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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거룩한 의문들

[의문 001] 예수님 보다 먼저 부활한 성도가 있다?

맑은바람청풍 2015. 6. 29. 22:38

 

[의문 001] 예수님 보다 먼저 부활한 성도가 있다?

 

 

(27:52-53)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은 필수적일 뿐 아니라 장차 우리도 부활한다는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특이한 부활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 부활된 성도들의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은 이때 부활된 성도의 숫자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부활과 유사한 소생 사건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림(왕상17:17-24),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림(왕하4:32-39),

죽은 엘리사의 뼈에 닿아 살아난 시체(왕하13:21),

예수님이 죽은 소녀를 살림(5:35-43),

예수님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림(7:11-17),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림(11:17-44),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림(9:36-43),

바울이 유두고를 살림(20:7-12) .

 

그러나 소생 사건은 부활 사건과는 전혀 다른 현상입니다.

 

소생이나 부활이나 다같이 육체적 죽음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은 같으나, 소생은 다시 육체적 죽음이 찾아오지만 부활은 육체적 죽음을 다시 겪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믿음에서 부활은 그 의미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첫 번째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이라고 알고 있고, 성경도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고전15:20).

 

그런데, 본문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성도들의 부활 시기가 예수님의 부활보다 앞선 것처럼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 아니라 무명의 성도들이라고 기록되어야 할 것 아닌가요?

 

또 이 사건을 위의 예와 같은 소생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소생 사건은 죽은 후 단기간 내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가장 긴 기간은 나사로의 경우로서 비록 부패가 시작되기는 했으나 이 때에도 나흘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성도의 부활은 예처럼 죽은 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본문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이들은 예수님의 운명 순간에 부활되어 3(정확히는 36시간) 동안 무덤 안에 머물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무덤에서 나와 성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자던이라는 표현으로 보아도 이들은 죽은 지가 오래된 자들이었다고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문 :

 

1) 본문 기사는 성도들의 부활사건인가? 만약 그렇다면, 영적 의미는 무엇이며, 부활 시기는 예수님의 부활 이전인가 또는 이후인가, 그리고 만약 예수님 부활 이전의 사건이라면 부활의 첫 열매는 이들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2) 만약 본문 기사가 부활사건이라면, 클라렌스 라킨 목사의 견해처럼 이들도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첫 열매로 대우해야만 하는가?

 

3) 만약 본문 기사가 소생사건이라면 그 해석의 준거는 무엇인가?

보충설명 : 별지(묵상) 참조.

 

 

 

 

<별지 1>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성도들

 

 

들어가기

 

의문 1번은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여 조금 더 간추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의문이기에 성경적 정답을 기대할 수는 없겠으나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누어 본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자 합니다.

 

학자들의 견해

 

이 의문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해석)는 잘 찾아지지 않습니다. 몇 권의 성경 주석에도 언급이 없습니다.

 

그간 제가 유일하게 확인했던 해석은 아래와 같습니다. 출처는 다시 보는 성경 / 클라렌스 라킨 저 / 정동수 외 2인 역 / 두루마리p. 138입니다.

 

참고로 이 책의 역자는 흠정역(KJV)만이 올바른 성경이라 주장하는 침례교파의 목사 겸 교수입니다. 그가 번역한 2-3권의 책을 읽어본 결과, 그의 주장 중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에 인용된 부분도 검증되지 않은 추정으로서 성경과 일치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다만, 제가 접했던 유일한 견해이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인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는 의로운 사람의 영과 혼이 지하세계의 낙원 부분으로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후로 바로 그 낙원에서 회개했던 강도를 만나셨습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시던 날 그리스도의 혼과 영은 지하세계로부터 되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분께서는 혼자만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낙원에 있던 이들을 다 데리고 나오시면서 그곳을 닫아버렸고 그래서 이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갖고 계십니다(1:18). 이 구절의 사망은 무덤을 의미하며 지옥은 지하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온 사람들 중 몇몇은 자기들의 몸을 받아 그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의 첫열매가 되었습니다(27:52-53). 그 나머지는 사도 바울이 들려 올라갔던 셋째 하늘에 올라갔습니다(고후12:14). 사도 바울은 이 셋째 하늘을 낙원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죽은 의로운 자들의 혼은 바로 이곳으로 직접 가서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1:23, 고후5:8).

 

여러 역본들의 표현

 

고전15:20절은 그리스도만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성도들은 오직 예수님만 부활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문은 예수님 외에도 부활한 성도들이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주님 외에 부활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활의 시점이 참으로 묘하다는 점입니다.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무명 성도들의 부활이 주님의 부활보다 앞선 것처럼 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난감한 구절이며 그래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문제의 구절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바로 그 순간의 정황묘사입니다. 주님의 운명순간은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각 복음서마다 매우 간략하게 기록했을 뿐이고, 다만 마태만이 의문을 유발하는 내용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조금 후에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나머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 운명순간의 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15:37-38(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23:44-46(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도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19: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동일한 순간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27:51-53). 여러 역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개역한글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한글흠정역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이 몸이 일어났으며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더라.

표준새번역

그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현대인의성경

그때 갑자기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려 잠자던 많은 성도들이 살아났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후 무덤에서 나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였다.

공동번역

바로 그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옛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거룩한 도시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KJV

And, behold, the veil of the temple was rent in twain from the top to the bottom; And the earth did quake, and the rocks rent; and the graves were opened; and many bodies of the saints which slept arose, And came out of the graves after his resurrection, and went into the holy city, and appeared unto many.

NIV

At that moment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 The earth shook and the rocks split. The tombs broke open and the bodies of many holy people who had died were raised to life. They came out of the tombs, and after Jesus' resurrection they went into the holy city and appeared to many people.

RSV

And behold,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 and the earth shook, and the rocks were rent; the tombs also were opened, and many bodies of the saints who had fallen asleep were raised; and coming out of the toms after his resurrection they went into the holy city and appeared to many.

여러 역본들은 표현상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그 대의는 대동소이합니다. 예수님 운명 순간에 일어났던 자연현상은 성전휘장 파열, 지진, 바위 터짐, 무덤 파괴, 성도들의 부활입니다.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이 다섯 가지 현상은 예수님의 운명과 동시에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시차를 고려해야 할 표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느 역본을 보든,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건까지가 예수님 운명시간에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난 후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학자들은 정확히 36시간만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제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시지요? , 성도들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보다 앞선 것 같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 무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운명 순간에 부활하여 무덤에서 3일간 대기하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비로소 무덤에서 나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는 것이지요(NIV의 분위기는, 무덤에서 미리 나와 있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태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 아니라 무명의 성도들이 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역본들은 영어와 한글 번역들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신약성경은 원래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알아보려면 헬라어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헬라어를 모르기 때문에 제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헬라어 성경을 참조한다 해도 완전한 해답을 도출해 낼 수 있을는지는 장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요. 능력을 지니신 목회자나 신학자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나가기

성경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는 여러 난해한 구절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혀놓은 참고서적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서적들을 보면서 신앙 지식을 넓혀가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한 그럴듯한 해석(견해)을 접해보지 못하여, 제게는 미결의 의문으로 남아있는 난제 중의 하나입니다. 보다 성경적인 의견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기를 부탁해 봅니다. 샬롬.

 

 

<별지 2> 오경준 목사의 답변

 

맑은 바람님 늦게 답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많은 분들이 느끼시는 대로, 27:52-53은 어려운 난제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제부터 제 자신이 깨달은 범위 안에서 최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구절이 어려운 이유는 맑은 바람님께서 적절히 지적하신 대로 이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부활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건 기록을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성소 휘장이 찢어지고”--“지진이 일어나고”--“무덤들이 열리고”--“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고”--“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오고”--“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

 

여기서 보면 분명히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직후에 성도들이 부활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으켜졌다, 혹은 살아나졌다(에게르데산)는 말은 분명히 예수님 사망 이후 곧 이어 일어난 일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맑은 바람님의 지적대로, 이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부활했으니까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아니시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이 부활의 첫 열매(고전15:20)”라고 할 때의 부활, 죽음을 완전히 이긴 상태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 선생님의 설명을 따르자면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는(고전 15:42)” 부활, 즉 완전히 몸이 변화하는 완전한 부활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복음서에는 그런 부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하시는 중에 죽은 이들을 여럿 살리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마태복음9:18에서는 한 직원의 딸로 표현됨)”나인성 과부의 아들그리고 나사로등입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기적으로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히 부활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죽음에서 살아나긴 했지만, 완전히 죽음을 이긴 것은 아니고 앞으로 또 다시 죽음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은" 부활, 즉 부활의 열매라고 불릴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완전한 부활이 아니라, 요한복음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11:4)" “기적적인 부활"만을 경험한 것입니다.

 

같은 차원에서, 27:52-53에 등장하고 있는 성도들의 부활도 완전한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적적인 부활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부활이 야이로의 딸과 같은 기적적인 부활과 자꾸 다른 느낌이 나는 것은, 이들이 부활할 때 지진이 일어나고 무덤 문이 열리는 등 종말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53절의 거룩한 성이라는 표현이 마치 천국을 의미하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당시 예루살렘 성을 거룩한 성이라고 표현하던 습관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4:5, 24:15).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기적적인 부활"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시점과 맞물리기 때문에 더더욱 기적적인 부활이 아니고 주님과 같은 완전한 부활로 자꾸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부활은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 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나사로가 살아난 것과 동일한 의미의 기적적인 부활 이야기이지 결코 완전한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글의 전개 속에 드러납니다. 사실 마태 선생님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이 일반적인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강력히 주장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마태는 주님의 숨을 거두신 직후에 세 가지 범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소 휘장이 찢어짐”, “지진이 일어남”, “죽은 자들이 살아남입니다. 따라서 이 성도들의 기적적인 부활이야기는 종말적인 성도의 부활과 연관되기 전에, 오히려 "일종의 증거 역할"을 일차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의 되살아난 사건은, 주님의 십자가가 일반인의 허무한 죽음과는 달리 하나님의 신비한 영역에 속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과 상통하는 구약의 진술 하나를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13:21에 보면 사람들이 죽은 시체를 엘리사 선지자의 무덤에 던졌는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다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엘리사 선지자가 얼마나 하나님께 인정받던 선지자였는지를 증명해 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당시에 죽었던 성도들이 살아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인간의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주장하신 사건으로, 이를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죽은 성도들의 기적적인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아직도 여전히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만약 이들이 주님처럼 완전히 부활한 것이고 단지 그 부활을 증명하려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것이라면 이들은 주님이 승천하실 때 같이 하늘로 승천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승천 이야기에는 오직 예수님만 승천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이들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맑은 바람님께서 제기하신 또 하나의 의문대로, 성도들이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 직후인 것 같은데, 왜 예수님의 부활 때까지 그러니까 꼬박 3일을 기다렸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은 3일 동안 뭐하고 있었을까? 그냥 무덤에서 대기하고 있었을까요? 그렇게 보자니 3일이나 대기해야 할 장소가 너무 음침한 곳입니다. 아니면 벧전3:19의 말씀처럼 주님과 같이 지옥에 갔다 온 것일까요? 그렇게도 볼 수 없는 것이, 그들은 주님처럼 영적인 몸으로 부활을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죽기 전의 육신 상태로 되살아난 것일 뿐이므로 그렇게 영계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구구한 의견들이 분분한 이 문제에 대하여 저는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구약의 엘리사 사건뿐 아니라 또 다른 구약의 한 부분과 상당히 유사한 병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에스겔3712-1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 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 인줄 알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마태 선생님이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성도의 부활 사건을 기록하시면서 구약 에스겔서의 이 구절을 함께 연상하셨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에스겔서가, 백성들이 무덤에서 나오게 되는 사건의 결론을 너희가 나를 여호와 인줄 알리라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 무덤에서 성도들이 살아난 사건의 결론도 마27:54에 나오는 대로 사람들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두 사건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동일 맥락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는 예수님 당시의 성도들이 무덤에서 살아났지만 3일이나 후에 나타난 이유를, 이 사건과 병행을 이루는 겔37:12-13 바로 위에 있는 겔37:1-11에서 찾습니다. 거기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서 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뼈들은 한번에 살아나지 않고 여러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살아납니다. 먼저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뼈가 서로 들어맞고 마지막으로 생기가 들어가고......

 

저는 예수님 당시에 살아난 성도들의 무덤 속에서, 바로 이 에스겔서에서 예언되었던 과정이 3일 동안 진행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성도들은 한순간에 살아난 것이 아니고 3일 동안 천천히 살아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예언된 코스대로 말입니다. 사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누군가를 고치실 때 즉각적으로 고치시지 않으시고 시간을 들여서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치신 적도 여러 번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8:22 벳세다 소경사건, 9:7의 실로암 사건 등 참조). 이렇게 보면 마27:52-53사건은 겔37:1-13말씀과 순서로나 결론으로나 모두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를 첨가한다면, 제 생각에는 당시 마태 선생님네 교회 속에 좀 쳐지고 맥 빠진 분위기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성도들의 신앙 속에 활력과 생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태선생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쓰면서 당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던 성도들의 이야기를, 에스겔서의 마른 뼈 이야기 형태를 압축시킨 듯한 분위기에 담아서 전달하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공동체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때 다시 살아났던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옛날 에스겔 골짜기의 천천히 되살아난 마른 뼈들처럼 다시 서서히 활력있게 되살아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별지 3> 오경준 목사의 답변에 대한 이의

 

목사님,

우선 전체적으로 잘 정리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원래 난해구절로 생각하던 곳이라 목사님의 설명에 이의를 제기할 상황은 아닙니다.

그대로 수용하여 앞으로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완전한 부활과 기적적 부활에 대해서는 조금 의견을 달리합니다.

제 글의 첨부에도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저는

완전한 부활 = 부활 = 예수님처럼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 난 후 육체적 죽음을 겪지 않는 것

부분적 부활 = 소생 =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8번의 사건처럼 육체적으로 살아났다가 후일 육체적 죽음을 다시 겪는 것으로 정리했었습니다.

저는 이 8번의 사건을 부활과 대비하여 "소생사건"이라는 용어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은 이렇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활 성도들의 경우, 성경 표현과 분위기 상으로 볼 때, 이는 부활로 보아야 하지 소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당시 상황을 추론해 봐도, 이들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생한 것 같지는 않으며

또 후일 다시 죽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기록된 8번의 소생사건의 당사자들의 2차 죽음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들은 모두 다시 죽었다고 보아야 합니다(그래야 예수님의 부활이 최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경우는 위의 8번의 사건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만약 본문을 9번째의 소생사건으로 생각한다면(이것이 목사님 설명이지요?)

이 구절은 난해구절이 될 수 없습니다.

부활로 볼 때에만 난해구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제외한 다른 설명은 충분히 공감됩니다(제게 별다른 견해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

 

개강도 하셨고 논문준비에 여념이 없으실 것 같아

이제는 질문들 드리기도 염치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꼭 알고 싶은 주요 의문이 2-3개 정도 더 있는데요).

조금 자제했다가 목사님 형편이 나이지면 그때 다시 질문 드리기로 하지요.

 

아무튼 정성스런 답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계획하신 일들이 모두 순조롭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

 

 

 

 

 

<별지 4> [박진호 목사의 답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에 관해 질문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무덤에서 일어난 사건 자체도 난해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시간적 순서가 분명하지 않아서 지적하신 대로의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사건은 사복음서 중에도 마태만이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는데다 그 기록마저 과학적, 객관적, 사실적 기록이 되지 못해 더욱 해석에 혼선을 빚게 만듭니다.

 

따라서 제가 드리는 설명도 질문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하나의 의견으로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인간의 추적이 더 이상 불가능한 부분은 성경의 기록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무리 학술적으로 뛰어나고 영성이 깊은 신학자라해도 취할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소생(蘇生-reanimation)인가 부활(復活-resurrection)인가?

 

무덤에서 자던 성도들이 일어난 사건이 만약 소생이었다면 아무 문제 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생전에 이미 죽은 자도 여러 번 살렸고 또 구약의 선지자들도 그런 이적들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부활이라면 왜 자던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또 그 성도들이 언제 부활했으며, 부활의 첫 열매가 누구인가라는 질문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소생은 완전히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또 죽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을 제외한 신구약을 망라해 성경에서 죽었다 살아난 자는 전부 소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나, 옐리사가 살린 과부의 아들이나, 바울이 살린 청년 모두 그렇습니다.

 

본문의 경우에는 무덤에서 나온 성도들이 그 후에 죽었는지 영원토록 살았는지에 관해선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함께 하늘로 올라 간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고, 또 그들이 계속해서 살아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에 부활이 아니라 소생으로 보기도 합니다.

 

소생은 비록 육신은 썩기 시작하겠지만 항상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자들이 되 살아나는 것입니다. 완전히 형체도 없이 사라진 이후에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경우에는 조금 그 사정이 다릅니다. 우선 무덤에서 자던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저자 마태는 유대인이었고 유대인들의 사상으로는 죽은 후에는 음부로 가서 메시야가 올 때까지 부활을 기다리며 누워 자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자던 성도들이란 이미 죽은 후에 한참 지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그들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나면 그 영혼마저 완전히 육신을 떠난다고 봅니다. 나아가 죽은 후 오래 된 시체에서 뼈를 추려서 돌로 된 납골상자(Ossuary)에 옮겨 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자던 성도들이 일어나 나올만한 오랜 무덤 안에는 소생이 될만한 혼이나 중요한 뼈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야가 오면 부활이 있을 것이라 믿고 기대했던 유대인 저자 마태로선 진정한 부활로 인식하고 기록했던 것 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신구약 합쳐서) 마지막 때에 가서야 그것도 신령한 육체를 덧입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모습이어야만 부활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승천한 것도 아니고, 신령한 육체를 입었다는 표현도 없고, 나아가 영원토록 살았다는 기록이 없으니 완전한 부활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알기 쉽게 추론하면 부활은 반드시 새로운 육체를 덧입어야 합니다. 그것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육체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예수님 때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심판을 받은 불완전하고 부패한 모습입니다. 부활한 신령한 육체가 살 수 있는 여건이 아직 안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무덤에서 일어난 그들이 영원토록 살 수 있으려면 두 가지 길뿐입니다. 사단이나 천사처럼 영의 존재 양식을 가지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따라 승천을 했던지 해야 합니다. 전자는 완전한 부활이 아니고, 후자는 성경의 기록이 뒷받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기록을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후대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넘어서 함부로 추측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소생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다른 모든 소생과는 전혀 양태가 다르며 한 차원 높은 소생이었고, 부활이라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완전한 부활에는 부족한 부활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이뤄진 구원의 완성으로 죽은 성도는 반드시 부활한다는 완전한 예표 -실례(實例)는 아직 아님-로 죽음에서 일어난 것만은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이하 부활로 표기함)

 

부활의 시간적 순서

 

마태복음에 따르면 무덤에서 자던 자들이 일어난 시간이 마치 성전 휘장이 찢어지던 것과 동시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말 번역상으로는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27:51-53)라고 했습니다.

 

우선 무덤들이 열리며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를 연결하여 한 문장처럼 기록했기에 동시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입니다. 일어나되라고 앞뒤의 문장을 대칭되는 내용으로 연결했기에 부활한 것과 무덤에서 나온 것이 별개의 사건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에 부활은 먼저 일어났는데, 삼일간 무덤에 있다가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로 살펴봐도 한글 성경과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있지만 애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And behold, the veil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 and the earth shook; and the rocks were split, and the tombs were opened; and many bodies of the saints who had fallen asleep were raised; and coming out of the tombs after His resurrection they entered the holy city and appeared to many.”(NASV)

 

언뜻 보면 and라는 등위 접속사로 별개 사건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각 사건들이 세미콜론[:]으로 연결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세미콜론은 마침표와 쉼표의 중간적 의미입니다. 마침표로 구별되어야 할만큼 완전히 별개의 사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시에 한 장소에서 계속 연결되어 일어난 사건들로 쉼표로 이어서 표현할 내용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중간인 의미, 즉 동일 주제로 연관된 사건이지만 각기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after His resurrection”(예수의 부활 후에)라는 수식구가 어디에서 어디까지 적용되느냐는 애매합니다. 즉 자던 자들이 그전에 일어났지만 단지 예수의 부활 후에 무덤에서 나온 것이냐 아니면 자던 자들이 일어난 것도 예수의 부활 후로 보아야 하느냐가 명석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질문자님께서 지적한대로 헬라어 원문을 참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헬라 원문에 따르면 무덤들이 열리며에서 구두점으로 앞 문장이 종결되어야 합니다. 반면에 52절 후반부의 무덤(tombs)과 후에(after) 사이에는 ‘and’나 다른 어떤 구두점으로든 쉼이 없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그 부분이 한 문장으로 연결되어야 맞습니다.

 

따라서 영어로 다시 표현자면 tombs broke open. And the bodies of many holy people who had died were raised to life, and, having come out of the tombs after Jesus’ resurrection, they went into the Holy city.”가 되어야 합니다.(J. W. Wenham, “When Were the Saints Raised?” 1981, 150-52) 예수의 부활 후에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에도 함께 걸리는 수식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말 개역 성경에는 이런 시차 상의 구분이 없이 죽 연결되어 번역된 까닭은 아마도 영어 역본을 우선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운명함과 동시에 지진이라는 자연적 재앙이 일어났고 그 재앙으로 두 가지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성전에서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는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덤이 열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전자는 성전의 막힌 담이 무너지는 복된 사건이기도 하지만(2:14) 마태복음 23, 24장에서 경고된 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의 의미도 있습니다. 후자는 구원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죽음이 정복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본의 문법적 분석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풍습대로 바위 굴을 막는 둥그런 돌이 지진으로 터졌거나 굴러 벗겨지긴 했지만 성도들의 부활은 예수님 부활 전까지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 부활의 시간적 순서를 따질 때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는 유월절 절기 중이라 어떤 유대인들도 무덤 곁에 가려 하거나 혹시라도 무덤이 열린 것을 알아도 그 속을 살펴 보거나 무덤을 다시 닫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는 것은 율례를 어겨 부정해질 뿐만 아니라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부활 후에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나타나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고 당연히 마태도 시간적 순서를 정확히 알 수 없었을 개연성이 더 많았다는 뜻이 됩니다.

 

누가 부활의 첫 열매인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예수님입니다. 사실은 시간적 순서로 따질 이유도 없습니다. 완전한 헬라어 성경 원본과 당시 목격자가 현재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부활의 시간적 순서를 아무도 모른다 쳐도 그렇습니다. 만약에 성도가 시간적으로 먼저 부활했다 할지라도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부활은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없이는 절대로 성도의 부활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인 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여 공적인 장소에 나타난 후라는 마태의 기록이 이 사실을 더 확증해줍니다. 즉 만에 하나 성도들이 먼저 부활했다 할지라도 삼일 동안 무덤에 머무르게 한 것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기들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들은 무덤에서 자다 일어난 자라 예수님에 대해서 또 바로 직전에 예루살렘 성에서 일어난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몰랐을 수 있습니다. 성경도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들을 죽음에서 일으켰고 그런 부활은 메시야가 도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는 확신했을 것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는데 그 구원의 궁극적 모습은 부활로 이뤄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활시키기 위해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인데 구세주 당신이 부활의 첫 열매가 아니고선 그 부활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아가 삼일 간 성도들의 무덤이 열린 채 빈 무덤으로 있었다는 것(앞에서 설명한대로 무덤 안에는 시체의 잔존물이 거의 없음)이 바로 예수님의 빈 무덤과 일치하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저자 마태가 후대인들이 혼동할 정도로 시간적인 엄격한 구분 없이 기록한 이유는 부활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뜻이었습니다. 즉 예수의 부활로 이땅에 일어난 여러 생명력 넘치는 상황들을 한데 묶어서 표현하기 위해 정상적인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연결해서 서술한 것입니다. 영어 성경이 세미콜론으로 연결되어서 번역되었고 그에 따라 한글 성경이 한 문장으로 죽 연결된 채 번역된 것이 결과적으로 저자가 의도한 고유의 의미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 기록에 대해 마지막으로 신자들이 갖는 몇 가지 의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성도들에게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왜 다른 성도들은 함께 일어나지 못했는가? 그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단지 분명한 것은 예수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 때에 분명히 영육간에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부활한다는 예표로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했을지라도 성령의 유기적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직 당신의 말씀에 근거해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2,23)

 

 

 

 

 

 

 

 

 

 

 

 

 

 

 

 

 

 

 

 

 

 

 

 

 

 

 

 

 

 

<별지 5> 죽으실 때 일어난 사건-부활인가 시체드러남인가?

(출처:http://cafe.daum.net/soongsari / 성경토론방 / 글쓴이 eyeguard)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태 27:50-54

 

 

예수께서 죽으실 때 일어난 이 사건을 가장 불가사의한일이라고 부릅니다.

 

에피파니우스와 그 밖의 초기 교부들거룩한 자들이 문자적으로 살아나서, 부활되신 예수와 함께 하늘로 갔다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테오필락투스, 지가베누스 등그 죽은 자들이 일시적인 부활을 받았으나 나중에 무덤으로 되돌아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견해는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고 학자인 에리히 파셔는 논평합니다. 많은 현대어 성서 번역본은 마태복음 27:52, 53을 번역할 때 부활이 일어난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성구를 자세히 보면 이 사건이 지진의 결과임을 지적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거룩한 자들이 누구였든지 간에, 마태는 그들의 몸 곧 시체가 일으킴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둘째로, 마태는 그 몸들이 살아났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몸들이 일으킴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일으키다를 뜻하는 희랍어 동사 에게이로는 언제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단어는 단지 구덩이에서 끌어내다혹은 땅에서 일어나다를 뜻합니다. 그렇게 사용된 예를 보시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마태 12:11)

 

예수께서 죽으실 때 발생한 진동으로 인해 무덤들이 열리고 생명 없는 몸들이 튀어나와 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진 중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경우가 기원 2세기에 그리스 저술가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에 의해 보고되었고, 보다 최근에는 1962년에 콜롬비아에서 그와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그렇게 보는 견해는 성서의 가르침과 조화됩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부활에 관해 확신케 하는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마태 복음 27:52, 53을 완전히 도외시합니다. 다른 성서 필자들도 모두 한결같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실 때 일으킴을 받은 시체들은 일부에서 생각한 것처럼 살아났을 리가 없습니다.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골로새 1:18) 역시 거룩한 자들로 불리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1세기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중에 첫째 부활에 참여할 것임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지진 때 죽었던 자가 부활한 것이라면 바로 그때 부활한 사람들이 왜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고 않고 또 다른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활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난 후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부활되신 후에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부활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성에 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53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무덤에서 나온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들은 부활한 사람이 아니고 그 무덤들을 찾아갔다가 그 일에 관한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해 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진 때 부활 후 바로 예루살렘에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 부활 후 즉 사흘 후에 예루살렘에 간 것입니다.

 

지진 때 밖으로 드러난 몸들은 생명이 없었으므로, 예루살렘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에 관한 성구들과 비교해 보면 이 구절이 부활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무덤에서 시체들이 튀어나온 것을 묘사하는 말임이 분명합니다. 그와 비슷한 사건이 1949년에 에콰도르에서 그리고 1962년에 콜롬비아의 손손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때 땅의 강력한 진동으로 공동묘지의 무덤에서 시체 200구가 튀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깊은 신중한 성경연구는 성서 이해의 깊이를 더해 주며 부활과 관련하여 혼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 주장은 마치 중국무협의 강시나 미국영화의 좀비와 같은 느낌이 듬. 상상은 될 수 있으나 올바른 해석으로 간주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