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여정/단상

[단상](개혁04)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맑은바람청풍 2019. 3. 10. 09:43

[단상](개혁04)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배경 설명

 

공동목회 개시 직전, 주도권을 쥐고 있던 L 목사의 뉴스앤조이를 이용한 언론플레이(03번 글)에 대응하여 즉각 반대의견을 표명했습니다. 너무 왜곡된 내용일 뿐 아니라, 오보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뉴스앤조이 기사는 J 목사의 귀뜸으로 늦게 읽었습니다. 아마 L 목사의 행위에 거부감을 느낀 J 목사가 넌지시 알려준 것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어찌되었든 막 출발하게 될 공동목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L 목사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후 L 목사는 더 이상 왜곡보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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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목사님!

 

주님의 은혜가 끊이지 않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의 지도 아래 참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 알았고, 이를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믿음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간 공동목회 추진에 참여하면서 이같은 지금까지의 생각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newsnjoy 기사는 참으로 아쉽더군요. 꼭 그렇게 표현하셨어야만 했는지요? NS 교회 성도님들의 글도 대충 읽어 보았습니다. 목사님을 칭찬하는 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더군요. 아마도 그분들은 진심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시절인가 "구국의 영단"운운하던 신문기사들이 떠오르는 것은 웬 일일까요?

 

진실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지 않는 다수의 소리는 언제나 귀에 들리지 않기 마련이지요.

 

이제 공동목회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목사님, 기왕 기득권을 포기하셨다면 끝까지 그리고 철저히 포기하십시오. 세상이 모르고 또 성도님들마저 몰라준다 해도 주님은 알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호의적인 성도님들의 칭찬 몇 마디가 목사님의 기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언론홍보 기회가 더 있을 것 같기에, 혹 또다시 동일한 과오가 재현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충정으로 고언을 드립니다.

 

목사님은 완전하게 수면 하에 숨으시고 주님만이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온전한 자기포기(특히 목사님의)가 없이는 공동목회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NS 교회를 개척하시던 당시의 초심이 필요한 때가 아닐런지요?

 

아래의 글은 newsnjoy 기사를 읽고 쓴 소감입니다. 이는 비록 SJ 교회의 입장을 전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SJ 교회에 몸담고 있는 한 성도의 견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해하시면서 읽어 주십시오.

 

끝까지 주님의 은혜를 구하시는 목사님의 모습 보기를 기원하면서,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간직한 SJ 교회 000 집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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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목회에 임하는 SJ 교회의 견해와 입장>

 

SJ 교회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가?

 

근간 일부 기독교 사이트를 통해 공동목회에 대한 일종의 홍보성 보도를 접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다시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NS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몇몇 성도님들의 견해에서도 우려할 만한 점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는 극히 일부 성도님들의 이해 부족에 기인된 현상이겠으나 공동목회 출범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바로잡지 않는다면 후일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는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이글을 작성하게 되었음을 미리 밝힌다.

 

성경의 깊은 진리 가운데 한가지는 '하나님께서는 일의 결과도 중요시하시지만 그 과정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공동목회의 발기로부터 기획안 작성과 실행준비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심각한 갈등과 아픔을 겪었다. 이제 와서 그 내용을 상기하여 아픔을 곱씹을 필요는 없으나 그 교훈마저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불신자들의 비난의 초점이 될 뿐 아니라 양식있는 성도들도 근심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는 이끄는 자들(목회자 및 신학자)과 따르는 자들 모두의 책임이지만, 이끄는 자들의 책임이 더욱 막중함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동목회 추진과정에서 겪었던 우리의 아픔과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기에, 몇 가지 점을 짚어 보기로 한다.


경계해야 할 오해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믿음의 출발점이기에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생략한다.

 

교회의 직분과 은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 : 은사는 다양하며 직분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부(지체)임을 고백한다. 이점에서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오해 한가지가 발생된다. 즉 목회자(특히 담임목사)의 지위에 관한 것이다. 담임목사는 교회의 머리가 결코 아니다. 담임목사는 BOSS가 아니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권자(PAPA)도 아니며 한 유형교회(소위 ○○교회라 칭하는)의 유일한 LEADER도 아니다. 아무리 유능한 담임목사라 해도 몸의 한 지체라는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담임목사의 君臨權을 경계하기에 공동목회를 추구하면서 초대교회의 집단지도체제를 모델삼아 원형구조라는 성경적 지도체제를 선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공동목회 정관의 기저에는 담임목사(목회자 포함)의 책무를 "말씀과 기도"에 전념케 하려는 취지가 담겨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는 어떤 유능한 담임목사라 해도 모든 면에서의 능력을 겸비할 수 없다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또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담임목사도 서로를 돕는 자들의 범주에 포함됨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교회의 직능 :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4대기능 또는 5대기능 아니면 그 이상으로 세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크게 보아 모이는 기능(에클레시아)과 흩어지는 기능(디아스포라)의 양대 기능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회의 궁극적 사명은 천국의 확장이다. 따라서 모이는 기능은 종속적 성격이 강하고 흩어지는 기능이 교회의 참 모습이다. 흩어짐은 모임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약한 인간은 모이는 기능에 치중하여 자칫 "초막신앙"(9:5)에 빠지기 쉬우며 이는 오늘날 한국 대형교회의 골칫거리 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공동목회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흩어짐에 있음을 다시한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대형교회의 허구성 : 우리는 교회의 외형이 크면(모이는 성도의 숫자가 많으면) 그 능력도 클 것이라고 짐작한다. 대형교회의 다양한 능력 개발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 실재가 기대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대형교회는 장점과 동시에 단점도 지닌다는 의미이다. 공동목회에 참여하는 교회는 2개 교회이다. 여기서도 대형교회(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일률적인 판단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여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은 일종의 오류이다. 진정 새로운 시각으로 새 출발을 한다면 우리의 의식구조부터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으로의 공동목회 정착과 성장에 필수적인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SJ 교회는 왜 공동목회에 참여하려고 하는가?

 

초막신앙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우리끼리 모여 누이좋고 매부좋은 그런 교회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간 우리의 기도제목은 2가지였다. 그 하나는 선교사 20명을 파송하는 교회가 되려는 것이요 또다른 하나는 ◎◎ 10% 전도사업의 주도적인 교회가 되는 것이었다. SJ 교회는 수년 동안 기도해 왔으나 아직은 교회의 힘이 모자란다. 더욱이 마지막 때는 다가오는데 교회의 역량 배양에만 노력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이럴 즈음 공동목회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를 성령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라고 받아들였으며, 교회가 양적성장에 발목잡히지 않고 천국확장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공동목회라는 사실을 지금도 믿고 있다.

 

세상 자랑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만일 세상(교회 포함)의 칭찬을 받는다면 천국에서의 칭찬을 잃는다는 진리를 그대로 수용한다. 주도권을 다투고 싶지도 않고 기득권을 보장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공동목회를 지향하는 SJ 교회의 각오와 다짐과 자세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도자되신 성령님을 고백한다.

 

이 땅의 모든 성도(목회자와 성도)는 교회의 몸(지체의 일부)임을 고백하며, 직분과 은사의 다양성은 인정하나 우열은 배격한다.

 

공동목회의 진정한 목적은 교회의 성장(에클레시아)을 종속 기능으로 하여 교회의 영향력 증대(디아스포라)에 있음을 선언한다.

 

유능한 단일지도체제의 한계를 경계하며 다소 미흡하더라도 집단지도체제가 성경의 원리임을 확인한다.

 

온 교회가 하나되어 주어진 직분에 충실함을 감사의 제목으로 삼는다.

 

부가하여 공동목회의 진의를 왜곡하거나 오도할 소지가 있는 일체의 행위를 자제할 것을 제의한다.



맺음말

 

서두에서 언급하였던 사례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것이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나 자기 부정이란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님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기왕 기득권을 포기하려 했다면 세상의 칭찬마저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느 일 개인의 부각이 공동목회의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 순간까지도 공동목회는 온전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을 뿐, 어느 한 목회자의 영단의 결실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세상(교회 포함)은 아직 공동목회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어쩌면 공동목회의 진정한 평가는 5년 후 아니면 10년 후에나 내려질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제 막 시작될 공동목회가 개인의 성가 고취에 이용되어서는 안되며, 나아가 이로 인해 세상(교회 포함)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SJ 교회의 공동목회에 임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바이다.

 

기실 기득권을 포기하신 분들은 보다 많았음을 기억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공동목회의 새롭고 성공적인 출발이 되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