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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04] 예수님의 잃어버린 시절(The Lost Years of Jesus' Life)
예수님의 생애 중 12세에서 30세까지의 기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로 인하여 특히 불교 측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기간 동안 인도와 티벹을 방문하여 불교를 공부하였다고 주장한다.
수년 전에 읽었던 “성약성경”이라는 책은 인도에서의 예수님의 행적을 성경처럼 구성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아래의 글은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썬다 싱’의 「사건 모음집」(1915년)의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나는 1912년 3월 18일 푸우를 떠나 카눔으로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마다 전도를 하며 나아갔는데, 어느 큰 사찰 앞에서 승려 한분과 조우했다. 그는 달라이 라마보다 한 직위가 아래인 타시 라마의 스승이었던 고승으로서 그 절의 주지직에 있었다. 나는 그 주지에게 혹시 이 절에 예수의 행적에 관한 문서가 전해 내려오는 게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왜냐하면 최근 들어 노토비취(Nicolas Notovitch)라는 러시아인이 그의 책에서 밝히기를 그가 티벹의 어느 사찰로부터 고서(古書) 한 권을 보았으며, 거기에는 기이하게도 ‘예수의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언급과 티벹까지 왔다 간 행적이 적혀 있다고 썼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물어 보았던 것이다. 그 주지는 ‘원, 별소리를 다 듣겠소. 사실무근이오. 이 사찰의 장서고에 그런 책은 있을 수가 없소’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는 덧붙이기를 ‘하기야 몇 백년 전에 선교사들이 잠입해서 국왕 한 분을 개종시켰던 적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소’라고 말했다.”
성경이 지니는 여러 가지 특징 중의 한가지는 그 대담한 생략이라고 할 수 있다. 서술의 흐름이나 기법이 매우 간략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의 시각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을 다루려는 의도에서 이 같이 기술하였을 것이다. 멜기세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견해로 본다면 예수님의 ‘잃어버린 시절’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는데 꼭 필요한 부분은 아니었기에 기록하지 않으신 것은 아닐까?
피상적으로 보면 문제는 예수님이 인도에 다녀왔는가 아닌가의 사실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다 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인도여행 여부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녀왔어도 문제될 것이 없고 다녀 오지 않았어도 문제가 아니다.
실제적인 문제는 성경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즉, 예수님은 성경에서 단 한곳에서도 인도 방문과 불교 공부에 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십분 양보하여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 인도를 방문하여 불교를 공부하시고도 성경에서 한번도 이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이는 불교의 허구성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언급할 가치가 조금도 없기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을 것이다.
불교이론은 단순한 인간의 추론일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께서 인도 여행의 가부에 관계없이 불교에 대해 언급치 않으신 것은 헬라철학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으셨던 것과 똑 같은 이치이다.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에 불충분한 점을 찾아내었는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오히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 고민인 것이다.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춘 성경에서 불교이론의 필요성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의문 : 왜 성경은 예수님의 생애 중 일부를 누락시켰을까? 위의 추정이 타당할 수 있는가?
<자료 1> 예수님이 석가의 제자였었다는 주장설
(출처 : http://cafe.daum.net/Jesus1004you / 힘들 때 신앙상담)
Question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성경의 연대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예수님이 중간에 일하시지 않는 동안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이 말을 절에서 불교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Answer
1. 예수께서 석가의 제자였다는 주장에 제기된 배경
복음서는 13세29세까지의 행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복음서에서 침묵하고 있는 <예수의 생애>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생략된 <예수의 17년>을 찾아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러시아의 저술가 니콜라스 노토비치는 1887년 인도와 티벳 지방을 여행하다가 라닥 지방의 수도인 레(Leh)근처의 하이미츠(Himis) 사원에서 티벳어로 기록된 예수에 관한 기록을 발견했으며, 이를 근거로 해서 1894년에 불어판으로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생애 - 성 이사(Issa)의 일대기>를 출판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일이 있습니다. 또한 한양대 불문학 교수 민희식 박사는 <법화경과 신약성서>라는 책에서 신약성서의 내용 중에 많은 내용이 불교의 <법화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고, 또 1980년대에 프랑스 학자 필립 드 슈아레는 <도마에 의한 복음서>를 써서 유럽 종교계에 큰 파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슈아레는 예수께서 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상이 유태교의 메시아 사상과, 초대 교회 당시 영향력을 가진 헬라철학에 맞추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변화가 생겼다고 주장합니다.
2. "이사(Issa)전"의 내용 요약
질문하신 내용은 니콜라스 노토비치가 티벳 사원에서 발견했다는 <이사(Issa)전>을 근거로 한 쓴 것입니다. 그는 이사전에 언급된 "이사(Issa)"가 "예수"와 동일 인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사(Issa)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이사의 출생 및 어린 시절 이야기(1장-4장 중간)
2) 이사의 13-29세까지의 이야기(4장 끝-8장)
3) 이사의 팔레스타인 전도 활동 중에 일어난 이야기(9장-14장)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복음서에서 침묵하고 있는 13-29세(4장 끝-8장)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도 오릿사주의 왕족인 라반나는 이스라엘의 제례에 참석하러 왔다가 이사의 총명함을 보고 예수에게 인도의 수학을 주선해 준다. 그리고 라반나의 권유로 이사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인도 쟈간나스의 한 절에 들어가 4년간 수행을 하며, 베다 경전과 마니 법전을 공부한다.
* 수행을 마친 후 이사는 의술을 배우기 위해 당시 인도에서 명성이 가장 높은 '우도카라'라는 의사의 제자로 입문한다. 이사는 의술을 배우면서 유대의 [시편]과 [아베스타]경전을 읽고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익히게 된다.
* 당시 이사는 평등사상에 심취했는데, 인도에서는 이러한 이사의 사상이 그들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에 위협을 준다고 해서 이사를 정죄하게 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사는 '라마나스'의 도움으로 인도에서 네팔로 피신하게 되고, 그곳에서 '비자빠찌'라는 성자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 네팔을 떠난 이사는 티벳으로 가서, 당시 요동 최고의 성자인 '멘구스테'를 만나 티벳에 비장되어 있는 수많은 경전을 섭렵한다. 24세에 수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이사는 페르시아에 들려서 자신이 태어날 때 찾아온 마기교 승려 '홀', '룬', '메루'라는 3인의 동방박사와 재회한다.
* 집에 돌아온 이사는 다시 아테네로 건너가서 [아포로]라고 하는 성자와 대화를 나누며, 헬라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 25세가 된 이사는 이집트로 건너가서 형제단이라는 성자들의 모임에 입회하여 활동하였고, 이 곳에서 최고의 칭호인 그리스도라는 법명을 받게된다. 30세가 된 예수는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다.
3. 이사(Issa)전에 대한 논란
노토비치는 이 이야기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된 지 3-4년 후에, 그 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상인들이 인도에 전한 목격담을 기초로 해서 쓰여졌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신약 성서에 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출판되자마자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스웨덴, 이탈리아 등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역사가들이나 신학자들 간에 노토비치가 목격했다고 말하는 <이사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존재한다고 하면 그 책에 나오는 이사가 과연 예수인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사전>이 조작되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을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자료라고 말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네루가 쓴 "세계사편력"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연구한 권위있는 학자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중앙아시아나 인디아의 영향을 받았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이 이야기는 계속해서 전달되어 왔습니다.
4. 운영자의 입장
저 역시 이사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약 성경에 인도에서 수행한 일이나 석가로부터 배운 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
내가 만일 이사였다면, 내가 젊은 때에 그토록 큰 영향을 받았던 힌두교나 불교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나, 제자들에게 자주 언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이러한 언급을 한 것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의 제자들 역시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2)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이 힌두교나 불교와 너무 다름.
만일 예수께서 힌두교나 불교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최소한 유대교와 인도 종교를 모두 수용하는 다원주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일체 다른 종교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유일신 사상을 주장하고 있으며, 여호와와 자신을 믿는 일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께서 석가의 제자였다는 주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3) 자료 자체에 믿기 어려운 내용이 많음.
이사전의 마지막 부분인 9장에서 14장까지의 내용에는 신약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내용과 다른 부분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구약성경에서 메시아 전령으로 예언된 세례 요한에 대한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으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인 부활에 대한 언급도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내용을 조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부활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짓는 가장 큰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예수를 석가의 제자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전에서 부활 이야기를 생략한 부분은 아무래도 자연스러워 보이지가 않습니다.
또한 이사전은 예수를 속죄양으로 몰아 처형하게 만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아무 죄가 없으며, 모든 일은 빌라도가 이사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꾸민 음모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만일 이사전의 내용대로 예수께서 부처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유일신을 부정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예수는 마땅히 신성모독죄로 간주되어 처형당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처형에 아무런 죄가 없었다는 언급은 전혀 앞뒤가 맞질 않습니다.
노토비치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빌라도에게 변죄부를 주고, 유대인에게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전가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당시의 역사 기록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빌라도가 로마 총독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빌라도의 보고서"에는 예수께서 죄가 없음을 알고 그를 사면하려 했지만, 유대인의 선동으로 할 수 없이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4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이 정확하며, 이사전의 주장이 그릇 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전은 빌라도가 이사가 부활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사의 시신을 다른 곳에 옮겨 묻으라고 명령했으며, 사람들이 무덤이 열린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성자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 역시 믿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교도인 빌라도가 예수의 부활을 믿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한 번 매장된 시체를 다시 꺼내서 다른 곳에 옮겼다는 것도 믿기가 어렵습니다. 4복음서를 보면 무덤을 지킨 사람들은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간 후에, 예수께서 부활했다고 주장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군인들을 빌려서 그 무덤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빌라도가 예수의 부활을 염려해서 그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주장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또한 만일 정말로 빌라도가 예수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활했다고 주장할 때에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그 시체를 공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이사전에 기록된 내용들은 복음서의 내용과 비슷하게 일치하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사전에는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 짓게 하는 내용들, 즉 부활이나, 승천, 재림 등과 같은 내용들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이 없다면 기독교는 처음부터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에는 이사전의 내용이 복음서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4) 이사라는 사람이 예수라는 사실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노토비치는 예수의 불교식 이름이이사라고 주장하면서, 이사전에 언급된 이사가 예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사가 정말로 예수인지, 아니면 동시대에 살았던 다른 사람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사람인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기"라는 사람을 "석가"라고 하는 것과 같고, "차사"라는 이름을 "철수"라고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해 연구한 권위있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중앙아시아나 인디아의 영향을 받았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5) 이사전을 전체 성경보다 더 권위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사전은 전체 성경의 내용과 매우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사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전체 성경을 부인해야만 합니다. 만일 어느 날 한 사람이 알려지지 않은 문서를 하나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믿고 그 동안 불교에서 믿어온 모든 불경을 버리라고 하면 불교의 승려들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의 객관적인 권위나 사실성은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그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에게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날 한 사람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름 모를 문서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이 증거하는 모든 증언을 부정하고 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
<자료 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i eli lama sabachthani)
<인터넷 카페에 떠도는 글>
예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다. 그는 84세 까지 프랑스에서 살다가 노환으로 죽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해 그곳에서 마그달레나(막달라)마리아와 결혼하고 자손을 뿌리며 84세까지 살다 죽었다는 사실은 영국 BBC 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널리 알려지고 영국 법정에서 공식 확인된 사실이다.
결과를 지켜본 천주교 사제, 수도사, 수녀들과 개신교 목사, 강사들은 그런 판결이 나오자 옷을 찢고 통곡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사태를 우려한 영국 정부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매 및 해외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이미 판결을 본 영국 크리스챤의 80%가 크리스트교신앙을 버리고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로 돌아 서거나 무신론자가 되었다.
때문에 유럽과 아메리카의 교회와 성당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각지에서 사제와 목사들이 “예수에게 속았다.” 라며 목을 매고 자살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런 대 사태를 불러온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라는 주장을 펼치고 그 증거를 제시한 이들이 말하는 예수의 생애는 대략 이렇다.
로마 제국 초기.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한 유대 왕국에서 태어난 예수는(로마병사인 판델라가 마리아를 강간하여 예수를 낳았다는 말이 있고 실제로 독일에서는 판델라의 묘비까지 발견되었다.) 13세가 되어 많은 신분 높은 이들이 그를 사위로 맞이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은 어려서부터 그의 총명함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 왕실의 제례에 참례하러 왔다가 예수의 총명함을 보고 인디아에 유학할 것을 권유한다.
라반나의 권유에 마음이 끌린 예수는 인디아의 신드지방으로 오게 된다. 그 후 10년 동안 인디아와 네팔, 티베트에서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를 익히고, 열심히 종교와 각종 학문을 공부하는데 처음에는 브라만교(힌두교의 뿌리)에 속하였으나 나중에는 붓다(불타=부처) 샤키야무니(석가모니= 고타다 싯다르타)의 교리에 눈을 뜨게 되고 그의 평등사상을 받아들여 불교에 귀의하고 승려가 되어 ‘이사(ISSA)라는 법명을 사용한다. 그리고 24세 때 페르시아를 경유하여 귀국하던 중 자신이 태어날 때 찾아온 조로아스터교 사제 ’홀‘ ’룬‘ ’메루‘의 3인의 동방박사와 재회합니다.
집에 돌아온 예수는 오래지 않아 다시 아테네로 건너가 ‘아폴로’라고 하는 성자와 대화를 나누며 소크라테스를 근원으로 하는 그리시아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기도 한다. 25세가 된 예수는 이집트로 건너가 형제단이라는 성자들의 모임에 입회해 활동하며 최고의 칭호인 크리스토스(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법명을 수여 받게 된다. 그리고 30세가 된 예수는 비로소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신의 복음을 전파하기에 이른다.
위의 이야기는 1887년 러시아의 언론인 니콜라이 노토비치가 인디아와 티베트를 여행하던 중 라마교 승려에게서 예수의 13세에서 24세까지의 인디아 행적을 담은 불경인 <이사전>을 보고 고사본 들을 입수하여 불어판으로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생애-聖(성) 이사의 일대기>를 출판함으로써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후 수십명의 사람들이 인디아와 티베트를 방문하여 이를 확인하여 왔던 바 이를 종합하여 1984년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가 발간한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의 줄거리다.
이를 근거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펼친 이들은 신약성서와 불경에 비슷한 내용이 많은 이유가 위의 이야기처럼 예수가 원래 인디아와 티베트에서 공부한 불교승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예가
0 붓다는 40일 단식 때 마라 라는 악령의 시험을 받았다.(불경 상응부경전)
- 예수는 40일 단식 후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루가 복음 4장 1절)
0 붓다는 12제자를 모든 계급의 사람에게 파견하였다.(아함경)
- 예수는 12제자를 유대 전역에 파견하였다.(마테오 복음 10장 1절)
0 붓다의 열성적인 제자가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던 중 붓다의 확신을 받고 다시 끝까지 걸어갔다.(본색경 무쌍품)
-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믿음이 약해 물에 빠지는 것을 예수가 건져 주었다.(마테오 복음 14장 25절)
0 붓다는 발위에 있는 한 개의 떡으로 5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본색경 주석 78)
- 예수는 5개의 떡과 2마리의 물고기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마테오 복음14장 17절)
0 붓다는 과부의 두 냥 헌금이 정말 값지다고 했다.(잡보장경)
- 예수는 과부의 한 냥 헌금이 거룩하다고 하였다.(루가 복음 21장1절)
0 사기꾼이 인도하면 개천에 빠진다.(무문자 설경)
- 소경의 인도로 구덩이에 빠진다.(루가 복음6장)
0 아시타가 천사들을 목격(본색경)
- 목자들이 천사를 보다(루가복음 2장)
0 니르바나(열반)와 재물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무문자설경)
- 신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루가 복음16장)
0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타향에서 허랑 방탕하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오히려 환대하며 돌보는 아버지의 이야기인 장자궁자(법화경 신해품)와 신약성서의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루가복음15:11)
0 예수의 산상수훈은 불교적 교리들이 가장 집약되어 있는 부분으로 법구경에서 붓다가 설파한 사랑과 자비의 설법과 똑같다. 고향에 돌아와 핍박받는 헤브라이 민중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의 마음에 평화를 불어 넣던 예수는 인류 구원신화의 완성을 위해 가장 신뢰하는 제자 이스칼리오트의 유다스(가롯 유다)에게 고육지책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끔찍하게도 유다스에게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스승인 예수 자신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기라는 것이었다.
유다스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결국 설득당해 스승이 원하는 대로 그를 대제사장들에게 넘기고 예수는 다시 로마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6시간 후에 죽은 뒤 3일 만에 부활한다. 그런데 이것은 처음부터 예수와 그 추종자들이 계획한 시나리오로 원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최소 일주일은 걸려야 죽는데 이상하게도 예수는 6시간 만에 죽는다.
즉 이것은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려는 예수의 연극이었고, 처음부터 예수의 계획에 의거 가담한 마그달레나(막달라) 마리아는 재산이 많은 고급매춘부로서 예수와 깊이 사랑을 나눈 연인이었다. 그녀는 로마 총독과 그 대리인에게 뇌물을 주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척 하는) 예수의 몸을 장사지내고 계획대로 3일후에 무덤에 가서 꺼내 주고 데려오죠.(애초에 십자가형을 받아 죽은 것은 예수가 아닌 바라파스라는 주장도 있다.) 그후 예수는 마그달레나 마리아와 일련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로마 제국 영토인 프랑스(당시 갈리아)에 와서 마그달레나 마리아와 결혼하여 씨를 뿌리다가 84세 때 죽었다.
현재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마그달레나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랙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라자로는 마르세이유(당시 마실리아)에 주교관구 켈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를 세웠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고트 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 이후 크리스트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후손들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았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혈족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예수 가문의 비밀에 대해 성전기사단(1118년 성지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수도사 군대)과 그 모체인 시온수도회라는 악명높은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리고 이 조직들은 근대에 들어와 프리메이슨의 모체가 되어 현재 은밀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고 그것이 중세 성전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 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개신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크리스챤이 주심 판사를 맡아 3년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프랑타르 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이한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엘리 엘리 사먁 삼보리’를 세 번 반복하였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지막 말에 모든 것을 다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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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인터넷 카페 자료에서 퍼온 글입니다.
혹여 종교적 갈등으로 인하여 그 파급 효과가 클 수도 있기에 사실 게시하기가 곤란하였습니다. 제작 직접 확인하여 올려야 하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글을 옮겼습니다.
1. 영국 이라고 정확한 국적을 밝혔음.
- 이것은 국가 간의 분쟁을 야기할 수 있음에도 국가 이름을 밝혔음.
2. BBC 방송국; 현 방송국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음.
-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BBC 방송국이 사실 무근이라면 가만 있을리 없을 터.
3. 신성한 영국 법정 판결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 영국 법정에서 판결된 판결문의 일부만 공개되었고, 또한 책자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판결을 BBC가 방송을 하였음.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이글을 옮겼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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