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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신사적인 성도와 야만적인 성도?(3) 본문
[묵상] 신사적인 성도와 야만적인 성도?(3)
♣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2회에 걸쳐 “신사적”인 성도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이번에는 소개 글입니다. 출처는 http://cafe.daum.net/soongsari / 자유게시판입니다.
물론 글쓴이(nothing)는 무절제한 신비주의를 경계하려는 의도입니다만,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고 신중하게 살핀 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인식은, 제 견해와 맥을 같이 하기에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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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의 인도와 자유의지와의 관계
적지 않은 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기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역사 또는 인도라고 하나 실상은 가짜요 거짓인 경우도 허다하게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것이 바른 그 영(the Spirit)의 인도인지를 성경을 통해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영의 인도는 쉽게 말해서 우리가 피동의 상태로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매우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십니다. 또한 시작은 그분이 하셨을지라도 믿는 우리들의 생각과 의지가 동원되는 사고과정이 따릅니다.
심지어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갈5:17). 그러나 참되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역사에 동역함으로 순종의 열매를 맛봅니다.
이제 성경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성령과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동역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는 과정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을 불러 시킬 일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한 후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떠나보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께서 보내시는 대로 실루기아로 내려갔다.”(행13:2-4)
위 말씀을 볼 때,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라고 지시하시고 교회들은 무조건 피동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성령의 지시 후에도 여전히 금식하고 기도한 후 ‘그들이’ 주체가 되어 안수하여 보냅니다. 성령은 그 후 ‘그들의 보냄’을 추인합니다. 물론 우리는 성령께서 교회와 함께 그들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베드로가 본 이상에 반응한 과정
“베드로는 자기가 본 이상이 무슨 뜻일까 하며 속으로 매우 당황하고 있는데,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물어 찾아와 문 앞에 서서…베드로가 그 이상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영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행10:17-19)
베드로는 하늘에서 내려 온 보자기 속에 담긴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그 영의 인도에 즉각 순종하지 않았습니다(14절). 대신에 정상적인 사고과정을 통해 그 환상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 후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3.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에 대한 바울의 반응 과정
“밤에 바울에게 이상이 보였는데,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며 그에게 간청하였다. 바울이 그 이상을 본 뒤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결론을 내리고, 즉시 마케도니아로 가기로 힘썼다”(행16:9-10).
우리는 위 인용문에서 ‘결론을 내리고’(concluding, 쉽비바조, 4822)라는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환상을 본 후 생각없이 그냥 피동적으로 끌려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그 영의 인도아래 있는 생각(엡4:23)을 사용하여 이상의 의미를 실제 상황에 대입하고 결론짓는 사고과정을 거친 후에 그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최소한 다음 네 가지를 통해 참된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령의 역사는 쓰여진 말씀인 성경과 부합합니다.
둘째, 성령의 역사에는 예수님의 인격이 표현됩니다.
셋째, 성령의 역사는 결국 우리를 ‘모든 실재’(알레데이아)로 이끕니다(요16:13).
넷째, 성령의 역사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웁니다.
위와 달리 성령께서는 성도들이 괴성을 지르게 하거나, 사람들을 불가항력적으로 파도처럼 쓰러트리는 식으로 활동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것은 거짓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의 온 존재가 하나님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과 깊이 하나 되며, 그분의 빛나는 영광이 우리의 존재와 삶을 통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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