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바람소리
[묵상] 비판(1), 무조건 금지되어야 하는가? 본문
[묵상] 비판(1), 무조건 금지되어야 하는가?
[본문 = 마7:1-6]
) -->
▣ 들어가기
) -->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마5-7장)의 일부로서 ‘티와 들보’로 알려진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교훈을 ‘무조건적인 비판 금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말씀입니다.
) -->
교회란 목회자와 일반성도가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할 공동체이며, 인간은 목회자든 일반성도든 아무도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비판은 덕을 세우기보다 분리와 다툼을 유발하기 쉽다는 현실 등을 고려할 때, 가능하다면 비판은 삼가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생각과 달리 성경은 무조건적인 비판금지를 요구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잘못에 대해서는 엄하게 지적하고 꾸중할 것을 교훈하고 계시는 곳이 많습니다.
) -->
따라서 오늘은 그 동안 피상적으로만 생각했던 ‘비판’에 대해 성경의 조명을 받아가며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
) -->
▣ 본문 해석에 대한 미비점
) -->
흔히들 본문을 설교의 주제로 잡거나 증거 구절로 인용할 때, 다른 사람의 언행에 대하여 아무런 비판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석합니다. 일반성도들은 이러한 목회자들의 해석을 ‘모든 것, 심지어는 잘못된 일일지라도 눈을 감고 묵인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 -->
이러한 해석과 이해는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본문을 해석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
먼저, 성경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이지만, 성도들이 일차적 수신인입니다. 따라서 본문도 일단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교회 내에서의 무분별한 비판을 경계하시는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 -->
비판이란 자기의 의(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나오는 현상입니다. 내 기준으로 다른 이를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비판의 출발점은 자신의 정욕(욕망)입니다. 시기와 질투에서 출발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 -->
그리고 비판의 결국은 싸움입니다(약4:1). 그렇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는 인내하고 용납하며 하나 되기 위해서는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으로 옳습니다.
) -->
이 정도의 이해라면 굳이 이러한 묵상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으로 깊은 진리를 숨겨두고 계십니다. 이 더 깊은 진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본문과 다른 부분을 좀더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 -->
이해하기가 조금은 어렵지만, 본문은 하나님의 정죄권에 관련된 교훈도 깊숙이 숨겨져 있습니다. 정죄란 최종 확정 판결을 의미합니다.
) -->
이 권한은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 것으로서, 인간은 그 누구도 이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세상에서의 최종확정은 인간의 몫이 아닙니다. 아울러 어떠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받고 의인이 됩니다.
) -->
성도는 직분에 관계없이 누구든 ‘너는 안 돼’라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죄의 선행조건이 바로 ‘비판’입니다. 이 경우 비판은 조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 -->
본문에서도 무조건적인 비판금지가 아님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5절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하십니다.
) -->
문자적으로 보면, ‘먼저 자신의 들보를 빼고, 후에 다른 사람의 티를 빼라’는 것입니다. 티를 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비판할 수 있다는 뜻).
) -->
물론, 들보가 없는 자는 없기에, 남의 티를 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만, 비판 자체가 원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라고 받을 가능성도 있다 하겠습니다.
) -->
그런데 문제는, 6절에 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 -->
왜 이 말씀이 이 부분에 끼여 있을까요? 문맥상 6절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 1-5절은 ‘비판’에 대하여, 7절 이후는 ‘기도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앞뒤 어느 곳과도 연계되기 어려운 말씀으로 보입니다.
) -->
여기서, ‘개와 돼지’는 ‘이방인과 불신자’로, ‘거룩한 것과 진주’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진리인 복음’을 상징한다고 받아야 합니다. 무엇입니까? 복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주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 -->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눠주지 말라고 하시면 성육신하신 목적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 -->
이럴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과 지각을 사용하여 슬기롭게 받아야 합니다. 6절 말씀은 불신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 -->
복음을 불인정하는 자들의 행동은 성도를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찢어 상하게 함). 핍박은 비판과 정죄의 결과입니다.
) -->
이렇게 이해할 때 비로소 1-5절과 연계한 해석이 가능해 집니다. 1-5절의 비판자제 명령은 일차적으로 자기(성도)의 의로써 세상을 비판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 -->
만약 이를 어기고 세상을 비판한다면 그 결과는 어찌될까요? 바로 1절에 답이 있습니다. 즉, 그대로 되돌아옵니다. 세상과 극한 대결뿐입니다.
) -->
결국 오늘 본문의 핵심은 ‘자기 의로써 세상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본문의 일차적 교훈은 ‘교회 밖을 향한 비판의 금지’에 있다고 받아야 할 것입니다.
) -->
성경은 깊이 읽어야 합니다. 구약 선지자들이든 세례 요한이든 예수님이든, 무수하게 많은 꾸지람(질책=비판)을 하셨는데, 놀라운 것은 그 어느 분이든 결코 교회 밖(세상)을 향해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엄청난 질책들(때로는 저주에 가까운 지적들=독사의 자식들아)이 모두 교회(이스라엘)를 향한 것이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 -->
이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교회 밖을 향한 비판의 금지’는 올바른 이해인 것입니다.
) -->
이러한 해석은 지금까지 교회가 가르쳐온 것과 상충되기에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즉, 우리(교회)는 늘 세상을 향해 정죄에 가까운 비판(때로는 최종심판)을 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라 여겨왔습니다.
) -->
그러나 교회가 이렇게 하면 할수록(세상 비판) 그 반응은 우리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세상은 교회의 비판(지적)에 의해 변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변화는 오직 교회가 세상을 품고 감싸줄 때 가능할 뿐입니다.
) -->
왜냐구요? 빛과 소금의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빛과 소금은 자신을 희생해야만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희생은 빛과 소금의 역할입니다. 이들의 희생의 덕은 주변(세상)이 봅니다.
) -->
결국, 이러한 해석은 교회의 역할이, 지금까지 교육받아 왔던 것과는 달리, 세상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포용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추상같은 비판이 아니라 선한 행동에 의한 본입니다.
) -->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교회의 모범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성도들도 목회자의 모범이 없으면 변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
그렇기에 위와 같은 일차적 교훈이 도출될 수밖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 -->
이제 그렇다면, ‘자기 자신과 교회 내의 비판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묵상의 제목을 잡은 것입니다.
) -->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향한 비판은 성도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며 들보를 빼는 것입니다).
) -->
그렇기에 저는 교회 내에서의 비판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사항(무지에 의한 것이든 욕심으로 인한 의도적인 것이든)은 결단코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
성경에 배치되는 명백히 틀린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목회자든 일반성도든 과오를 범할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으며, 잘못임이 확인되었을 때는, 침묵하기보다 지적하는 것이 성경적일 것입니다(치리의 영역입니다).
) -->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성경을 검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
) -->
'신앙의 여정 >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상] 비판(3), 비판에 관한 올바른 자세 (0) | 2016.08.01 |
---|---|
[묵상] 비판(2), 완전 금지된 선악과와 같은 것인가? (0) | 2016.07.29 |
[묵상]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레이저쇼는 없었다!(눅2:8-14) (0) | 2016.07.23 |
[묵상] 바벨탑의 꿈 - 흩어짐을 면하자! (0) | 2016.07.20 |
[묵상] 바른 교리는 바른 실천 위에서 (0) | 2016.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