21장을 너무 간략하게 요약 기술하다보니 오늘날 관점으로는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분명 부하들과 함께 진설병을 나누어 먹었지만, 사무엘서는 이를 순차적으로 상세히 기록하지 않음으로써(최소한 20-22장), 위와 같은 이해부득의 상황을 초래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사무엘 상 및 하 서는 사무엘에 의한 직접 기록물이라기보다 후대의 편집일 가능성이 더 높은 기록물입니다. 역사서의 기록 특징 중 하나는 기록 대상자 및 시기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기록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통사인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전설인 오제(五帝)부터 한나라 무제(武帝)까지의 역사로서 BC 108~91년에 편찬되었습니다. 후대 사람이 평가 및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사인 삼국사기는 통일신라 멸망 210년 후에, 고려사는 고려 멸망 59년 후에,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멸망 49년 후에 정리 기록되었습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정사는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6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리 기록되고 있지 않습니다(신문 보도에 의하면 2013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편찬 계획을 수립하였다 합니다).
아무튼 한 나라의 역사는 후손들이 기록하게 되는데, 기전체와 편년체 방식이 주로 사용됩니다. 기전체란 사건 중심 기술에 무게를 두는 방식이고 편년체는 가능한 한 일자별 기술을 중시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후손들이 기전체적 또는 편년체적 방식을 채택할 때, 특정 사건을 설명하면서 발생일자의 선후 관계가 약간 다르게 기록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앞뒤가 혼재된 상태로 기술되거나 또는 뒤바뀌어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사무엘 상 및 하 서도 후대에 편집된 역사서라면 일반적인 역사기술의 제한점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서 지적된 ‘진설병 사건의 이해부득’은 사무엘상서의 역사기록 한계에 따른 ‘부실한 기록’(정확히 말하면 ‘기록 오류’)로 받을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어찌 해석해야 할 것인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 의문 : 사무엘상 21장의 진설병 사건은 다윗이 혼자 단독 행동을 하면서 겪은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부하들과의 공동행위였다고 말씀하신다. 이 부조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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