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바람소리
[의문 013] 편집설의 증거(?)(2) - ‘오늘날까지’ 등 본문
[의문 013] 편집설의 증거(?)(2) - ‘오늘날까지’ 등
오늘은 편집설의 우세를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2번째 검토로써, 몇 가지 단어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에 기록된 “오늘날까지”라는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 성경에는 ‘오늘날까지/오늘까지/이제까지/지금까지’라는 표현이 약 100여 회 나오는 것으로 검색됩니다(구약 95여 회, 신약 10여 회 등). 물론 이 숫자는 정확한 회수는 아니고 단순 검색한 결과일 뿐입니다.
- 문제는 이러한 단어들이 기본적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경우라야 사용될 수 있는 단어라는 점입니다. 즉, 사건발생 당시에는 사용하기가 적합하지 않은 표현인 것입니다.
- 창세기는 필연적으로 모세가 편집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창22:14; 26:33; 32:32; 35:20절 등에 나오는 ‘오늘까지’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이해의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신34:6 및 수7:26절에 나오는 ‘오늘날까지’는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죽은 이후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인지, 아간의 돌무덤이 생기고 난 이후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말인 것입니다.
- 결국, ‘오늘날까지’라는 단어는 사건발생 당시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만, ‘정확히 얼마 후의 기술이냐’의 문제가 쟁점입니다.
- 한마디로, ‘오늘날까지’라는 단어의 의미로 미루어 본다면 사건발생 후의 일정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이므로, 편집설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둘째, 책 이름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 민21:14절에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책이 나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오래 전에 실전된 책으로서 아마도 ‘적군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모아놓은 책’일 것으로 추정됩니다(수10:13절의 “야살의 책”도 비슷한 종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문제는 이 책의 저술시기입니다. 민21장이 기술되는 시기는 가나안 정복전쟁의 전초전격인 아모리(시혼 왕)와의 전쟁(민21:21)을 치르기 전이었습니다. 이 전쟁 이전에 아말렉과의 전투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전투를 많이 경험한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홍해사건에 관한 모세와 미리암의 찬송시(출15:1, 21) 사례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겨우 두세 차례의 전투경험을 가지고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승전가 모음집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차라리 “여호와의 전쟁기”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기를 망라한 승전가 모음집으로 보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며, 그렇다면 이 책들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대의 저작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이러한 추정이 맞는다면, 민수기는 모세의 저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후대의 저작임을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가 아무리 예지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수십년 또는 수백년 후에 발간될 노래책의 이름까지를 인용하여 민수기를 기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결국, 민수기에 기록된 “여호와의 전쟁기”나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야살의 책” 등은, 민수기와 여호수아서가 모세나 여호수아의 기록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저작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후대의 첨가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민36장은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의 다섯 딸들에 관한 기사입니다. 슬로브핫은 아들없이 광야에서 죽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업배분에서 제외되었으나,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모세는 탄원의 타당성을 인정해 줌으로써, 땅을 분배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민27:1-11).
- 딸들에게 땅을 분배한 것은 모세가 죽기 직전이었으며(약속 차원) 이때 당시 딸들은 분명 미혼이었습니다. 그런데 36:12절은 “…시집 간 고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민27장과 32장을 연이은 기록으로 볼 수도 있는데, 곧이어 ‘시집갔다’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5명 모두 시집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모세 사후, 그것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대의 기록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일 것입니다.
- 또 12절은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더라.”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약속의 실현 차원). ‘여전히’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단어는 현재시점에서 미래를 표현할 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현재시점에서 과거를 향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인 것입니다. ‘여전히’라는 단어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로부터 땅 분배의 약속을 받고 수십 년이 흐른 후, 결혼도 하고 땅도 후손에게 넘겨주었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단어인 것입니다.
- 위 내용을 분석해 보면, 상황발생 당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기록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며, 결국 이는 민수기의 저자는 모세가 아니라 후대의 사람일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넷째, 출16:34절의 “증거판 앞에 두어”라는 말씀도 무척 곤혹스러운 표현입니다. 편년체식 기록법으로 본다면, 출20장에 가서야 십계명을 받게 되고 이를 보관할 언약궤는 출37장에 가서야 제작됩니다. 따라서 출16:34절은 기전체식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편년체식 개념으로는 이때는 아직 증거판이 없었습니다. 이 구절도 편집설의 우세를 증거하는 구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섯째, 출16:35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만나를 먹되”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나를 먹기 시작한 당시의 정황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만나 취식 총 기간을 망라한 표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가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상황발생 당시 기록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건발생 이후에 기억을 더듬어 정리하여 기록하는 방법임을 나타내는 구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섯째, 민9:15-23절은, 성막 위에 임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백성을 인도하는 모습을 기술하고 있는데, 15절의 분위기상으로는 그 시기가 출애굽 직후(제2년차=출9:1)로 보이지만, 16-23절은 40년을 망라하여 표현되고 있습니다. 출발(출10:11)도 하기 전에, 40년간의 여정을 미리 기술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부분도 먼 훗날, 회상에 의존한 기록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몇몇 구절들은 모세가 임종직전 기억을 더듬어 기록했다고 한다면 그런대로 이해되기는 하겠지만 설득력이 약하고, 몇몇 구절들은 설명 자체가 불가하다 하겠습니다.
✳ 신약성경은 물론 구약성경에도 영감설을 지지하는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출24:4;신27:8 등등). 그러나 오늘 의문은 편집설의 가능성을 짚어보는데 있으므로, 영감설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시켰습니다. 의문해소가 목적일 뿐, 영감설의 부인이 목적은 아닙니다.
☞ 의문 :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의 몇몇 단어 및 구절들은 영감설보다는 편집설을 증거 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모세오경의 편집설이 더 신빙성이 높은 것은 아닐까요?
'신앙의 여정 > 거룩한 의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문 015] 70명과 75명의 차이에 관한 견해 모음(1)(창46:8-27) (0) | 2016.07.10 |
---|---|
[의문 014] 제사장과 관련된 몇 가지 의문들 (0) | 2016.07.09 |
[의문 012] 편집설의 증거(?)(1) - ‘단’ 지명에 관하여 (0) | 2016.07.07 |
[의문 011] 정탐꾼 갈렙은 중보기도자 훌의 아버지인가? (0) | 2016.07.06 |
[의문 010]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촌수(寸數)는? (0) | 201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