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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024] 야곱이 하란에 40년 체류했다고?

맑은바람청풍 2016. 8. 21. 13:30


[의문 024] 야곱이 하란에 40년 체류했다고?

 

 

문제 제기

 

일반적으로, 야곱은 하란에 거주하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체류하고 다시 가나안으로 귀환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해롤드 캠핑 목사와 같은 일부 학자는 야곱의 하란체류 40년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20년설과 40년설을 아주 간략히 비교해 본 바가 있기는 하지만 미흡했었습니다.

 

그 후 양 이론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설로 여기는 20년설의 설득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반대로 40년설이 더 논리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학설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연구해 본 바도 없고 또 제게는 그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단지 한 사람의 평신도로서 상식 수준에서의 합리적인 추론을 해 본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현재까지의 견해로는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 볼 가치가 충분한 신학적 과제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문제는 전문가들에게 맡겨 놓기로 하고, 오늘은 제가 왜 40년설이 논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일종의 의문 형태로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지난번 살펴본 별도 묵상 유다의 자손 이야기야곱의 하란 체류 40년설을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년설의 전제조건은 건드리지 말자.

 

29장에는 라반과 야곱 간의 결혼조약 체결과 이행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간의 봉사(머슴살이) 계약에 동의합니다.

 

20-21절은 7년을 봉사한 후에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야곱은 하란생활 8년차부터 실제적인 결혼생활에 접어들게 되었고, 따라서 약 9년차부터(결혼 1년 이후) 아들들을 낳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0년설의 전제조건으로서, 성경에 기록된 문자적 의미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논의를 계속하자는 말입니다. 만약 이를 재검토한다면 전혀 새로운 쟁점이 촉발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부연하여 말씀드리면, 뒤에서 제가 제기하게 되는 논점은, 20년설의 아들들 출산기간은 약 7-8년이고, 르우벤은 합환채의 용도와 약효를 제대로 알고 자기 모친에게 드렸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논점만 해결하려 한다면, 야곱이 하란에 도착한 후 곧바로 결혼했다고 해석하면 의문 자체는 비교적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된다면, 성경에 기록된 문자 자체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 성경 기사(21=“내 기한이 찼으니”)가 오류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이 의문에서는 일단 성경의 문자적 의미 그대로, “야곱은 하란체류 8년차에 결혼했다.”는 견해를 수용하여 계속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0년설은 11명의 아들을 낳기에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이미 여러번 살펴본 내용이라 아주 간략히 요약만 하겠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피신한 후, 7년이 경과된 해에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에 의해 큰 딸 레아와 먼저 결혼하고 7일간의 피로연이 끝나자 다시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합니다.

 

그리고는 4명의 아내(레아, 라헬, 실바, 빌하)로부터 11명의 아들들을 낳습니다. 이 득남 기간은 약 7-8년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11번째 아들인 요셉은 가나안으로 되돌아오기 약 5-6년 전에 태어났을 것입니다(30:25절 이후 참조).

 

아무튼 성경 기사에 의하면, 이 기간 중 레아는 4명의 아들들을 낳고 일시 단산되었다가 후일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낳았습니다. 이 기간이 7-8년에 해당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리한 기간입니다. , 7명의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입니다.

 

소결론은 이것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아들들을 낳았을 7-8년은, 4명의 아내로부터의 출산이라는 점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는 있으나, 레아의 경우 7명의 자녀를 낳기에는 충분치 못한 기간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산술적으로 무리할 뿐 아니라, 중간의 단산기간까지 고려한다면 거의 불가능한 설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아이가 합환채를?

 

20년설의 취약점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구절이 창30: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넘어가기 일쑤인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20년설의 결정적 난점을 내포한 구절일 수밖에 없습니다.

 

30장을 큰 흐름으로 읽어 보십시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캐어오자, 아들을 낳지 못한 동생 라헬은 남편동침권을 빌미로 언니 레아를 설득하여 그 합환채를 삽니다.

 

합환채란, 히브리어로는 두다이’(duday) 또는 두다임’, 영어로는 mandrake이며, 학명은 Mandragora officinarum이라 한다고 합니다. 수리아와 팔레스타인 등 지중해 연안에서 자생하는 가지과 가지속의 식물입니다. 줄기가 없고(키도 작음) 잎은 둥글고 넓으며 자주빛 꽃과 둥글고 노란 열매를 맺습니다. 인삼처럼 뿌리가 갈라진, 마치 사람 모양의 식물로서(어떤 학자는 남성 성기 모양이라고도 설명합니다), 여인이 먹으면 임신할 수 있다고 믿던 사랑의 열매’(Love-Apple)로 알려져 있습니다. 잎에서는 독특한 향(톡 쏘는 매우 진한 냄새)이 나며 마취제 또는 최음제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동생 라헬은, 언니 레아를 가까스로 설득하여 합환채를 사서 먹고 임신하려고 애썼으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술 더 뜨셔서, 단산된 레아의 태를 다시 여시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주십니다.

 

합환채까지 먹었으나 아무 효과도 없이 언니의 추가 출산을 바라보며 속이 새까맣게 탓을 라헬의 상심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3년 넘도록 임신되지 않음으로써 합환채의 약효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만,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임신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인간적인 노력을 전부 무력화시키신 후, 뒤늦게 요셉을 선물로 주십니다(이 부분에서는 할렐루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4절입니다. “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념해야 할 사항은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라는 표현입니다.

 

* 참고로, “맥추 때밀을 추수하는 시기로서, 유대력으로는 시완월(양력으로는 5월 중순 내지 6월 중순)입니다.

 

14절 이후를 읽어보면, 이 시기는 11 아들 중, 잇사갈과 스불론과 딸 디나(이상은 레아 소생)와 요셉(라헬 소생)이 태어나기 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다른 요셉은 별도로 치더라도, 잇사갈과 스불론과 디나는 한 어머니인 레아가 낳았기 때문에 적어도 이 추가 출산기간은 3년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위에서 4명의 아내들이 11명의 아들들을 낳은 총 기간은 7-8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했었습니다.

 

그렇다면 합환채를 캐었을 당시 르우벤의 나이가 대략적으로 계산됩니다. 총 득남 기간인 7 내지 8- 잇사갈/스불론/디나 출산기간 3년 이상 = 4 내지 5이 르우벤의 나이입니다.

 

너댓 살배기 사내아이가 들에 나가서 뿌리박힌 들풀을 캐내어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에게 드렸다.’는 설명의 설득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합환채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가 우연히 가져와서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설명은 얼마나 타당할까요? 이런 설명들은 왠지 궁색해 보입니다.

 

차라리 14절은, 르우벤이 합환채의 용도와 효능을 정확히 아는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드릴 목적으로 캐어 왔다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 르우벤은 당시 합환채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추정이 맞는다면, 르우벤은 너댓 살을 훌쩍 넘어, 성에 대한 이해를 지닌 나이였어야 합니다. 아마도 르우벤은 성에 대한 관심이 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후일 서모 빌하와의 통간(35:22)도 이러한 르우벤의 성향(性向)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40년설과는 무슨 상관?

 

30:14절은 합환채의 용도와 약효를 잘 알고 있던 르우벤이 그것을 캐어,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던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야곱이 밧단아람에 거주할 때로서, 아들 셋(베냐민까지 포함하면 4)은 아직 태어나기 전일 것입니다.

 

만약 이 추정이 옳다면, 합환채 사건 당시의 르우벤의 나이는 너댓 살이 아닌, 보다 많은, 적어도 합환채의 용도와 약효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 경우, 20년설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40년설이어야 비로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그렇습니다. 30:14절 표현은 분명 20년설의 난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더 추론해 보고 싶으나, 역시 평신도의 한계를 넘기는 힘들다 하겠습니다.

 

현재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겨둘 도리밖에 없음을 인정하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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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단상] 야곱의 하란 체류 40년설

 

 

본문 : 31: 38 41(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 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 하였으며.....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으니)

 

 

들어가기

 

일전, 38:1절에 나오는 그 후에라는 단어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하여 목사님께 질문을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으로부터 직접적인 답변을 듣지는 못했으나 다른 형제님께서 처음 접하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를 제시해 주신 바가 있습니다.

 

그 자료의 요지는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야곱의 하란 체류기간 20년은 잘못된 것으로서 성경의 증거에 의하면 40년간 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처음 접하는 주장이라 큰 기대를 가지고 살펴보았습니다. 신학지식이 부족한 평신도의 한계로 말미암아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는 없지만, 그 주장도 나름대로의 논리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제시된 자료의 상세한 내용은 원문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오늘은 제시된 자료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0년설과 40년설의 핵심 차이점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창25장부터 창47장까지 폭 넓게 봐야 합니다.

 

20년설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으로서, 본문(31:38 41)에 나오는 이십 년이라는 단어가 동일한 기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란에 거한 기간은 총 20년이라는 것이지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잘 아는 내용입니다.

 

40년설은, 본문에 나오는 이십 년이 동일한 기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다른 기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하란에 거한 기간은 총 40년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40년설의 추정과 저의 추정 비교 검토

 

지난번 나누었던 야곱과 요셉의 나이 차이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40년설이 추정하는 내용과 제가 추정한 내용(20년설 기준)은 논리상 일치되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만, 세부적으로는 제법 차이가 납니다. 상세 내용은 생략하고 주요 차이만 요약하겠습니다. (앞의 수치는 40년설에 의한 야곱의 추정 나이이고 뒤의 것은 제가 추정한 나이입니다).

 

하란 이주 : 60/ 76

결혼 : 67/ 83(7일 간격으로 레아 및 라헬과 결혼)

루으벤 출생 : 68/ 84(나머지 아들들 출생년도는 생략)

일차 봉사 : 74/ 미언급(7년씩 2)

20년 봉사 : 94/ 미언급

요셉 출생 : 91/ 91(40년설 : 새로운 20년의 제17년차에 출생)

양 떼 봉사 : 100/ 96(40년설 : 34년 이후부터 6년간 봉사했다는 의미)

가나안 귀환 : 100/ 96

양 견해는 모두 허용오차를 1-2년 정도로 간주하여 추정한 결과들입니다.

 

20년이라는 격차(추가하든지 제외하든지) 외에는 특별한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40년설은 20년설이 지니는 오류(?)로써 ‘84세에 맏아들을 낳은 사례가 성경에는 없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비록 맏아들이 아니더라도 야곱의 선후대 중에서 100세를 훨씬 넘은 나이에 자식을 낳은 사례는 많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147(저의 추정입니다) 이후에 서자 6명을 낳은 것 같고, 데라도 130(역시 제 추정입니다) 이후에 아브라함과 나홀을 낳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야곱이 84세에 맏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20년설의 난점(?)

 

정설로 인정되는 20년설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내용입니다만 이 이론에도 미비점은 있습니다. 저의 의문인 창38:1그 후에와 별도 묵상인 야곱과 요셉의 나이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20년설로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설명 곤란한 중요한 부분은 2가지입니다.

 

먼저, 20년설을 기준할 경우, 루으벤(맏아들)으로부터 요셉(열한번째 아들)까지 낳는 데 소요된 총 기간은 약 7-8년 정도로 계산됩니다. 4명의 부인들(레아, 라헬, 실바, 빌하)이 낳았으므로 가능은 하지만, 레아의 경우는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레아는 처음 4명을 연년생으로 출산했고 일단 단산했다가 다시 3(아들 둘 및 딸 하나)을 추가로 출산했습니다. 7명을 연년생으로 이어서 낳았다고 해도 빡빡한 기간인데, 중간에(어느 정도의 기간인지는 몰라도) 쉬었다가 낳았다면, 7-8년은 무척 부족한 기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묵상할 때 레아는 중간에 약 1년 내지 1년 반 정도 단산했다가 7명을 연년생으로 낳았다고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시켰던 것입니다. 매우 궁색한 설명인 듯합니다만 달리 말씀드릴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38:1그 후에질문에 나와 있듯이, 유다의 자손들의 애굽 이주시의 문제점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야곱이 70(또는 75)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할 때, 그 숫자에 포함된 유다의 직계는 총 6명입니다. 유다 자신과 아들 3(셀라와 베레스와 세라) 및 손자 2(베레스의 아들인 헤스론과 하물)이 그들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팔려갔다가 재회한 기간은 22년이라는 것이 정설임에 비추어, 이 기간 동안 유다에게 있어서, [자신의 결혼득남아들들의 성장 및 결혼아들 2명 사망며느리 다말과의 관계로 인한 아들 2명 출생늦게 낳은 베레스의 성장 및 결혼손자 2명 출생애굽 이주] 등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겠습니다. 특히 유다의 3(죽은 2명 포함시) 셀라와 4남 베레스의 나이 차이가 무척 크다는 것(저는 약 20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을 고려한다면, 46:12이 성립되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 됩니다. 무언가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질문을 드렸던 것이지요.

 

 

40년설의 장점(?)

 

20년설의 난점이 곧바로 40년설의 장점이 됩니다.

 

먼저, 야곱의 11명의 아들들의 출생시기가 무척 원만하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런 추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①레아는 우선 4명을 연년생 또는 불연속적으로 낳음. 라헬의 질투에 의해 촉발된 빌하로부터 2명 낳음. 빌하의 성공을 반발한 레아의 방책에 의해 실바로부터 2명 낳음. 상당기간(10년 내지 20년까지도 가능) 단산되었던 레아가 다시 아들 2명과 딸 1명을 추가로 낳음. 라헬이 비로소 요셉을 낳음. 여기서 레아의 단산기간을 적어도 10년 이상으로 보아야 성경의 분위기에 적합하게 됩니다(29:35 및 창30:19). 만약 이 추정이 타당하다면 야곱의 11명 아들들의 총 출산기간은 27년 내지 28년이 됩니다. 연수(年數)에 관한 약간의 오차는 고려치 않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아무튼 20년설의 무리한 계산에 비해 훨씬 논리적인 추론으로 보여집니다.

 

다음, 애굽 이주 숫자에 포함된 유다의 직계가족에 대한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됩니다. , 유다와 요셉의 나이 차이를 약 23-24세 정도로 본다면, 유다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손자까지 볼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이 경우라 하더라도 창38:1그 후에가 의미하는 사건은 요셉이 팔려간 후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후에라는 단어가 다른 어떤 사건을 지칭한다고 한다면, 40년설의 설명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사실 성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다룬 문제도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저 편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20년설을 수용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으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가장 합리적인 이해에 도달하려 애써 보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40년설은 그런대로 가치 있는 제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제시된 40년설 자료에도 부족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84세의 나이에 맏아들을 낳기 곤란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반론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고, 그 외에도 지엽적인 계산 착오나 오타(?) 등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40년설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는 있으나(?), 자료에 기술된 내용만으로는 전적인 동의를 표명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평신도들의 한계를 되뇌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의 추정은 평신도에게는 너무나 벅찹니다. 그러니 이제는 말씀의 전문가들인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분들에게 부탁드리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됩니다.

 

어떤 분은 애굽 이주 숫자(70명 및 75) 문제를 다루면서,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유다의 자손들은 물론이요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자손들(7:145명이라고 추정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수용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 견해를 수용한다면 20년설의 두 번째 난점인 유다의 자손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목사님께 다시 질문 드리는 것으로써 이 묵상의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목사님, 40년설이 신학적으로 제기된 적이 있었는지의 여부와, 만약 있었다면 어떤 내용들이었는지, 또 만약 없었다면 목사님 개인의 견해는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