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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세상에서 가장 배고픈 쥐? 본문
[단상] 세상에서 가장 배고픈 쥐?
유성오 집사의 ‘변해야 변한다.’라는 책(홍성사)에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배고픈 쥐는 교회당 쥐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당에는 재물이 남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유가 축적되지 않는 곳이기에 그곳에 사는 쥐는 불쌍합니다. 뭔가 들어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 나누어 주고 창고는 항상 비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예수 왕국의 진정한 모습입니다.”(p. 134-135).
유 집사의 설명인즉슨, ‘교회당에는 재물이 들어오는 즉시 전부 나누어 줘서 먹을 게 없기 때문에 교회당 쥐는 항상 배고프다.’는 것입니다.
아주 성경적입니다. 응당 이래야 합니다.
헌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위 설명과 현실이 일치한다면 ‘재미있는 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재미있으려면 설명과 현실이 불일치됨으로써 예기치 못한 변수가 숨겨져 있어야 합니다.
‘교회당 쥐가 배고플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쥐가 입도 대기 전에 먼저 새치기하는 존재들’ 때문입니다.
창고에 들어오는 즉시 즉각 삼켜버리는 이 민첩하고 약삭빠른 쥐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이되 습성이 쥐와 동일한 이 종족은 ‘유인서’(類人鼠)라 칭함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이런 유인서를 봤습니다. 여러 부서와 기관마다 예산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기관이든 명쾌한 집행이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유인서는 이러한 항목을 너무나 잘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집행 전 자기(담임목사)에게 일임토록 꼬드겼습니다. 또 어떤 때는 집행 잔액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떨어지는 고물은 몽땅 자기가 챙겼습니다. 매우 치사했습니다. 사무총회 때마다 웃지못할 해프닝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런 유인서도 봤습니다. 부인(사모?)이 아주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엄청난 치료비는 교회의 몫이었습니다. 잘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산보고서는 전혀 달랐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교회 돈으로 치료했음을 다 아는데 지출항목에는 아예 빠져버렸습니다.
이런 유인서들도 봤습니다. 담임목사의 헌금관은 가관이었습니다. 헌금위원이 일차 계수한 금액은 헌금이 아니었습니다. 통장 입금 전에 마음 내키는 대로 손댔습니다. 이걸 보고 배운 일부 장로들도 100만원 200만원 다발을 맘대로 가져갔습니다. 양심적인 재정부원이 이의를 제기하면 심히 불쾌히 여겼습니다. 참으로 뻔뻔한 쥐들이었습니다.
이런 유인서도 봤습니다. 교회재정은 온통 담임목사 저금통장이었습니다. 재정부는 담임목사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고 하는 일이라야 목사 지시대로 결산보고서 허위 작성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쥐꼬리만큼 받으면서도 눈물겹도록 헌신하던 전도사의 사례비를 조금만 인상해 주자고 건의했던 어느 집사는 미운털이 박혀 엄청 고생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우울케 만드는 것은, 이러한 유인서들은 약과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진짜 위대한(?) 유인서들은 따로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쩨쩨하지 않습니다. 아주 통이 큽니다.
수 천 명 내지 수 만 명의 교인들을 거느리고, 온갖 존경 다 누리며, 대물림은 당연하고, 무슨 감투든 몇 개씩이라도 씁니다.
이러한 유명 유인서가 되기 위한 유일한 요건은 참기름처럼 매끄러운 입술입니다.
청산유수 같은 설교만 할 수 있으면 금방 유명해지고, 이것이 곧 유능하고 통 큰 유인서가 되는 첩경입니다.
일반성도들이, 목사의 인격과 행동과 영성은 주시하지 않고, 오직 목사의 입술만 바라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입니다.
이런 유인서들이 가장 좋아하고 뻔질나게 인용하는 성경이 말라기서입니다.
요리조리 짜깁기하여 십일조와 헌금 많이 내도록 일반성도들을 몰아붙이는 데 감초처럼 이용합니다.
일반성도들의 주머니 짜내는 데는 아주 이골이 난 국가대표급 실력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말라기서는 평신도들의 주머니 우려내기 위한 전가의 보도가 아닙니다.
말라기서는 일반성도들의 십일조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왜냐하면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즉, 아직 성전 곳간에 들어가기 전의 재물에 대한 경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쳐서 이미 성전 곳간에 들어간 것들 즉, 제사장들의 관리책임에 속한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재물들은 제사장들이 철저히 지켜야 할 대상입니다.
여기서 ‘철저히 지킨다.’는 말은 구약이 명시하고 있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 레위인들의 기업(봉급), 성전 보수 비용 등의 합당한 용처에 지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미 성전 곳간에 들어옴으로써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된 재물들)이 속절없이 새어나갔습니다. 제사장들의 무저갱 같은 뱃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갔습니다.
말라기 기자가 야단친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성전 곳간에서 하나님의 재물을 도적질해 가는 유인서들(제사장들)을 꾸짖은 것입니다. 아주 엄하게 말입니다.
오늘날 말라기서를 달통한 듯 멋대로 인용하는 목사들은,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바르게 읽어야 합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여 다시 읽으면 지금까지 눈동자를 덮고 있던 비늘이 확 벗겨지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양심의 찔림을 받아 ‘어찌할꼬! 어찌할꼬!’ 회개하는 이들이 줄 이을 것입니다.
처음 유 집사가 설명한 것처럼 교회당 창고는, 재물이 들어오는 족족 다 나누어 줘서 텅텅 비기 때문에, 이곳에 들락거리는 쥐들은 세상에서 가장 배가 고파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로 교회당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는 목사들도 세상에서 가장 배고픈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위의 쥐처럼) 교회당에 먹을 게 거의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근본적 이유는, 배가 고파야 오직 주님 은혜가 아니면 무조건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되고, 그래야 진실로 겸손한 사역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아니 한국교회만이라도,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목사들로 넘쳐나면 참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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