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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교회의 허상과 업신여김 당함 (1) 본문
[묵상] 교회의 허상과 업신여김 당함 (1)
♣ 주제 성구 = 고전11:22(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 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 들어가기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지 약 120여년이 흘렀습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성장은 실로 놀라운 바가 있어 세계가 경이롭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인구의 약 1/4이 기독교인이라고들 하고, 세계 10대 교회에 5-6개가 포함되기도 하며,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의 선교 대국이기도 합니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긍지가 느껴지는 부분일 것입니다. 분명 주님의 특별하신 계획이 함께 하신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정황이기는 하지만, 한국교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랑과 만족할 수만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음은 또 무슨 조화인지요? 솔직히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현대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대부분 양식 있는 기독교인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입니다.
2004년 10월 경, KBS에서는 ‘선교 120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라는 기획물을 방영한 바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공과를 다룬 것으로서,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면서도, 과오에 대한 신랄한 지적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현재의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조명하였습니다. 교회의 권력화, 대형화, 세속화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기독교 현실을 진단할 때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 거의 단골메뉴와도 같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성도가 아닌 불신자의 시각에서 다룬 것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프랭크 바이올라’라는 분이 ‘교회는 없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현대교회의 변개할 수 없는 참된 교리라고 여기고 있는 제반 원리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다룬 책이었습니다. 거의 고착화되다시피 한 예배형식, 목회자 권위, 헌금 등 많은 부분을 해부하고 저자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은 불신자가 아닌 성도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외에도, 불신자든 성도든,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 내지 개혁안을 제시한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모든 행동들 속에는 ‘교회가 현재의 모습으로는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과 비판을 접할 때, 교회와 성도의 태도를 살펴보면 상당한 의구심이 듭니다. 지적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 교회에 문제가 있고 어떠한 형태로든 시정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구태에 안주하여 막무가내식의 항변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소위 경건한 성도라 자신하는 분들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주로 목회자 같은 분들은 상당히 분개하기까지 합니다. 그리하여 이분들은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라며 아주 못 마땅한 심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로 교회를 업신여기는 존재가 누구냐에 있습니다. ‘비판을 하는 이들과 옹호하는 이들 중에서 과연 누가 정말로 교회를 업신여기는 자인가?’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참으로 솔직하고 진지한 검토를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앞으로 4회에 걸쳐 ‘교회의 허상’에 대해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교회란 무엇인가?
기독교 교리를 공부해 보면, 교회의 정의에 대해 아주 성경적인 견해를 잘 설명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거룩하고 영원한 존재입니다. 교회에 대한 신학적/교리적 정의는 대부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제가 여기서 별도의 교회론을 다루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나름대로의 교회관을 말씀드리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깨우친 교회란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구성원의 측면에서 주재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동료로서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료 - 교회의 주체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교회는 업신여김을 당할 수 없는 존재인가?
우리는 이 묵상을 함에 있어 먼저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목상 교회라는 명칭만으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 렘7:4절은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성전을 가리키며 ‘성전을 성전이라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도외시하고 형식적으로 제사 드리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형식적 예배만으로 교회의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또 렘11:15절은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거룩한 제육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라고 한탄하십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열심히 드리고 있는데 그것이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 심지어는 교회에 의인이 단 한명도 없을 수 있다고도 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성도가 교회 내에 한 명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교회가 번성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범죄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4:7)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재물들을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고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교회 - 이럴 수 있답니다. 교회 아닌 교회, 성도가 한 명도 없는 교회, 열심히 예배하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교회가 있답니다. 이런 가능성이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관/교회관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반성하자는 것이 이 묵상의 목적인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것입니다. 따라서 결코 업신여김을 당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만약 업신여긴다면 아주 큰일 납니다. 멸망당합니다. 십계명에도 포함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이십니다(제3계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교회가 항상 업신여김을 당해 왔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조금 후에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교회의 업신여김 당함의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묵상을 계속하기 위해 우선 교회의 모형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을 신약의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대해서도 그림자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정리하겠습니다.
○ 가장 기본적이고 최초의 교회 모형은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과 인간들(아담과 하와)이 함께 교제하며 살았던 곳입니다. 제한이 없는 세상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후일 가게 될 천국도 에덴동산과 무척 많이 닮았을 것입니다. 가장 명백한 교회의 모형입니다.
○ 두 번째는 노아의 방주입니다. 온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할 때 오직 홀로 의로운 삶을 살았던 노아를 통해 가족만 구원받았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인간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알려 주는 것으로서 역시 교회의 모형입니다.
○ 다음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육적 유대인뿐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영적 이스라엘인 오늘날의 성도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묵상의 편의를 위해, 육적 이스라엘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분명 교회의 모형입니다.
○ 그리고 성막과 성전이 있습니다. 성막은 성전이 세워지기 이전의 구조물입니다. 성막이든 성전이든 모두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교회의 모형입니다.
○ 마지막으로, 모형이 아닌 실상으로서의 신약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로 세우신 것이지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교회는 가장 실제적인 실상입니다. 물론 앞으로 가게 될 천국이 있습니다만, 이는 나중의 문제입니다. 천국은 천국 간 후에 선택할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교회의 최종 모습은 될 수 있어도 실제적인 실상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현재의 교회가 진실한 실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모형이든 교회의 실상이든, 교회는 참으로 많이도 업신여김을 받아 왔습니다! 구약의 증거이고 신약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지만, 교회는 업신여김을 당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이 묵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조금 후부터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지만, 여기서는 아주 간략하게 교회의 모형들의 업신여김 당함을 정리하기로 하겠습니다.
○ 에덴동산은 어땠습니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원죄로 작용하게 되었지요. 뭔가요? 하나님의 말씀(선악과 금지)을 의심했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었지요. 그 결과는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이었습니다. 교회의 업신여김 당함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 노아의 방주는 어땠습니까?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사를 드린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포도주를 마시고 실수한 것이 화근이 되어 손자 가나안이 저주를 받습니다. 노아의 실패가 극한 대립의 계기로 작용하였습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 정복기를 보십시오.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여기서도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 이스라엘 민족은 어땠습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인정하고 의지하고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방신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했지요. 사사기를 보시고 역사서를 보십시오.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습니다. 업신여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교회는 여기서도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 성막과 성전은 어땠습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신들의 전시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선지서들을 읽어 보세요. 기가 막힙니다. 성막과 성전에서도 교회는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 주님 당시의 유대교회는 어땠습니까? 신약성경을 잘 읽어 보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주님까지 거절당했습니다.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한 것입니다.
○ 그 이후의 신약교회는 좀 나을까요? 현재의 교회를 보십시오. 그런 다음 답을 스스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간단히 정리한 것만 가지고도 ‘교회는 과거에도 업신여김을 받았고 현재에도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업신여김을 당할 수 있다’는 부끄러움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교회의 업신여김 당함은 지속적인 것 같습니다).
○ 자, 여기서 아주 중요한 핵심 한 가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 업신여김을 초래하는 원인제공자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의 업신여김을 초래하는 자가 누굽니까? 이방인들인가요? 불신자들인가요? 이들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선민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과 성도들이, 교회의 업신여김을 당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자라는 것입니다!
○ ‘교회를 업신여겨서는 안된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항상 불신자(이방인)를 염두에 둡니다. 그들이 교회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겨 버립니다. 엄청난 착각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업신여김과 상관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오로지 성도들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조금이라고 가지고 있어야, KBS의 비판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고 양식 있는 성도들의 아픈 충고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가슴 아픕니다만 성경은 교회의 업신여김 당함에 대해 무수한 사례들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부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누구 때문입니까? 불신자나 이방인들 때문인가요? 아니지요. 모두 성도들 때문입니다. 성도들 때문에 교회가 이런 인식과 대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실까요? 우리가 잘 아는 세상 격언으로써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잘못하는 젊은이를 나무랄 때 ‘뉘 집 자식이냐?’라고 합니다. 잘못은 젊은이가 했지만 욕은 부모가 듣습니다. 교회 무시를 초래한 자는 성도들이지만 그 비난은 하나님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 - 자식으로 인해 지탄받는 부모의 심정과 유사할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주제일 것입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서 교회의 업신여김 당함에 대한 개관적인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성경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 볼 것입니다.
이처럼 아픈 비판에 대해 신경질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올바른 성도의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특히 스스로 거룩한 성도라고 자신하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더욱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현대교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환골탈태하는 심정으로 함께 나누시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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