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여정/묵상

[목자상](12) 권위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구절들(구약 3)

맑은바람청풍 2019. 8. 12. 16:23

[목자상](12) 권위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구절들(구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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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를 물질로 잘 섬기는 것이 복 받는 비결인양 오도할 때, 꼭 인용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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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왕상17:8-16입니다. 여기 보면 3년 반의 가뭄 동안에 밀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를 공궤하였던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일단 눈물겹도록 정성껏 선지자를 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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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왕하4:8-16에 보면 엘리사를 극진히 섬겼던 수넴 여인이 나옵니다. 나이 많고 아들도 없는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사심 없는 사랑을 베풉니다. 세상적인 욕심도 없습니다. 아주 순수한 섬김과 봉사로 일관하지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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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씀을 인용할 때면 [목사]들은 아주 신이 납니다.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처럼, 일반성도는 마땅히 선지자인 [목사]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성경의 뒷받침이 있는 명백한 말씀이니 거리낄 것 하나 없다는 듯이 이야기 합니다. ‘[목사]에게 맛있는 것 사 드려라. 옷을 사 드려도 좋다. 책을 사 드리면 일반성도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등등 그럴 듯한 권고들을 끊임없이 강요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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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요? 물론 아닙니다. 현대 교회에서 [목사]에게 음식이나 옷이나 책 등을 사 주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례비로써 스스로가 구입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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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엘리야나 엘리사의 경우에는 보다 깊은 영적인 교훈들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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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와 엘리사는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왕상17:18, 왕하4:9). 두 여인은 당시 이스라엘의 수많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모두를 공궤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확실한 하나님의 사람만 정성껏 섬겼던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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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용어가 구약에서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사용되었지만(성령의 제한적/한시적 임재), 신약에 오면 모든 성도들에게 사용된다는 점(성령의 보편적 임재 ; 임마누엘)도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진리입니다(딤전6:11). ‘하나님의 아들 및 자녀로 보다 구체화되기까지 합니다(5:9, 20:36, 1:12,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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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의 섬김은 필연적인 성격이었다는 점입니다. , 하나님의 사역의 지속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것이지요. 엘리야와 엘리사는 가난한 자였습니다. 만약 두 여인의 섬김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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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솔직히 표현한다면, 이들의 섬김이 없었다면 엘리야가 굶어죽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여인의 섬김에는 이러한 의미까지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섬기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준비하셨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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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은 심령이 가난하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이었습니다(5:3-10).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모든 여인들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알아본 것은 아닙니다). 욕심 없는 이들은 참 선지자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숨긴 것이 들어나지 않을 것은 없습니다(12:2). 반드시 알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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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목사] 중에서 엘리야나 엘리사보다 더 하나님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욱 잘 섬기라고 요구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단지 욕심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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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현대 [목사]들의 요구는 하나님의 사역과 아무 연관도 없고 단지 좀 더 인정받고 대접받고 누리고 싶은 욕심만이 내재되어 있을 뿐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목사]들을 물질로서 섬겨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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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현대의 [목사], 사르밧 과부나 수넴 여인을 예로 들어, [목사] 잘 섬길 것을 요구할 때, 깨어 있는 성도라면 그 허구를 인식하여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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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반성도는 [목사]를 물질로 잘 섬기지 않아도 됩니다! 사례비를 제대로 지급만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더 이상은 욕심이며 잘못입니다. 부가적으로 [목사]를 섬길 경우 득보다는 실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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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주 솔직해진다면, 일부 개척교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자리가 잡힌 교회라면, [목사]가 오히려 가난한 교인들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금방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목사]의 사례비가 일반성도의 평균 수입보다 많은 경우가 허다한 것은 물론이고, 무슨 명목으로든 [목사]가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회 예산항목이 의외로 많습니다. 실제 교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러한 전용(轉用) 사례들을 성도들이 모두 안다면 그 실망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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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목사] 중에는 가난하지 않은 자가 무수히 많습니다. 음식///승용차 등을 사서 [목사]에게 주는 것은, [목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타락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금해야 할 잘못된 관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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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자립교회에서 시무하는 [목사]들에 대한 대책은 별도로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들을 빌미로, 위 두 곳의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온당한 적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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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에서의 성도간의 물질적 교제는, [목사]이기 때문에 일반성도가 섬겨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 가난한 성도를 위해 나눈다는 명확한 기준에 따르면 충분한 것입니다. [목사]이기에 물질적 이득을 더 취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배치되는 생각입니다. 너무나 유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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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관에 대해서도, 오직 성경의 뜻을 바르게 살핀, 바른 가르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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