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여정/독후감

[독후감] ‘람세스’ 등 일반서적 3권을 읽고 - 진리와 종교

맑은바람청풍 2018. 2. 19. 14:35

[독후감] ‘람세스등 일반서적 3권을 읽고 - 진리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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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 사이에 아주 재미있는 소설 3권을 읽었다. 영국 작가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 한국 작가 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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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는 신부의 삶을 통해 천주교의 이상을 설파한 소설이고, ‘람세스는 이집트 문명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비교한 소설이며, ‘하늘이여 땅이여는 한국의 무속문화의 우수성과 보존가치를 강조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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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소설의 독후감 또는 주요내용은 별첨된 요약을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종합적인 소감을 기술하는 것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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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의 문제점이 지적되지만, 3권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이론은 인본주의종교간의 화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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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에서는 신부를 통해 종교간의 갈등 해소와 종교간의 상호인정 문제를 다루고 있다. ‘람세스에서는 인간의 강함, 즉 주인공인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를 통한 강한 인간의 아름다움과 자연(여러 신들)과의 교감을 아주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늘이여 땅이여에서는 우리 민족신앙의 인정의 필요성과 여러 종교의 동등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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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책이 소설이라는 문학형태를 빌린 작가 개인의 견해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리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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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 책들은 아주 감동적이다. 믿는 자들도 그 찡한 감동에 속아 진리가 흔들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물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떠하랴? 참으로 아름답고 인간다우며 마음을 잡아끄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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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책들이다. 따라서 성도들이 이 책을 읽더라도 우리가 믿는 진리와는 전혀 다른 이론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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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주인공을 포함한)의 생각이 기독교인보다 훨씬 대범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가 조연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대부분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인간답고, 순수하고, 정신력이 높고, 진실하고, 바람직한 인격의 소유자들이다. 치셤 신부도 그렇고, 람세스도 그렇고, 사도광탄도 그렇다. 인간을 사랑하는 정신이 아주 드높은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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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포용력이 있고 타협의 여지를 가지는 데 반하여, 이들 소설에서의 기독교인들은 오만, 편협, 불타협, 자기주장이 강한 특성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의 인품은 너무나 고결하기 때문에 사실상 신의 관여가 필요치 않을 정도이다. 또 대부분 주인공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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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이 지향하는 세상은 결국 선하고 좋은 세상이라고 결론짓게 되는 것이다. 구태여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거의 신적인 능력과 선을 가진 위대한 존재로서 인간의 힘으로 이상향을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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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들은 굳이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내세우려 하지도 않고, 상대종교의 존재도 같이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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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종교는 기독교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포용력이 있다. 그들은 양보를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세계종교화, 종교통합화의 논리로서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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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양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양보하면 이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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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어쩔 수가 없다. 편협하게 보이든 포용력이 없어 보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리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생명이냐 멸망이냐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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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인간의 생각에 합당한 합리적 선이 목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이 목적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 다수 인간의 생각이 옳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분의 하나님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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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기독교에 반감을 나타내면서도 예수님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인정에는 비교적 후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부처와 같이 깨달은 자로 대우하고 여러 신들 중의 한 신으로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인의 태도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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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서는 위대한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지만 하나님으로서의 위격은 인정치 않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부처와 같은 인간의 반열로 낮추는 것이다. 기독교인에게는 참으로 위험 천만스러운 사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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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짚어 보아야 할 사항은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자연과의 친화력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치셤 신부는 중국의 농촌에 살며 그 환경에 동화된다(물론 사상에도 동의한다). 람세스는 사자, , 원숭이, 새들과도 의사소통을 한다. 사도광탄 역시 자연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이를 다른 말로 한다면 무생물에게까지 인격을 느낀다는 것이다. 무속신앙에 대한 옹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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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 세계종교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부정하자는 것일 뿐이다! 유일하시고 진리이신 하나님만 없으면 인간이 훨씬 행복하고, 자유롭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개념만 배제하면 인간이 원하는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온 인류가 화합할 수 있게 되고, 결국은 최고선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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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자연은 무한 할 것이고(자연은 창조된 것이 아니고 저절로 있는 것이니까 언제까지나 유지되리라 믿고들 있다) 이제 인간의 자유만 확보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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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이를 옳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인간이 중심이 되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共通善을 가지자는 것이 곧 인본주의요 세계종교화(에큐메니칼) 운동인 것이다. 세계사적인 흐름이다. 온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타협하여(부분적으로는 자기 종교를 양보하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똘똘 뭉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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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일에 유일하게 방해되는 것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눈에 쌍심지를 돋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오만하고 편협하며 공격적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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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옳게 여겨 가고 있는 길은 넓은 문이다(7:13-14).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비록 그 수가 적고 그 길이 협착하고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힘들더라도, 우리는 좁은 문을 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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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소설의 작가들도 상당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이다. 예리한 통찰력을 보이고 있다. 하물며 과학자, 철학자, 종교가(신부, 스님, 유학자 등등)의 정신력은 얼마나 높을 것인가? 그들의 이론은 논리정연하고 제시하는 증거도 타당해 보인다. 그들의 윤리성, 도덕성, 인류애, 애국심, 심지어는 동물애까지, 이 모든 것은 지극히 아름답고 옳아 보인다.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서삼경, 불경, 천부경, 철학서 등 그 현묘한 이치를 알기나 하겠는가? 참으로 높고도 위대한 사상들이다. 옳다! - 인간적 측면에서는 지극히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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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나는 단 한 가지의 질문에 집중하고 싶다. - “소설의 주인공들이나 역사상 유명 선각자들에게서 생명을 찾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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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부처든 공자든 소크라테스든 아니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든, 그 누구도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한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모두 창조 이후의 현상들을 붙잡고 애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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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믿겠으나 나는 오직 생명만을 믿으며 살고자 한다. 비록 그 길이 좁고 협착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