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바람소리
[단상] 기독신앙과 효빈(效顰) 본문
[단상] 기독신앙과 효빈(效顰)
) -->
) -->
원만한 진행을 위해 다 알고 있는 상식 두 가지를 상기하면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먼저, 서시빈목(西施顰目) 또는 효빈(效顰)이라는 고사성어입니다.
) -->
중국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4명의 미인을 가리켜 침어낙안(浸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라 합니다. 물고기가 가라앉았다(침어)는 서시(西施), 기러기가 떨어졌다(낙안)는 왕소군(王昭君), 달조차 숨어버렸다(폐월)는 초선(貂蟬), 꽃도 부끄러워했다(수화)는 양귀비(楊貴妃)가 그들입니다.
) -->
이중에서 침어(浸魚) 서시에게 해당되는 일화가 곧 서시빈목(西施顰目) 즉 효빈(效顰)입니다.
) -->
서시는 속병(가슴앓이)을 앓고 있어서 그 통증 때문에 수시로 눈을 찡그렸다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모든 사람들의 혼을 빼놓았다 합니다.
) -->
어느날 아주 못생긴 추녀가 자기도 눈만 찡그리면 예뻐 보일 것이라 착각하고 따라 했습니다. 결과는 더 흉해 보였을 뿐이었지요.
) -->
후대에는 ① 영문도 모르고 무조건 흉내를 내거나, ②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뜨는 어리석음을 빗대는 의미로 전의되었습니다.
) -->
다음, 멘토링(mentoring)입니다.
) -->
멘토링이란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이 스승 역할을 하여 지도와 조언으로 그 상대자의 실력과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것 또는 그러한 체계를 말합니다. 스승 역할을 하는 사람을 멘토(mentor), 제자 또는 조언을 받는 사람을 멘티(mentee)라고 합니다.
) -->
중세 수공업기술자 양성제도였던 도제제도(徒弟制度)와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도제(徒弟)⇒직인(職人)⇒장인(匠人) 또는 도제(徒弟)⇒장인(匠人)⇒도장인(都匠人)의 체계를 가지는데, 제자 도제는 스승 장인(또는 도장인)의 집에서 숙식을 같이 하며 배우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 -->
그냥 쉽게 멘토를 스승, 멘티를 제자라고 이해하면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 -->
) -->
효빈과 멘토링을 조합하면 이런 결론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멘토(서시)를 모방하려 했던 멘티(추녀)의 행동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 -->
비록 비웃음 샀을망정, 예쁜 서시(스승)를 닮으려는 못난 추녀(제자)의 자세는 본받을 만한 면이 분명 있습니다.
) -->
) -->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종교를 기독교라 하는데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으려는 제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이 가장 성경적입니다.
) -->
예수님을 그대로 닮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결과와 무관하게 무조건 ‘닮으려 노력하는 자세’가 기독교 최고의 덕목입니다. ‘예수 닮은 사람이 곧 예수쟁이’입니다.
) -->
성경에는 멘토(스승)와 멘티(제자)의 관계가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 베드로와 누가와의 관계 등 무수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 -->
다만 세상의 멘토링제도나 도제제도와 다른 유일한 차이점은, 그 닮으려는 스승이 육신의 스승(인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데에, 있습니다. 명목상 멘토(스승)의 역할을 수행하는 바울이나 베드로 등은 최종 멘토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닮아야 할 최종 목표는 바울이나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인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알았습니다.
) -->
따라서 예수님 닮아야 할 기독교에는 오직 하나의 계파만 존재해야 합니다. 예수파입니다.
) -->
그런데 너무나 많은 분파(分派)로 갈라졌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수백 개의 교파로 분열되었습니다. 폭파되었다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리라 여겨집니다.
) -->
각 교파들은 자신들만이 유일한 적자(嫡子)라고 지성으로 강변합니다. ‘우리 교파만이 정통’이라고 눈물겨운 몸부림을 칩니다.
) -->
하지만 그 합법성(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어져 온 법적 근거)은 증명되지 않습니다. 누구도 정통성을 판결내리지 못합니다. 단지 스스로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 -->
요즘 여러 교단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설교라는 단어로 치장합니다)을 들어보면 가관입니다. 그나마 소위 정통교파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은 조금 낫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이 가끔은 있습니다.
) -->
그러나 이단사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한심하다 못해 아찔할 지경입니다. 허망하기 짝이 없는 망언들을 겁도 없이 주절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열광합니다.
) -->
여기서 신학적인 이단의 정의를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자칭 정통이라 주장하는 이들의 교언영색에도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 -->
왜냐하면 이단의 유일무이한 판정기준은 지도자(교주, 목회자, 신학자 등)를 신격화하는 것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 -->
지도자를 신격화하거나 절대시하면 이는 볼 필요도 없는 이단사설입니다. 지도자라는 이유로 도에 넘도록 존경하거나 지도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리는 것은 성경적 이단의 숨길 수 없는 징후입니다.
) -->
) -->
정통이든 이단이든, 기독신앙이라 주장하려면, 오직 성경만이 그 기준임을 먼저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만이 기독신앙의 핵심입니다. 그 외의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아무튼 일부 지도자들의 말(설교)을 들어보면 ‘참 성경을 쉽게 읽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을 멋대로 해석해 버립니다. 좀더 머리 좋은 이들은 성경 외에 보충서까지 만들어 내고는 ‘이것을 따라야 한다.’며 기고만장합니다.
) -->
까짓 지도자들이야 생기는 게 있으므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겠기에 어쩔 수 없겠지요.
) -->
하지만 성경을 읽어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성도들조차 성경에서 읽은 것과 비교하며 판단해 보지는 않고 무조건 그들을 추종하는 현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
도대체 저런 엉터리 이론에 왜 현혹되는 것일까요? 마음 다잡고 성경 한번만 읽어보면 되는데, 말도 안 되는 허황된 거짓에 정신 쏙 빼주고 허우적거리는 모습, 어찌 설명해야 할는지요!
) -->
이단사설에 빠진 이들이 무식한 자라 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 중에는 매우 똑똑한 사람들 많습니다. 공부할만큼 해본 박사들 석사들 수두룩합니다. 목회자도 있고 장로도 있습니다. 스스로 지자(知者)로 확신하는 인사들입니다.
) -->
한번 이단에 빠진 이를 거기서 빼내오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득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 안 듣습니다. 자기가 옳답니다. 절벽에 대고 소리치는 게 더 낫습니다.
) -->
그러면서 이들은 자기 지도자의 말을 그대로 주절댑니다. 그게 진리라는 것이지요. 암팡지게 강조합니다.
) -->
일반성도들을 아주 잘 현혹시키는 이들(교주, 목회자, 교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말’(설교)입니다. 말을 아주 잘한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면 안 넘어갈 도리가 없습니다.
) -->
문제는 그 ‘말’이 성경에 기반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판단은 성경을 진지하게 읽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습니다.
) -->
) -->
옛날 효빈(效顰)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 내었던 추녀는, 진짜 아름다운 서시를 흉내 낸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이해의 여지라도 있었습니다.
) -->
그러나 오늘날 이단과 거짓 스승들을 추종하는 이들은, 성경 몇 구절을 양념삼아 자기 멋대로 맛을 낸 거짓말(단점)을 설교(장점)로 알아들음은 물론 영문도 모르고 무조건 흉내 내기 때문에, 눈곱만한 이해의 여지도 없습니다.
) -->
듣는 말(설교)을 성경에 비추어 검토해 보지 않는다면 현대판 효빈을 유발하는 우매한 짓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
현대판 효빈(목사 무작정 따르기)은 정말 추한 것이며 비웃음을 살 뿐입니다.
'신앙의 여정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 담쟁이덩굴의 두 얼굴 (0) | 2016.07.14 |
---|---|
[단상] 난로 밖으로 뛰쳐나온 석탄의 운명은? (0) | 2016.07.12 |
[단상] 웰다잉(Well Dying) (0) | 2016.07.09 |
[단상] 기독교인의 장례의식 (0) | 2016.07.08 |
[단상] 구구절절 옳아 보이는 몽매한 말들 (0) | 2016.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