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교파/교단은 필수인가?(Ⅱ)
[묵상] 교파/교단은 필수인가?(Ⅱ)
< 본문 = 고전3:1-9>
▣ 현실에서는 왜 다양한 교파가 생겨나는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성경을 100% 완벽하게 이해할 교파나 개인(목사)은 없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제한적입니다. 그 누구든 성경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교파)은 없습니다. 부분적일 수밖에 없으며(고전13:12), 서로에게 배울 수밖에 없고 또 하나씩 밖에는 예언할 수 없습니다(고전15:31). 피차 가르치고 권면해야 합니다(골3:16).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명백한 원칙입니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이미 안수를 받은 목사들의 입장입니다. 목사들은 반드시 특정 교단을 통해 안수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안수하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당연하지요).
◎ 일단 개인차원에서 목사는 교단에 신세를 진 형국입니다. 양심 측면에서 보더라도 신세진 교단을 위해 무엇이든 보답해 주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교단을 옹호하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라 할 것입니다.
◎ 그리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럿이 힘을 합하면 쉬워집니다.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전4:12). 어찌하든 똘똘 뭉칠 수밖에 없습니다.
◎ 이러한 기대에서 출발된 교파는 점점 경직화되어 일종의 배타적 이익집단으로 변모했고 이제 와서는 개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견고해져 버렸습니다.
세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일반성도들의 자세입니다. 일반성도들의 신앙관은 거의 목사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습니다. 성경에 입각한 바른 가르침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지 못한 목사 자신의 성경이해에 목사의 욕심이 가미될 경우에는 괴상망측한 신앙이 생겨나기 십상입니다. 일반성도들이 전적으로 담임목사를 믿고 따르려는 태도가 권장할만한 모범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으나 이처럼 무모하고 위험한 장난은 없습니다. 목사들이 잘못 가르치는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아무튼 교파에 관한 한, 일반성도들은 성경이해의 제한과 목사들의 욕심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속한 교파라 하더라도 결코 완전한 무리는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의 교파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교파가 없고, 따라서 유일하게 중요한 교파도 없습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다 같이 미흡하고 부족한 교파들만 존재할 뿐입니다. 성경은 예수교파만 말씀하실 뿐, 현존하는 교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이것은 분별(영분별)에 속하는 문제이며 이는 일반성도들의 임무입니다.
이제 이러한 이해를 전제하고, 아주 중요한 사항을 정리하겠습니다. 그것은 교파의 시작에 관한 것입니다. 즉, 과연 누가 교파를 만들고 유지시키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 여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속임수가 숨겨져 있습니다. 교파는 일반성도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교파를 만듭니까? 지도자들입니다! 교파를 만듦으로써 무언가 얻을 것이 있는 부류의 사람들의 작품입니다! 목적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이렇게 됩니다.
◎ 목사들의 신적권위의 보증수표처럼 오용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민12장의 미리암의 문둥병 사건과 민16장의 고라 일당의 사망 사건입니다. 이 구절은 목사들이 흔히 해석하듯(일반성도들의 코뚜레로 해석하지요) 그러한 뜻이 전혀 아닙니다. 여기서 이를 깊이 다루기는 적절치 않으므로, 묵상 주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반항했던 미리암과 아론과 고라와 장로들은 모두 일반성도들이 아니라 지도자급에 속하는 이들이었다는 점입니다. 큰 사명(임무)을 담당하고 있었던 부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더 큰 임무 수행자인 모세에게 대항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도자들 간의 밥그릇 크기 싸움을 의미합니다. 지파의 우두머리도 아니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명을 부여받지 못했던 평범한 백성들(일반성도들)은 모세에게 대항할 위치에 있지도 못했습니다. 크든 작든 권한을 지닌 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확대하기 위해 모세에게 시비 걸었던 사건인 것입니다. 여기는 놀라운 교훈이 더 숨겨져 있습니다. 모세의 위상에 관한 것입니다. 모세는 인간을 상징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현대의 목사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오직 예수님을 예표할 뿐입니다. 민수기 상황을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오. 지도자들(미리암/아론/고라 일당)이 하나님(모세)을 대적하는 모습이 그려지십니까? 유념해야 할 점은 ‘지도자들의 무리 짓는 현상’입니다. 이익을 위해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민수기에서는 이것이 모세(실제적으로는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대 교회에서도 목사들이 무언가를 위해 무리를 짓습니다. 물론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웁니다. 교파별 교리 및 교단법 등입니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단순한 ‘무리짓기’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 천주교는 어떻습니까? 성경에 그려진 초대교회에서는 눈 닦고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 귀족적 사제가 어디서 나타난 것입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뭔가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성직자 그룹입니다. 일반성도들이 교황을 옹립해 달라고 탄원하지 않았습니다. 얻을 것을 욕심낸 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일 뿐입니다(이게 천주교의 실상입니다).
◎ 개신교는 어떻습니까? 종교개혁에 의해 제대로 회복된 만인제사장 교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목사성직론이라는 괴상망측한 교리로 타락되었습니다. 목사성직론이란, 목사는 일반성도와는 격이 다른 별도로 구별된 전문종교인이라는, 허무맹랑한 망상입니다. 글자만 바뀌었을 뿐, 천주교의 사제론 그대로입니다. 종교개혁가들이 바로 잡아놓은 것을 왜 다시 왜곡시켰을까요? 답은 2가지입니다. 첫째는 루터나 칼빈 등이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칼빈은 교회를 개혁하면서 지나치게 설교권을 강조함으로써 목사가 마치 전능권을 보유한 존재인 것처럼 오도했고, 아니더라도 목사를 구약의 제사장 및 선지자에 버금가는 존재로 오해하게끔 만든 책임이 있습니다. 둘째는 목사들의 욕심입니다. 만인제사장설에 따르다보니 영 재미가 없습니다. 일반성도와 구분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힘들게 신학 공부한 이득도 별로입니다. 천주교의 사제론이 훨씬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공모하여 ‘목사성직론’이라는 괴물을 창조해 내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처럼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미비와 그 후배 목사들의 욕심이 결합하여 지극히 비성경적인 ‘목사성직론’이라는 우상이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 목사성직론은 성도들이 인식하기 어려운 묘한 함정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를 일종의 신비한 영적존재로 대우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입니다. 성경 말씀의 여기저기를 교묘히 인용하며 목사의 직능을 거룩하게 포장합니다. 그래서 현대교회에 있어서 만약 목사가 없으면 교회가 허물어지기라도 할 듯이 목사의 역량을 과대포장 시켰습니다. 목사는 예수님과 같고 최소한 바울과도 같은 위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중 가장 그럴듯한(존경할만한) 목사를 중심으로 편당을 만들었습니다. 이 결과가 바로 교파의 난립입니다!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 등이 아주 모범적인 지도자들이었음은 부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성경의 일부만 알았을 뿐, 성경 전체를 통달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추종자들은 오직 자기가 따르는 신앙 위인만이 최고(최소한 바울과 동급)인 것으로 받아들여 버렸습니다. 이 추종세력들의 모임이 곧 교파인 것입니다! 그래도 정통교파라면 괜찮습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양파이론을 적용하여 적절히 선별 수용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별 희한한 교파까지 등장한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습니다. 몰몬교니 승리제단이니 만민교회니 JMS니 하는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 원인제공자가 누구인가요? 목사들입니다. 목사를 무슨 대단한 천사쯤으로 인식하여 목사 말이라면 아무런 비판(성경적 검토) 과정도 거치지 않고 무조건 수용하도록 세뇌시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합니다만, 우리가 존경하는 신앙위인들의 진정한 위상에 관해 재고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루터나 칼빈 같은 분들을 너무 지나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말에는 껌뻑 죽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루터도 칼빈도 예수님이나 바울에 비견할 수는 없습니다. 루터교리가 완전합니까? 칼빈의 장로교리가 완벽합니까? 웨슬리의 감리교리는 부족한 점이 없습니까? 이들 각 교파의 교리가 부분적으로 타당한 면은 있다 할지라도, 성경을 전적으로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수많은 미비점을 안고 있을 뿐입니다.
◎ 한마디로, 교파는 대다수 일반성도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무언가 얻을 것이 있는 기득권층의 욕심에 의해 시작된 비성경적 현상임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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