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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35] 단 지파의 제사장은 모세의 증손자였다?

맑은바람청풍 2016. 10. 23. 10:08

 

[의문 035] 단 지파의 제사장은 모세의 증손자였다?

 

 

18:30-31(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우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사사 시절,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너무나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시대 종교적 타락상의 대표적인 사례가 에브라임 산지에 거주하던 미가라는 사람과 단 지파 사이에서 벌어졌던 새긴 우상쟁탈사건이었습니다(17-18).

 

개략적인 전개는 이렇습니다. 베들레헴이 살던 레위인 소년 한 명이, 이리저리 살 곳을 찾아 방황합니다. 그러다 에브라임 산지에 이르게 되었고, 마침 가정 제사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미가의 요청에 의해 좋은 조건으로 미가의 가정제사장이 됩니다(17).

 

한편 분배된 기업()도 제대로 정복하지 못한 단 지파 일부 또한 살 곳을 찾아 헤맵니다. 본 기업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의 라이스(라센)를 정탐/정복하는 과정에서, 미가의 제사장을 힘으로 빼앗아버립니다(18). 미가의 항변은 목숨의 위협에 금방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8장 말미에 사건을 최종 정리하는 관점으로 기술된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겉보기 요지는 ‘17-18장에 나오는 제사장이 모세의 증손자인 요나단이었다.’라 하겠습니다. 몇몇 주석들도 성경의 요지를 보강하는 관점으로 해설합니다.

 

한 마디로 오늘 본문과 관련 주석들은 이 사건발생 시기가 언제였느냐에 따라, ‘레위 소년이 모세의 손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사시대 초기의 사건이라면 모세의 손자일 가능성이 있고, 보다 후기의 사건이라면 모세의 손자가 아닌 제3의 인물일 확률이 높습니다.

 

매튜 헨리 주석을 인용하고, 2가지의 경우의 수(사사시대 초기냐 또는 후기냐)를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매튜 헨리 주석입니다.

 

18:30절의 요나단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는 베들레헴 태생의 레위 소년이며,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의 신당에서 제사장이 되었다(17:7-13). 그러나 단 지파가 미가의 집을 약탈하여 미가의 신상을 훔쳐가자 그는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고, 그와 그의 후손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제사장으로 일했다.(18:27; 18:30)

 

18:30절의 보충 설명입니다. 『…제사장의 직책을 맡은 레위인의 이름이 여기서 밝혀지고 있는데, “마나세(우리 성경은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인 요나단이었다. 원본에는 마나세라는 단어 앞에 “1”(n) 자가 첨가되어 있는데, 유대인 율법학자에 의하면, 이 문자는 빼 버려야 하는 것이므로 마나세는 곧 모세라는 이름과 같은 것이다. 또한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 레위인은 유명한 모세의 손자이며 모세는 실제로 게르손이라는 아들을 갖고 있었다. 이 율법학자들은 역사가들이 모세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그 이름 앞에 다른 문자를 삽입해 마나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하고 있다. 라틴어역은 그것을 모세라고 읽었다. 만일 모세에게 정말 이런 사악한 손자가 있어 우상숭배를 했다 할지라도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타락한 후손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패트릭 주교는 이것은 율법학자들의 근거없는 이야기이며 요나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레위인이 또 다른 가문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것처럼, 성경(오늘 본문)과 일부 주석의 설명은 난점을 지닙니다. 첫째는 성경 족보상 맥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고, 둘째는 사사 초기(모세의 증손자 시절)에 발생한 사건으로 보기는 무리가 따른다는 점입니다.

 

첫째, 성경 족보상 계보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정확하다는 전제 하에 성경 족보를 개괄하면 이렇습니다. 야곱레위고핫(또는 그핫)아므람모세게르솜(또는 엘리에셀)게르손요나단

 

모세의 아들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며(대상23:15) 그 외의 다른 아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모세의 장자 게르솜은 스브엘을 낳습니다(대상26:24).

 

모세의 차자 엘리에셀은 외아들 르하뱌만 낳았으나 손자들은 많이 낳습니다(대상26:25).

 

게르손은 성경에 총 38회 사용되나, 오늘 본문(모세의 손자)과 대상29:12(모호)만 다른 인물일 뿐, 나머지는 전부 레위의 아들 게르손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성경에 총 119회 사용되나, 오늘 본문에서만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으로 기록되었을 뿐, 나머지는 전부 삼상13:20 이후로써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 및 다른 동명이인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소결론은 이것입니다. ,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이라는 표현에서 게르손과 요나단의 실존 여부가 성경의 여타 족보에 의해 전혀 증명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이외의 어느 곳에도 게르솜 또는 엘리에셀에게 게르손이라는 아들이 있어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둘째, 가나안 정복 초기 즉 모세의 증손자 요나단 생존 시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보기에는 엄청난 무리가 따릅니다.

 

만약 오늘 본문의 기술이 옳다면(주인공 격인 레위 소년이 정말 모세의 증손자라면) 이 사건은 필연적으로 가나안 정복 초기(사사 시대 초기)에 발생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입니다.

 

모세의 일기는 120세입니다만, 그의 손자 게르손(장자 게르솜의 아들인지 또는 차자 엘리에셀의 아들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습니다)과 그의 증손 요나단의 출생기록이 성경에 없습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실존 여부가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세대차 30년을 적용할 경우, 모세와 증손자 요나단 사이에는 약 90년 정도의 시차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40세 이후에 아들을 낳았으므로 이 세대차는 약 100년 어간으로 조금 확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조건이라면 여호수아의 지휘로 요단강을 건널 때, 모세의 증손자 요나단의 나이는 최대 20세 이하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소년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나아르/시중드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이/젊은이로 사용됩니다. 분위기상 나이 많은 사람에게 사용되는 단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단 지파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요나단의 나이를 약 30세 미만으로 추정한다면 이는 요단강을 건넌 지 약 10년 후에 발생한 사건일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기 전입니다.

 

또 성경에는 단으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20:1)7번 나오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국토로 여기는 영역입니다(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사시기 초기부터 단이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되었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사사기 초기의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느껴지는 설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 지파 사건(17-18)은 사사기 중반이나 말기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입니다.

 

 

먼저, 타락의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사사기 초기라면, 특히 아직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시기라면, 이같은 타락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비록 시간이 좀 더 흘러, 여호수아가 사망했을지라도, 비느하스를 비롯한 정복 세대 대부분이 생존해 있을 시기입니다.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타락은 이들이 모두 죽은 후부터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2:10)라는 고발이 근거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사사기 초기라면 레위인들은 각 지파로부터 분배받은 48 성읍에 거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할당된 성읍이 아닌 베들레헴에 거주하려면 좀더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의 신앙이 타락하고 레위인의 살림살이가 힘들어진 다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레위 소년이 베들레헴에 살았고 다시 다른 살 곳을 찾았다는 사실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매우 타락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단 지파 사건이 보다 후기의 사건일 가능성을 높이는 단서일는지 모릅니다.

 

 

좀 맥 빠지는 추정입니다만, 몇 대 이상의 선조나 후손을 단순히 아버지 내지 아들이라 표현하는 고대 유대인들의 관습을 고려한다면, 오늘 본문의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이라는 말은 단지 모세의 여러 대 후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단 지파의 사건 발생 시기를 사사기 초기 또는 중후반으로 간주하고 살펴봤지만, 뚜렷한 결론 내지 확신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록된 오늘 본문은 문자적으로 오기인 것처럼 보이고, 또 일부 주석의 설명도 타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매튜 헨리 주석의 마나세라는 인물의 손자일 수도 있다.’는 보충설명이 훨씬 설득력을 지닐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명백한 논증을 제시하지는 못할지라도, 단 지파 사건은 사사기 초기가 아닌 중후반기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것 같다는 개인 견해를 밝히면서 마칩니다.

 

 

의문 : 17-18장의 미가 및 단 지파의 새긴 우상 사건은, 대부분의 주석들과 달리, 사사기 중후반에 발생했던 사건이 아니었을까요? , 단 지파의 제사장은 모세의 손자가 아닌 마나세의 손자 동명이인 요나단이 아니었을까요?

 

 

 

추기

 

오늘 본문에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날은 언제를 의미할까요? 바빌론 포로 사건 외에 딱히 떠올릴만한 역사적 사건은 없습니다. 만약 이 표현이 바빌론 포로를 의미한다면 이 문장은 사사기가 후대의 기록임을 증거하는 근거가 됩니다. 사사기 전체가 포로 이후에 기록되었거나, 아니면 이 구절만이라도 포로 이후에 추가 삽입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오늘 주제의 핵심에서 벗어나므로 더 이상 살피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