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바람소리

[단상] 아마겟돈(Armageddon), 그리고 ‘죽을 맛과 살 맛’ 본문

신앙의 여정/단상

[단상] 아마겟돈(Armageddon), 그리고 ‘죽을 맛과 살 맛’

맑은바람청풍 2022. 7. 31. 09:23

[단상] 아마겟돈(Armageddon), 그리고 죽을 맛과 살 맛

 

. 아마겟돈(Armageddon) 시대의 서막

 

신약성경의 맨 마지막이 요한계시록이며 거기서 천명하고 있는 인류 최후의 전쟁이 곧 아마겟돈(Armageddon) 전쟁이다.

 

므깃도 산에서 하나님과 사탄의 마지막 전쟁으로 세상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천만다행스럽게도 권선징악(勸善懲惡)’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인류 최악의 비극이 인류의 희망으로 전환되는 형식이다.

 

그 어떤 암울한 시기라 할지라도 끝까지 소망을 잃지 말라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 21대 총선 결과

 

대한민국 권력 지도에서 유일하게 좌파의 장악이 유보되고 있던 국회권력마저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진영 분류상 ‘180 120’이라는 세력 구도가 모든 것을 웅변해 준다.

 

이후 펼쳐질 미래상을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선거 전부터 수시로 삐쳐나온 발언들을 통해 그 대강이 쉽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물 만난 고기마냥 설칠 일만 남았다.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처럼 거침없이 질주할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그리고 그 결과는 암담할 것이다.

 

 

. 누가 왜 이렇게 만들었나?

 

인생을 살면서 가장 어리석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후회를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

 

마침 어떤 유튜버가 통합당 폭망 6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방송을 하면서 이런 항목들을 제시했다. ; 국민 수준의 하향화, 기울어진 운동장 방송, 중도층이 통합당 버렸다, 왔다 갔다 통합당, 대권주자 게임에서 완패, 불운 코로나 블랙홀

 

들어보니 평소 강조하던 내용들이 거의 포함되어 있었고 상당히 타당한 관점이기는 했으나 다소 미흡한 면이 느껴졌다.

 

그래서 위의 항목들을 포괄하면서 평소 생각하던 이유2가지로 압축해 보았다.

 

첫째, 통합당은 상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상대의 본질에 대해서는 일말의 유념도 없이 멍청한 자기 논리에 빠져 허우적거렸으니 결과는 볼 필요조차 없다.

 

지피(知彼)’에도 실패했고 지기(知己)’에도 소홀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갈팡질팡했으니 필패는 당연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온 상대방의 투표 및 개표 통제 술수에 눈 뻔히 뜨고 당했으니 할 말이 없다.

 

둘째, 표심을 잡지 못했다. 황교안의 지도자적 역량 부재에 따른 필연이었다.

 

정치란, 특히 민주주의에서의 정치란, ‘대중을 휘어잡아야 한다.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권력 쟁취는 언감생심이다.

 

지도자가 되려는 이에게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바로 부동층(浮動層)’이다. 이들은 줏대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지도자는 외부 영향에 취약한 부동층을 잡기 위한 전략은 단 하나 초지일관 뚝심뿐이다.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갈 때 부동층은 저절로 모여들게 되어 있다.

 

황교안은 처음부터 태극기 세력을 구심점 삼아 올곧은 길을 가야했다. 그리했더라면 배의 항적처럼 주변의 물이 모여들어 세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일찍이 위암 장자연 선생은 이 부류를 일컬어 개돼지라고 설파했는데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견돈족(犬豚族=D&P=Dogs&Pigs)’은 포획하는 자가 임자이다.

 

한 마디로, 통합당 지도부의 멍청함과 견돈족의 무개념이 공명하여 초래된 악몽이다.

 

 

. 문제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는 데 있다.

 

시쳇말에 죽은 자식 나이 세기 또는 불알 만지기라는 게 있다.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말이다. ‘망자계치(亡子計齒)’라고도 한다.

 

이미 기울어진상황을 넘어 뒤집힌상황에서 백약이 무효하다. 촉발되는 모든 후속되는 악재들을 오롯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이후 요행히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보전한다 할지라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상하지 못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심할 경우 30~50년 이상의 피땀을 요구할는지도 모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래가 눈앞에 임박했건만, 이에 대한 인식과 두려움은 눈 비벼도 찾을 수 없다.

 

아무리 경계(警戒)하며 타일러도 소귀에 경 읽기(牛耳讀經, 馬耳東風)’일 뿐이다.

 

그래서 늘 저것들(犬豚族)은 뒈지면서도 왜 뒈지는 줄 모를 것이다!”라는 말을 푸념처럼 반복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는데 무슨 기대가 있을 수 있겠는가?

 

 

. ‘길은 로마로 통하듯 기도는 하나님께로 통한다!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이 상한 마음으로 상천하지(上天下地) 동서남북(東西南北)을 아무리 둘러봐도 현실 타개 수단과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철저한 고립이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절망뿐이다.

 

바로 이 좌절의 순간, 절망의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순간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때가 기도할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불렀던 시편 23편은 형편 좋은 시절의 서정적 노래가 전혀 아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음침한 사망 골짜기에서 죽을 맛을 에둘러 토설했던 절규였다.

 

시편 23편이 암시하는 바는 간단하다. ‘상황이 어찌하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감사 노래를 해야 할 당위성에 다름 아니다.

 

 

. 할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유일한 일!

 

2020년을 지나는 이 시점에서 신앙인과 자유민주 시민이 할 수 있고 또 꼭 해야 할 유일한 일은 한 가지뿐이다.

 

다윗을 본받아 죽을 맛살 맛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아뢰는 일이다! 이것만이 유일한 사는 길이다!

 

주여! 이 나라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