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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단상

[단상](개혁22) 마치는 말 - 또 그럴 거니?

맑은바람청풍 2020. 8. 23. 20:59

[단상](개혁22) 마치는 말 - 또 그럴 거니?

 

 

배경 설명

 

공동목회가 해체(=교회개혁 실패)된 다음 수년이 흐른 어느 날, 옛날 수첩을 뒤지다가, 간단한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패배가 확정된 이후의 심경을 자문자답 형식으로 적어두었던 것인 듯합니다.

 

그대로 옮겨서 마치는 말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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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너는 누구냐?(직분적 측면)

 

그냥 세례 교인입니다. 목사도 아니요 장로도 아니며 안수집사도 아닙니다. 최말단 민초일 뿐입니다.

 

왜 그랬니?(왜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개혁세력에 참여했는가?)

 

담임목사로 인하여 많은 성도들이 아파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이 아님은 물론이요 참다운 신앙의 모습도 아니라고 판단되었기에 개혁세력에 합세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니?(성경적/신학적 근거가 있는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신앙은 결코 강한 자의 합리화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약한 자(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물 흘리는 자, 눌린 자)의 보호를 강조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의 전횡 때문에 상처받은 지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 현상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다른 지체들에게 미칠 영향은 생각했는가?(부정적 파급효과)

 

교회 분란의 악영향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고 한편으로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더 큰 자(목사, 장로)의 과실을 무조건 묵인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모르면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지적에 따른 영향이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지적하지 않아 파생되는 손실이 더 나쁘다고 판단했습니다. 목사의 나쁜 행실의 영향력은 훨씬 더 심각합니다. 영향력의 차이가 존재하며, 보다 작은 손실을 택했을 뿐입니다.

 

다른 노력은 해 봤니?(온건한 해결 시도)

 

편지로, 면담으로 건의했습니다. 서리집사가 담임목사 3명을 앉혀놓고 따졌습니다. 목사들 앞에서 이런 행동하기가 절대 쉽지 않음을 상기시키며 바르게 개선토록 호소했습니다. ‘그러마약속까지는 받아 냈습니다. 그러나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어 교회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반발했습니다. 바락바락 끝까지 대들었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 사악한 영 제1였습니다. 서리집사가 할 수 있는 수준의 노력은 다 했습니다.

 

현재의 상황 인식은?(다 지나간 것 아닌가?)

 

역부족으로 힘에 밀려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처럼 죄인의 입장입니다. 잘못을 질책한다면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나 사고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다툼과 판단과 정죄를 종식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여, 축복하며 분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헤어졌습니다.

 

후회하지 않는가?

 

신앙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습니다. 큰 자가 포용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나는 작은 자일뿐입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해도 동일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당부 : 잘난 교회의 허상에서 벗어나 못난 교회가 쓰임 받음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결어 : 그래도 지구는 돌며 약자는 말이 없습니다.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습니다.

 

 

 

경구 : 목회자를 아프게 하는 평신도보다, 평신도를 아프게 하는 목회자가 더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