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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묵상

[목자상](추가)(펌글) 어떻게 목사를 믿습니까?

맑은바람청풍 2021. 9. 12. 08:21

[목자상](추가)(펌글) 어떻게 목사를 믿습니까?

 

어느 목사님의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댓글입니다. [목자상] 묵상에서 했던 똑같은 이야기이기에 퍼왔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지, 목사를 어떻게 믿습니까?" 라고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평생 교회 다닌 신자라고 해도 대부분 목사의 입만 바라봅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성경에 무지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 기껏해야 드문드문 수박 겉핥기로 읽은 것뿐인데 그러면서도 또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모른다고 하는 말은 겸손의 표현이라고 서로서로 여겨줍니다

 

그러나 신자가 성경을 잘 모른다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욕하고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후안무치도 그런 후안무치가 없습니다. 뻔뻔하다고 표현하는 것으로도 부족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참된 목사라면 그런 신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질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신자의 가장 큰 부끄러움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목사는 참으로 드뭅니다. 성경에 대한 신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질책하는 대신 목사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태를 순종과 충성이란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맹목적인 엉터리 종교생활을 지속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믿음을 오해하는 가짜신자들에게 당신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믿음 안에서 잘 자라고 있다고 격려하고 추켜세워 주면서 하나님 대신 자기를 따르게 합니다. 배나 더 지옥자식을 만든다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신자는 그렇다쳐도 평생 동안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는 목사들은 왜 그러는 걸까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명 없는 자에게 성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그들 역시 다른 생명 없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을 콕 집어 책망하고 저주합니다. 그들은 신학대학을 나온 정도가 아니라 평생 하나님만을 추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식으로서만이 아니라 삶 자체를 거룩과 경건으로 채우려 애쓴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예수님은 위선자들이라고 정의해 버립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사람들 앞에서와 홀로 있을 때의 행동이 다른 까닭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사람의 의는 결코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없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자기부인'입니다. 차마 하늘을 우러러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세리의 마음, 어려운 가운데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는 과부의 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양념까지도 십분의 일을 덜어 십일조를 지키는 셀프 경건, 셀프 거룩은 ''가 아니라 ''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자일수록 '' 대신 ''을 쌓고, 행하고, 자랑하며, 권면합니다.

 

성경에 통달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어쩌면 가장 빨리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고 누구보다 먼저 그 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는 단 하나, 이미 스스로 의로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자를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이미 의로워진 그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메시아는 필요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이 원한 메시아는 오직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군림하여 그들이 원하는 정의를 세우고 지켜줄 정치군사적 왕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처럼,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시절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민족의 승리와 번영을 구가하게 해줄 메시아가 아닌 구원자는 그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아는 것은 그 내용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하나가 되면 새 생명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의로워진 자는 비록 성경을 통째로 외운다고 해도 절대로 생명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까닭이 바로 그것이고, 오늘날 대다수의 신학자와 목사, 그리고 성경 좀 안다는 신자들이 엉뚱한 길로 가는 이유 또한 그것입니다.

 

흔히 '목사 보러 교회 오나, 하나님 만나러 오지'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저런 문제없는 교회가 없다보니 딴에는 자기를 방어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지만 그 말이야말로 자신이 목사의 입만 바라보며 교회에 다니는 가짜 신자임을 증명하는 말입니다.

 

그 말은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을 모르고, 말씀이신 하나님을 모르고, 지금도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모르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을 모른다는 고백일 뿐이니까요.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외운다고 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무지한 유대민중이나, 성경에 통달한 유대의 종교인들이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다는 데는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지식 있는 자들이 더 배척하고 더 핍박했습니다. 십자가형을 기획하고 민중을 선동해 빌라도를 압박한 사람들은 제사장과 장로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대신 제사장과 바리새인, 율법사와 서기관 같은 종교지도자들을 따랐던 유대인들처럼,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대신 강대상에서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는 목사들의 입만 바라봅니다.

 

생명 없는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던 무리들이 저지른 짓이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상태인지 절대로 돌아보지 않습니다.

 

생명 없는 자에서 생명 있는 자로 바뀐 바울의 변화가 왜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지 의아해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성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궁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십일조 잘 내고, 일요일에 교회 착실히 나오고, 그저 하라는 대로 봉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면 나머지는 목사가 알아서 잘 해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