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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묵상

[묵상] 비판(3), 비판에 관한 올바른 자세

맑은바람청풍 2016. 8. 1. 08:59


[묵상] 비판(3), 비판에 관한 올바른 자세

[본문 =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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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정욕에 의한 성도 간의 비판은 엄하게 금지하고 계시지만, 진리와 거짓 사이의 슬기로운 판단까지를 금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구분하여 속지 않도록 권면하고 계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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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 곳만 살펴보겠습니다. 5:37입니다(이와 동일한 내용이 약5:12절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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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37절은 맹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보통 이것이 전부인 것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이 구절에는 오늘 묵상 주제인 비판과 연계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맹세란 자기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자기의 확신으로는 참과 거짓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확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럴 것이라 확신되어도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맹세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 중요한 말씀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바로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yes be yes, no no)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는 아니 됩니다. 수용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 합니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기준은 성경입니다. 여하튼 무슨 말이든 해야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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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때, 자신의 확신이 아닌 성경 말씀을 기준하여 받아들일 것과 거부할 것에 대한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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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엇입니까? , 무조건적인 비판금지가 아니라 분명한 의사표명(분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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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본문의 일차적 교훈은 교회 밖을 향한 비판의 금지에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절대적 비판금지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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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본문의 이차적 교훈도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이 무조건 비판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교회 내의 무수한 비판사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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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교회 내에서 침묵만 해서는 아니 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목회자의 견해에 대해서까지 비판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잘못 해석하거나 적용할 때는 신앙을 걸고 비판해야 합니다. 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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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목회자가 개인적이고 세상적인 욕심을 말씀으로 위장할 때도 이를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상고하건데, 참 지도자는 비판에 겸손했으며(다윗과 아합 비교), 참 비판자가 없는 지도자는 불행했습니다(다윗과 솔로몬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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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본문에 숨겨져 있는 이차적 교훈은 교회 안에서의 올바른 비판은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비판의 기준은 결코 인간(목회자 포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의여야 합니다(하나님의 의란 자기부정에 이은 성령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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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공동번역)는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은 만약 이웃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지적하지 않은 사람에게 돌아온다.’는 의미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무조건적인 비판금지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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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비판은 자신은 정당화하면서 타인을 정죄하는 기능입니다. 세상은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인격자라고 부릅니다. 성경 역시 타인에게는 관용하되 자신에게는 엄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도가 자신을 비판하거나 나아가 교회 내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성도 및 교회의 성찰)은 오히려 타당한 일이며 이는 비판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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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성경은 무조건적인 비판금지만 강조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합당한 비판은 교회를 교회답게, 목회자를 목회자답게, 성도를 성도답게 하는 필요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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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를 암시하듯, 절대적인 비판 금지는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의 실족을 방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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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현재 한국교회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건전한 비판의식의 결여에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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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말은 절대적으로 따지지 말고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맹신이 한국교회를 회복 불능의 상태로까지 악화시켰다고 봅니다(목회자를 전지전능한 존재로 오해한 것입니다. 목회자도 실수할 수 있음을 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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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처럼 성경은 오히려 건전한 비판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라고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 근거한 합당한 비판은 교회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성도의 거룩한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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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한계는 어디까지나 사랑 안에서입니다(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비판과 격려는 곧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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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금지는 그냥 좋은 것이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따라서 목회자나 성도에 대한 비판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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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에서도 잘못에 대해서는 엄히(가혹하리만큼) 경계해야 합니다. 단순히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2:14절에서 바울은 베드로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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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적인 결론을 요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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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교회 밖교회 안으로 구분하여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는 조금 범위를 확대한 것입니다. 성경의 실제적 의미는 교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 ‘자기 자신 밖으로의 비판은 엄격히 금지되고 자기 자신 안으로의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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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다른 말로는 성찰 또는 반성이라 합니다. 개인에게 이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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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묵상은 이러한 생각의 범위를 조금 넓혀 교회 차원까지 확대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교회 내로의 성찰에 실패했고 그로 말미암아 현재의 수많은 문제를 초래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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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을 교회 밖의 세상까지로 확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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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인내해야 할 경우라면 침묵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판으로 경계해야 할 경우라면 비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교회를 교회답게 가꾸어나가는 옳은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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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판단 기준은 성경말씀이며 이를 잘 해석하는 뱀과 같은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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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좀더 깊이 묵상해 보시기를 권고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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