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여정/단상

[단상]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무익한 논쟁 경험 - 그 이후(5)

맑은바람청풍 2024. 10. 13. 08:58

[단상]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무익한 논쟁 경험 - 그 이후(5)

 

 

앞글에서 밝혔듯이 완고한 무신론자 동문과의 종교논쟁은 허무하게 끝날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처음부터 예상한 그대로 진행되다가 종결되었다.

 

그런데 이번 글에도 여지없이 무신론자의 댓글 6개가 줄줄이 달렸다. 10여 년간 무수히 반복되었던 똑같은 내용들이었다.

 

어차피 아예 상종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침묵모드로 들어갔으니 별도의 대응은 하지 않고 홀로 마음 정리만 하기로 한다.

 

무신론자의 인격이 참 묘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겠다. 몇 가지 소회를 더 밝힌다.

 

1) 무신론 수렁에 함몰 : 몇몇 무신론 학자들의 주장을 바이블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유신론과 기독교는 처음부터 틀렸다.’는 관념을 고수한다.

 

2) 유아독존 : 벽창우 옹고집이다. 열흘 삶은 호박에 바늘 끝 안 들어간다. ‘오직 자신만 옳다.’는 관견(管見)을 일체 양보하지 않는다. 단 한 발자국만 옮겨도 눈이 트일 텐데 요지부동이다.

 

3) 무한 반복 :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다시 돌아와서 더 한다. 지겹지도 않은가 보다. 지나간 댓글들을 모아서 다시 보여줘도 또 똑같은 내용으로 도배한다. 마치 고장 난 레코드판 같다. 안 된 말이지만 꼭 치매 증상처럼 보인다.

 

4) 관찰력/분석력 제로(0) : 타인의 말과 글을 읽고 그 의미해석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어쩌다 좀 알았나 싶으면 잠시 후 또 다시 처음 엉터리 논리로 되돌아오고 만다. 아찔할 정도로 곡해한 자신의 견해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문해력 제로이다.

 

5) 통찰력 부재 : 관찰력과 문해력 미비를 고려하면 당연한 필연이다. 통찰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꿈이다.

 

6) 여유 상실 : 90을 코앞에 둔 노령이다. 젊은 시절 무신론자였더라도 노년이 되면 종교적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도 여유로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정반대이다. 인식의 폭이 정말 좁고 급박하다. 여유가 없다.

 

7) 썩은 사과의 소임 수행 : 홀로 똑똑한 척 하지만 아무도 상대를 하지 않으려 한다. 커뮤니티를 해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커뮤니티에서 유일하게 깨어있는 지성이라 착각한다. 그 악영향이 너무나 크다. 더욱이 그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동문 가운데 최고령 최선임기수이다. 고매한 인품과 중후한 언행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야 마땅하겠거늘 오로지 흙탕물만 일으키고 있다.

 

남자실교 장필완우(男子失敎 長必頑愚)라는 말이 있다. “남자가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자라서 반드시 고집만 세고 어리석어진다.”는 뜻이다. 다른 동문이 귀띔해 준 말이다.

 

앞글에서 지학지민지우팔십(志學之憫至于八十, 사춘기 시절의 고민을 팔십까지 붙들고 간다)’의 답답함을 짚었었다. 여전한 사춘기 치기에 사로잡힌 어리석음이 애처롭다.

 

스스로 자처하는 우매함이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꼭 자학하는 것만 같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