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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33] ‘부자와 약대 바늘귀’의 해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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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33] ‘부자와 약대 바늘귀’의 해석 

맑은바람청풍 2016. 10. 16. 09:56


[의문 033] ‘부자와 약대 바늘귀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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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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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미비점을 지적하면서, 본문을 근거 구절로 인용설명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원 주장과 중요 댓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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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주장 : “저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데 한 미국 목사님의 성경공부시간에 듣게 된 얘기입니다. 과거 중동지역에서는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많이 사용을 하였는데 한 지역에 가면 돌산이 있고 그 곳을 지나다 보면 바늘구멍이라는 동굴이 있는데 그곳을 지나려면 낙타가 그 큰 몸집을 힘들게 수그려야 겨우 지나 갈 수 있는 곳이라 합니다. 그 목사님 얘기는 아마 그 이름에서 유래 된 것이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얘기를 듣고 왜 바늘구멍이라 하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실에 침을 발라 한 쪽 눈을 감고 몇 번을 찔러야 들어가는 몇 mm도 안 되는 바늘구멍에 낙타가 지나간다는 비유는 마치 오래 전 우스갯소리인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3단계 방법, 1)냉장고 문을 연다. 2)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3)냉장고 문을 닫는다. 라는 얘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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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댓글 : “사실, 그게 번역 과정이 오류입니다. 그 구절을 옮길 때 번역자가 gamta(밧줄)gamla(낙타)로 혼동되어서 발생한 것이라네요. 그렇다고 이미 이렇게 굳어져 있고 밧줄이나 낙타나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어려운 건 매 마찬가지라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고 그러네요.(출처: 쓰면서도 헷갈리는 우리말 오류사전,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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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주장과 댓글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하며 견해를 펼치고 있습니다만, 매우 부정확합니다. 여러 가지가 지적되지만 특히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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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주장의 미비점 : 매우 부정확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여러 가설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를 공인된 사실인양 확정적으로 소개한 목사의 안목은 정당치 못하다 할 것입니다. 조금 후 이어지는 각종 주석과 자료들을 참고하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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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댓글 : “번역자가 gamta(밧줄)gamla(낙타)로 혼동되어서 발생한 것이라는 단정은 오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람어 가므타와 가믈라 견해는 맨 뒤에 소개해 드릴 사이트의 전문가 설명(낙타와 바늘귀)을 참조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근거를 가지고 모호한 것을 묵인하자.’는 의미가 되므로 경계해야 할 제안일 것입니다. 또 근거로 제시한 쓰면서도 헷갈리는 우리말 오류사전을 검색해 보니 공동저자들은 모두 국문학 관련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와 헬라어 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성서학자들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불가피하게 ‘2차 자료의 인용 방식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 아람어 가므나 및 가믈라등은 직접 연구하여 습득한 지식이라기보다 다른 학자들의 지식을 인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정확성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람어에 관한 한, 책 저자들의 학문적 신뢰도가 높다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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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잘못된 근거와 불확실한 이해는 자칫 우리의 성경 이해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보다 나은(논리적인) 이해에 이르려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몇몇 자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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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관련 주석 및 자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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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 부자가 영생을 얻기 어렵다고 하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이 비유는 극단의 상징성 때문에 학자들에 의해, 상징된 단어의 완곡한 이해가 종종 시도되었다. 그중 바클레이(W. Barclay)에 의하면 우선 바늘귀란 '작은 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흔히 성곽을 두르고 있는 도시에는 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중의 큰문은 낮에 사람이나 짐수레 등이 다니는 것이며 작은 문은 밤에 사용되는 것으로서 사람이 서서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으로 흔히 '바늘귀 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따라서 이 비유는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큰짐승 중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는 약대(camel)가 이 작은 문으로 통과하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을 가리킨다고 해석되었다. 한편 칼빈(Calvin)약대를 가리키는 말의 헬라어가 '카멜로스'이며 배에서 사용되는 '밧줄'(rope)의 헬라어는 '밀로스'인 점으로 미루어서 약대가 아니라 밧줄이 바늘귀에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바늘귀가 '바늘귀 문'이며 약대가 '밧줄'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약대는 바늘 문으로 통과할 수 없으며, 밧줄은 바늘귀에 매어 쓸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이 비유를 완곡하게 표현하려는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능성의 정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랑게(Lange)에 의하면 육중한 몸무게의 약대가 부자를 상징하고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통로인 바늘구멍이 하늘나라로 가는 영적통로를 상징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적어도 본문은 이같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진의(眞意)를 더욱 확실히 해 줄 것이다. 한편 이와 비슷한 격언으로 바벨론 탈무드에는(B. Berakoth 55b) '약대' 대신 '코끼리'가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벨론에서는 코끼리가 흔하고, 가장 큰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도 이슬람교의 코란경에는 '약대가 바늘귀로 지나갈 때까지 천국 문은 악인에게 닫혀있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마 이는 이 복음서에서 빌어 쓴 듯하다. 여하튼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문'인데, 더구나 교만(驕慢)과 자기만족으로 살찌운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더욱 더 좁은 것이다. 이 비유가 영생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만큼 영생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만큼 더 놀라운 것이며 감사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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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헨리 주석 : 이 말씀은 속담을 빌려 표현한 것인데 인간의 기술이나 능력으로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뜻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부자로 하여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배교자(6:4, 5)와 악에 익숙한 자(13:23)가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의인도 겨우 구원을 얻을진대"). 하물며 특별한 어려움까지 겹친 자의 경우는 구원 얻는 것이 너무도 곤란하고 어려운 것이어서 불가능하다고까지 표현되는 것이다. 부자가 된 사람이 자신의 재물에 마음을 쏟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요일 2:15;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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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P 성경배경주석 신약 : ‘바늘구멍이 예루살렘 성벽의 작은 문을 의미한다는 해석은 중세시대에 세워진 문에 기초한 것으로 1세기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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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P 성경주석 신약 : 바늘귀가 예루살렘 성벽의 한 좁은 문 이름이었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전혀 역사적인 근거가 없다. 그 묘사가 기괴스러운 것은 의도적인 것이다.(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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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신학사전 켓텔단권 원어사전 : 예수는 부자 청년과 면담을 한 후 일반적으로 부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하지만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10:27])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전형적인 근동지역의 비유를 사용한다. 몇몇 랍비문헌의 병행 구절들에서처럼(자주 코끼리가 사용된다) 그러한 불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큰 동물과 작은 구멍이 예로 선택된다.(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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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ruthnlove.tistory.com/297(운영자 김삼 목사)를 검색하면 성경묵상과 연구 / 단편적 성경공부낙타와 바늘귀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본학적 관점으로 검토했는데, ‘밧줄이 아니라 낙타가 맞으며, 이는 예수님의 유머감각에 의한 언급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허락받지 않아 퍼오지 않았으나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직접 읽어 본다면 도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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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소개드린 원 주장중요 댓글을 읽고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히브리와 헬라 사전과 주석 등을 뒤적여 보고 인터넷 자료도 찾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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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크게 벗어나는 일인지라 아직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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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와 마찬가지로, 성경지식 또한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기에, 위에 소개된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여 나름대로의 이해에 이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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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씀(19:24)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 밧줄이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바꾸어 해석하는 게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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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 이후 무척 귀중한 자료(별지 2)를 추가로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 시기의 출처 등을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등의 해석도 논리적이고, 기타 설명들이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약대로 정리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판단됩니다. 때때로 배우고 익힘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 이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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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1> 낙타와 바늘귀 <낙타냐 밧줄이냐, 바늘귀냐 '침공문'이냐?>

(출처:http://truthnlove.tistory.com/297/성경묵상과 연구/단편적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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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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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2> [스크랩] 약대와 바늘귀와 밧줄

(출처:http://cafe.daum.net/soongsari/성경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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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학자들은 마태복음 19:24에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표현 가운데 나오는 약대라는 단어를 밧줄로 대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단어가 정확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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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서학자들은 여기에 있는 예수의 말씀이 원래 아람어로 기록되었다고 잘못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한 번역판에 사용된 아람어 단어(가믈라)약대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을 고려해 보면, 그 단어는 굵은 밧줄이나 들보로도 옮길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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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마도 사도 요한과 동시대 인물이었을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에 의하면, 마태는 원래 자신의 복음서를 아람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로 기록하였으며, 그후에 희랍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약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말)는 밧줄(헤벨) 혹은 끈(아보트)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정확한 희랍어 단어를 선택하였음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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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뢰할 만한 희랍어 사본들(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1209호 사본)은 약대를 의미하는 말로서 카멜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동일한 단어가 마태복음 23:24에서 사용되었는데, 이 구절에서도 그 단어가 약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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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세기에 걸쳐서 일부 사람들은 예수의 예리한 과장법의 의미를 약화시켜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성경 구절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5세기경부터는 일부 희랍어 사본의 이 구절에서 카멜로스와 비슷한 단어인 카밀로스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드물게 나타나는 이 단어는 밧줄이나 배의 닻줄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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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트와 깅그리히 공저 신약 희영 사전(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에 따르면, 그 단어는 신약에서 사용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희랍어 학자인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와 같은 단어의 대치가 제 5세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던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시릴은 항해에 숙달한 사람들이 굵은 닻줄을 가리켜 약대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다고 말하면서, 마태가 사용한 단어(카멜로스)가 닻줄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러한 생각이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기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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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조 문헌에 의하면, 조그만 바늘귀를 통과하기 위해서 애쓰는 거대한 약대에 대한 착상은 동양 특유의 과장법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바빌로니언 탈무드는 뛰어난 기지를 사용하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몇몇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런 이들은 코끼리를 끌고 바늘귀를 통과한다.”는 식으로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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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생생한 대조를 사용해서 어떤 일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동양의 비유를 사용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밧줄이든지, 약대든지, 혹은 코끼리든지,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커다란 물건으로는 사실상 바늘귀를 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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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부자가 생명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얼마의 사람들은 부자이면서도 그분의 추종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태 27:57; 누가 19:2, 9; 요한 19:38, 39) 그러나 예수께서 이 어려운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한 부자 청년은 많은 재물에 대한 더 큰 사랑 때문에 커다란 영적인 기회를 거절하였습니다. (마태 19: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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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부자라도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한, 영원한 생명을 상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극적인 도움이 있어야만, 그러한 사람은 변화되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오는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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