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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61]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뒤바뀐 것 아닌가? 본문
[의문 061]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뒤바뀐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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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마21:28-31(아버지의 뜻에 순종 및 불순종한 두 아들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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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말이나 글을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힘든 작업입니다. 말(글)이란, 언어학적 상이점도 문제이지만, 각 나라마다의 사상과 철학과 문화와 전통과 가치관 등의 차이 또한 대단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며 번역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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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은 ‘번역이란 반역(半譯)’이라 규정했습니다. ‘원본(외국어)의 반 정도의 의미전달만 되어도 잘 된 번역’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심지어 ‘원본의 20-30% 정도의 의미전달에 그칠 수도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번역이 힘들다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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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문자적 번역을 할 것이냐(직역) 의미적 번역을 할 것이냐(의역)의 결정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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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번역이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님을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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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글개역성경과 한글개역개정성경(이후 ‘개역성경’이라 함)의 오늘 본문 번역이 무척 눈에 거슬립니다. 번역하기 힘든 문장이 아닌 것 같고, 직역과 의역의 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무척 찝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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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검토할 것도 없이, 아래 <별지 1>로 첨부한 몇몇 한글성경 대 영역본 및 헬라어 원본을 비교만 해 보면, 바로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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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원어(헬라어) 및 영역본 성경에 근거할 경우, 개역성경의 번역은 오역이라 판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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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낸다면 ‘이의’로 제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단순 오역 사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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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절대 간단치 않은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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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두 아들의 비유’로서, 맏아들과 둘째 아들 중에서 누가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는가를 밝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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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성경은 「맏아들 = 처음 순종 + 나중 불순종, 둘째 아들 = 처음 불순종 + 나중 순종」했다는 표현입니다. 그리하여 31절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 = 둘째 아들”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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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한글 및 영역본들과 심지어 헬라어 원어성경은 모두 「맏아들 = 처음 불순종 + 나중 순종, 둘째 아들 = 처음 순종 + 나중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 = 맏아들”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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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측면에서는 개역성경의 오역임이 너무나 명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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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1절의 예수님 판정과 연결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대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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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주석에서도 밝히는 바와 같이, 본문의 두 아들은 두 종류의 유대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은 바리새인 및 서기관들 같은 종교지도자들을 암시하고, “둘째 아들”은 세리와 창기 같은 ‘죄인들’을 암시한다고 설명합니다. 실생활에서도 지도층 사람들이 항상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과 맥이 통하는 인식입니다. 종교지도자를 맏아들로, 평범한 사람들을 둘째 아들로 비유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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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성경 이외의 모든 성경들에 위의 주석을 적용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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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8-30절(예수님의 정황 설명 부분) : 맏아들(=순종한 자=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잘 했고 둘째아들(=불순종한 자=세리와 창기들?)은 잘못했다.
2). 31절(예수님의 최종 판정 부분) : 세리와 창기(=불순종한 자들?=둘째아들?)가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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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불순종’이 천국입성의 조건인 것처럼 해석되기 때문에 논리적 모순을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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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오히려 개역성경의 번역이 타당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28-30절의 논리적 추이와 31절의 판정이 조화되기 때문입니다. 개역성경의 번역을 따를 경우, 주석 등 기독교 통념과 아무 마찰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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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맏아들=순종한 자=세리와 창기들, 둘째 아들=불순종한 자=서기관과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들’이라는 등식을 세워야 합니다. 이 경우라면 위에서 지적한 논리상 하자가 없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유대인의 사상과 기독교 통념에 합치되지 않습니다. 부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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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문제를 발견하고 몇 권의 역본들을 읽으면서 비교적 쉽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으나(개역성경의 단순 오역 사례?), 좀 더 살펴본 후에는 상당한 난제임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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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성경과 영어 성경들과 일부 한글성경들의 경우, 28-30절의 상황설명과 31절의 최종판정이 부조화되는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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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정확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계속 의문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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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 : 오늘 본문은 문자적으로는 개역성경의 명백한 오역처럼 보이지만, 31절의 예수님 최종 판정과 연계할 경우, 오히려 이것이 올바른 번역처럼 여겨진다. 어느 번역이 옳은가? 혹 개역성경 번역자들이 원어 및 영역본들의 표현은 다 알면서, 실제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의역’한 것은 아닐까? 아무튼 무척 궁금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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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 : 이 글을 작성하고 난 한참 후에, 동일 구절에 관한 ‘질문과 답변’ 글을 발견했습니다(별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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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는 저와 동일한 의문을 제기했고 답변자는 “성경의 첫째와 둘째는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라며 자신의 설교문 “첫째를 버리신 하나님의 비밀”을 답글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첫째 것을 버리시고 둘째 것은 주님이 누구든지 택한 자를 사용하셨습니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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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의 내용은 독립된 설교로서는 이해되고 공감되는 면도 있으나, 질문자의 답변으로서는 논리적으로 너무도 미진하다는 생각입니다. 즉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뒤바뀜’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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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댓글의 “성경에 첫째와 둘째는 아담과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라는 주장은 옳지만, 이것을 28-30절까지의 ‘맏아들=잘했고 둘째아들=잘못했다.’에 대입시키면, ‘아담=잘했고, 예수님=잘못했다.’는 의미가 되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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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읽은 후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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