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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상](32) ‘뿔난 축구공’으로는 축구를 할 수 없다! 본문
[목자상](32) ‘뿔난 축구공’으로는 축구를 할 수 없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 중에는 ‘[목사]론’이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으나 ‘로이’니 ‘패스터’니 ‘클러지’니 하는 용어들도 오간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글에서 조금 살폈기에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일개 구성원인 [목사]가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어찌 되는지 축구공에 비유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럭비공은 발로 찰 수 있지만 주로 손으로 잡고 경기하기 때문에 고구마처럼 타원형입니다. 비록 어디로 튈지 몰라 허둥댈지라도 그래야 럭비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공은 완전하게 둥글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로 차서 골대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만약 축구공이 럭비공처럼 생겨먹었다면 발로 차는 경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담임목사]입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먼저 떠올라 버립니다. ‘○○○ [목사] 하면 ◇◇ 교회’, ‘◆◆ 교회 하면 ●●● [목사]’라고 즉각 연상됩니다. 자동이다 싶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담임목사]가 곧바로 연상되는 교회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바로 커다란 뿔이 달린 축구공입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거대한 뿔이 하늘높이 솟아난 축구공 말입니다.
만약 축구공에 뿔이 달려 있다면 발로 차서 골대에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찬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요? 3가지가 예상됩니다.
첫째,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패널티 지점에 놓고 힘껏 찹니다. 불행하게 뾰족이 튀어나온 뿔을 정통으로 차버렸습니다. 날카로운 뿔이 사정없이 축구화와 양말을 뚫고 급기야 살갗까지 꿰뚫어 버립니다. 고통이 너무나 큽니다. (이 경우는 [담임목사]를 겨냥한 항변을 의미합니다.)
둘째, 전혀 엉뚱한 결과입니다. 다행이 뿔을 차는 불행은 피해지만 어설피 비켜 찹니다. 공은 골대가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축구하는 목적을 원천적으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는 [담임목사] 이외의 지도층을 막연히 겨냥하는 상황입니다).
셋째, 무의미한 헛수고입니다. 뿔도 피하고 빗맞은 것도 피했지만 제대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상대 골키퍼는 힘없이 굴러오는 뿔난 공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순발력이 요구되지도 않고 그냥 손으로 쉽게 잡아 버립니다. 뿔난 공은 아무리 힘껏 차도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경우는 [목사]가 아닌 현실교회에 대한 막연한 자성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뿔난 축구공으로는 결단코 축구 경기를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라는 뿔이 하늘높이 솟아난 교회로는 성경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목사]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목사교’라는 사교집단이 되고 말 뿐입니다.
라틴어 격언 중에 “작대기를 차다”(콘트라 스티물룸 칼케스(contra stimulum calces)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스티물루스(stimulus)’는 ‘가축을 몰 때 사용하는 뾰족한 꼬챙이’라고 합니다.
지금껏 살핀 것처럼 뿔(작대기 = 꼬챙이)을 차면 결과는 항상 똑같습니다. 다칩니다. 망합니다. 실패합니다.
교회는 [목사]라는 뿔이 우뚝 솟아나서는 안 되는 생명체입니다. 오직 성령님에 의해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둥근 공이어야만 합니다.
현존하는 이 세상 모든 교회들이 ‘뿔 없는 교회’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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