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바람소리
[묵상] 교회의 허상과 업신여김 당함 (4) 본문
[묵상] 교회의 허상과 업신여김 당함 (4)
♣ 주제 성구 = 고전11:22(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자, 이제 지금까지 아껴 두었던 주제구절(고전11:22)을 살펴보고 정리하고자 합니다. 여기서도 ‘교회의 업신여김’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뒤에 뭐라 하십니까? “빈궁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교회 업신여김”의 원인이랍니다! 바로 이러한 안목입니다. 제가 이 묵상을 하게 된 동기인 것입니다.
○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편당 문제를 다루면서, 성찬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빈궁한 자’란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의미합니다. 부유한 자들이 빈한한 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먹고 마심으로써 교회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가진 자들의 기준으로 처리하는 것은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확대된 교훈을 찾고자 합니다. 즉, 그것은 교회 내의 대우(대접)에 관한 측면입니다. 융숭히 대접받는 목회자 그룹과, 푸대접받기 일쑤인 일반성도 그룹을 대입시켜 보고 싶습니다. 만약 이러한 부차적 교훈이 타당하다면, 교회의 업신여김은 일반성도를 푸대접하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다른 묵상에서 조금 다루었었지만, 상향성 원리인 세상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하향성 원리입니다. 위를 향해 나가려 해서는 절대로 달성되지 않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를 쓰고 내려와야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올라가는 것만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욕심’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곧 하향성 원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 제가 ‘목자상’이라는 묵상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다름 아닌 하향성의 원리였던 것입니다. ‘다 버리라, 다 비워라, 목사의 권위도 포기하라, 현재 신학교에서 실시하는 목사 안수제도도 포기하고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아라’라는 말들은 모두 하향성의 원리들입니다.
- 지역교회에 있어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은 담임목사입니다. 세상의 상향성 원리에 익숙해진 성도들은, 아무 생각 없이 목사를 존경하고 복종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입니다. 목사들이 이를 조장하고 있기도 하구요. “목사를 통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라고 까지 합니다(이것을 ‘목사성직론’이라 합니다).
- 그래요, 어쩌면 이 말이 부분적으로는 맞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반성도들은 목사를 통해 복을 받을는지 모르겠으나 목사는요? 목사는 복 받기 틀렸습니다. 왜요? 위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처럼 영의정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목사 위에는 더 이상의 직분이 없기 때문에 ‘통하여 복 받을 방법’이 없으므로 목사는 복 받기가 불가능해집니다. ‘목사 통해야 복 받는다’는 이론(목사성직론)은 허구입니다.
- 성경 비밀을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우리(성도)는 목사 존경하지 않아도 복 받습니다. 성도는 오직 주님을 존경하고 복종할 때라야 복 받습니다!(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지 결코 목사의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주님과 성도 사이에 끼인 중간자가 아닙니다. 목사도 성도일 뿐입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받아 교회를 섬기는 한 지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은 일반성도보다 목회자가 먼저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 지식의 열쇠를 맡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바로 알고 성도들을 바로 인도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목회자들의 각성을 권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 그리고 이것이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기도 하구요. 지도자들(목회자들)부터 환상에서 깨어날 때, 현대 교회는 비로소 되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 ‘목사를 존경하지 않아서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하는가?’ 아닙니다. 현실교회에서 목사는 지나칠 정도로 많이 대접받는 직분입니다(맹신에 가까운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대접하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더 요구한다는 것은 과욕일 뿐입니다. 그러나 일반성도는 홀대받습니다.
- 본문도 ‘빈궁한 자 즉 일반 성도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하는 바로 그 원인이랍니다! 목사 존경의 수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반성도 대접이 소홀한 것, 이것이 바로 교회 업신여김의 정확한 원인이라는 것이 본문의 깊은 뜻인 것입니다. 목사를 향한 존경은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하고(그래도 너무 대접받지만 말입니다), 이제 그 열정은 가난한 성도들을 향하게 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 - 아는 목회자들 있을까요? 있다면 현실교회가 이처럼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않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결코 불신자나 영향력이 미미한 일반성도 때문이 아닙니다. 성도들 때문이며 특히 영향력이 큰 지도자들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사실입니다. 성경도 이를 증거하고 계십니다.
○ 바울은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성도들’입니다. 성도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독을 당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도자와는 무관하다고요? 아닙니다. 여기서 ‘너희’는 평신도라기보다는 ‘지도자’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 바울은 이 말씀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라는 이사야서 52장5절 하반절에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관할하는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분위기로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애굽 및 바벨론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우세한 해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방인들’이라고 해석한다면 바울의 설명과는 맥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 바울이 로마서 2장 후반부에서 ‘유대인’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관할하는 자들’은 ‘구약교회 내의 지도자들’을 암시할 가능성도 있다 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해석을 지지합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주제를 논할 때, 거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그 원인이 세상의 몰이해와 일반성도들의 부족에서 기인되며, 지도자인 목사들에게는 큰 하자가 없다고 진단합니다. 저는, 이러한 진단을 철저히 반대합니다. 저는 오히려 정반대로, 교회의 업신여김 당함은 목사들의 과오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 중심이어야 할 교회를 목사 중심 교회로 변질시킨 원흉은, 기득권을 통해 얻어 누리는 것이 많은, 목사들의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목사옹호이론을 만들어서 그 안에 안주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영성도 한심스럽지만, 이를 묵인하며 함께 떡고물이나마 얻겠다는 일부 일반성도들의 책임회피 또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보증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회자와 일반성도 위상의 뒤틀림의 악영향은 너무 심각합니다. 출석교회의 개혁을 시도해 본 경험이 있는 일반성도들은 쉽게 이해되실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목사상은 너무 뒤틀려버렸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인 듯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교회 업신여김의 한 가지 원인이 초래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묵상을 이처럼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언제든 시간이 나면 제가 경험한 교회개혁의 실패담을 나누어 보고 싶기도 합니다만, 은혜로운 일이 아니라서 그만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다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교회개혁의 걸림돌 중의 하나는, 개혁대상인 목회자뿐만이 아니라, 그 목회자를 둘러싼 ‘친위세력’도 철옹성 같은 방해세력이라는 점입니다. 목회자가 평소 애지중지 양성해 놓은 친위세력의 위세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친위세력은 ‘범목회자세력’으로서 이들이 교회에 미치는 폐해는 상상 이상임을 인식해야만 할 것입니다.
▣ 나가기
역사적 관점에서 성경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①하나님의 입장 = 연속적인 이스라엘(교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뜻은 결국 성취되고야 만다. ②이스라엘(교회)의 입장 =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그렇다면 목회자도 실패할 수 있고 성도도 실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바와는 다르게 목회자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목회자들이 먼저 깨우치고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목사 신격화는 절대 금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진리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는 결코 세상 권력이나 종교권력과 야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권력과 야합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천주교이고 종교권력과 야합하는 것은 바로 ‘목사성직론’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세상권력인 로마정부에 협력하지 않으셨고 종교권력인 유대교에 동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존경받고 대접받으려는 생각 하나 없이 오직 낮은 데로 임하셔서 사랑으로 백성을 보살피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부탁하시곤 다시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살 길입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목사도 내려오고 장로도 내려오고 성도들도 내려와야 합니다. ‘높은 곳’은 우리가 지향하는 곳이지만 우리가 지금 있어야할 곳은 아닙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변화산에 천년 있어도 승천 못합니다. 내려와야 하늘로 승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명백한 진리를 먼저 알고 실천해야 할 지도자들께 진심으로 부탁드릴 말씀은 하나입니다. “목사님들! 거룩한 성직 자리에서 제발 내려오십시오!”
서두에서 “뉘 집 자식이냐?”라는 속언을 인용했습니다. 자, 이 말을 교회에 적용하면 무슨 말이 되겠습니까? “교회가 뭐 그래?”가 됩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때, 세상은 교회를 향해 “교회가 뭐 그래?” 하면서 업신여기게 됩니다. 이게 KBS의 속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불행하게도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요? 바로 믿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위를 소망하다 보니 아래를 잊어버리곤 합니다(이것을 욕심이라 합니다). 그 꼭대기에 바로 목회자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세의 자리(성직)를 차지해 버린 것이지요.
자, 최종적인 결론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교회의 업신여김 당함 - 누구 때문입니까? 목회자들은 주로 세상 사람들을 핑계대거나 아니면 일반성도들이 못나서 그렇다고 원인을 전가시켜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들 자신은 홀로 거룩한 존재로 남으려 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진짜 원인은 목회자에게 있고 장로에게 있고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책임의 크기로 따진다면 목회자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원인의 내용이 뭡니까? 욕심이지요. 그리고 그 원인의 출발점이 무엇입니까? 목사 잘 났다는 생각, 성도 잘 났다는 생각이 그 실체인 것입니다. 위(잘 났다)에 있기만 바라고 아래(못 났음을 인정하는 것)에 있기를 원하지 않은 선택의 실패 - 즉 자기반성(성경은 이를 자기부인이라 합니다)에 소홀했던 것이 교회의 업신여김을 초래하는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렇습니다. “교회의 업신여김 당함”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합니다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지도자인 목사들의 책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목사 중심의 직분관(목사성직론)과 교회론으로는 성경적 교회로의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진실을 하루 빨리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아픈 묵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러한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인내하며 계속했습니다.
주님의 조명하심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신앙의 여정 >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상] 남녀평등은 성경적인가? (벧전3:1-7) (0) | 2016.07.08 |
---|---|
[묵상] 기독교인이 물에 빠지면 (0) | 2016.07.07 |
[묵상] 교회의 허상과 업신여김 당함 (3) (0) | 2016.07.02 |
[묵상] 교회의 허상과 업신여김 당함 (2) (0) | 2016.07.01 |
[묵상] 교회의 허상과 업신여김 당함 (1) (0) | 2016.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