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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방언(5) 골프와 방언 은사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가 있습니다. 각 종목마다 특색이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골프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스갯말로 ‘앉아서 하는 잡기는 마작, 서서하는 운동은 골프’라는 분들도 제법 됩니다. 제 경험상 으로도 골프는 정말 재미있는 스포츠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골프채를 잡아 보지 않으신 분들 중에는 ‘긴 작대기로 조그만 공을 쳐서 구멍에 넣는 게, 뭐 대단한 묘미가 있을 것이며 운동이 되겠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골프에 관한 한, 대단한 특혜 누리는 직장에 근무합니다(다른 면에서는 별로입니다). 일주일에 1회는 고정적으로 라운드 할 수 있고, 욕심 부리면 2회도 가능합니다. 앞서 단상 ‘목사와 골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주말골퍼들에게는 꿈같은 일이지요.
약 15전 전, 이처럼 좋은 조건 속에, 주위 사람들 모두 골프를 권했습니다. 약 10년을 흘려들었습니다. 시간 뺏기지 않고 교회 봉사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위에서 말씀드린 골프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진즉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정말로 몰랐던 재미가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주위 사람들에게 ‘기왕 할 것이면 최대한 빨리 시작하라.’고 강권하곤 합니다. 골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런 재미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골프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권해도 관심 없는 분들이 있고, 시작했다가 그만 두는 분들도 많습니다. ‘나는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저분들은 왜 흥미를 못 느낄까?’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운동=골프’라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만, 다른 분들도 똑같으리라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고, 나아가 각 종목마다 나름대로의 충분한 가치 지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골프란, 아무리 재미있을지라도, 스포츠의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골프가 스포츠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신앙 안에도 각종 은사들이 있습니다. 성경 몇 곳에 나뉘어 기록된 은사의 종류를 종합하면 약 27-31개의 목록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은사는 무엇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물론 모두 다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귀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가장 귀한(아니면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은사를 고르라면 어찌될까요?
성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각기 다른 은사를 택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사랑을(사실 가장 근접한 정답이지요), 어떤 이는 믿음을, 그리고 소망을, 또 방언을 꼽기도 할 것입니다.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 정답 범주에 포함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방언 은사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분들의 주장은 자못 심각한 면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주장의 요지는 “믿는 자라면 누구나 방언 받아야 한다. 방언은 믿음의 증표이며 만약 방언 못하면 성도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대답을 궁하게 하는 것은, “방언 한 번 해 봐라. 못하는 자는 알 수 없는 영적 유익이 말할 수 없이 크다.”라는 확정적 주장입니다.
방언 못하는 명목신자(방언필수론자의 지론에 의한 응당 구원과 무관한 멸망 받을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불쌍한 자칭 신자) 주제에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이분들의 주장을 대할 때마다, 몇 번 간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주시는 주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나는 너무 형편없는 존재라서 결국 하나님의 인정도 받지 못해 누구다 다 받는 방언마저 못 받는다는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왜 안 주실까? 왜 안 주실까? 왜? 왜? 왜? ……” 하지만 방언필수론자들이 들려 줄 답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바른 믿음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 있다면 결코 안 주실 리가 없다. 고로 당신은 자신의 믿음을 심각히 되짚어야 한다.”
방언 받지 못해 이러한 자문자답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성도들의 쓰라린 속을 주님도 나무라실는지요! 천국 문을 닫고 못 들어오게 하실는지요!
자기 신앙의 진정성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다가, 주님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셨습니다. 바로 골프와의 비교입니다.
현재 저는 골프예찬론자입니다. 그러나 결코 다른 스포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습니다. 특정인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어떤 종목을 좋아하든 하등의 시비꺼리가 아님을 압니다. 아울러 혹자가 특정 종목을 못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방언예찬론자라면, 다른 은사들을 평가절하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성도가 특정은사(이글에서는 당연히 방언) 못해도 나무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 ‘달리기’라는 이론을 내세워, 모든 은사의 기본은 ‘방언’이라는 주장도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달리기가 기본일지라도, 달리기 못해도 잘 할 수 있는 종목은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골프에 대해 내렸던 나름대로의 정의를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골프란, 아무리 재미있을지라도, 스포츠의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골프가 스포츠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방언에 적용하여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방언이란, 아무리 신령할지라도, 은사의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방언이 은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골프에 숨겨진 재미가 있고 방언에 신령한 효능이 있다 할지라도, 방언은 은사의 하나요 골프는 운동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운동과 은사는 다양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종목의 운동에 만능일 수 없듯, 성도도 모든 종류의 은사를 받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모든 성도는 반드시 방언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든 운동선수는 반드시 골프해야 한다.』는 억지와 동일한 맥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저는 방언필수론자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방언이 모든 은사 중의 최고의 자리(기본은사)를 차지해서는 곤란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해를 지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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