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 046] 사도들 생전에 이미 서신서들이 ‘성경’으로 대접받았다?
[의문 046] 사도들 생전에 이미 서신서들이 ‘성경’으로 대접받았다?
성경 형성사를 살피다보면, 일부 보수주의 학자들이 성경을 너무 신성시함으로써, 오히려 올바른 이해를 저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밀턴 피셔’라는 분은 ‘신약의 정경’이라는 글에서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5:18에 나타나는 바울의 어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신25:4)는 구약의 구절과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눅10:7)는 신약의 구절을 뒤섞어 “성경에 일렀으되”라는 형식적인 표현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그가 구약의 구절과 신약의 복음서에 속한 구절을 동등하게 귀한 것으로 여겼음을 의미한다.』(필립 W. 컴포트 편저, 성경의 기원, p.108).
요지는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할 때 (먼저 기록된) 누가복음을 인용했다. 이는 누가복음을 구약과 동일하게 인정했다는 뜻이다.’라는 것입니다!
대단한 확신이요 매끄러운 논리입니다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여기서 저자가 디모데전서와 누가복음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기록연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성서 각 성경들의 기록연대는 학자들마다 천차만별입니다. 같은 성경이라도 학자에 따라 수십 년씩의 시차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원 후 몇 년에 무슨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확정적 단정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기록연대에 관한 학자들의 상이한 견해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프랭크 바이올라’는 ‘알려지지 않은 신약성경 교회 이야기’에서 디모데전서는 63년에, 누가복음은 60-61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 했습니다.
또 톰슨성경 서두에는 디모데전서는 63년에, 누가복음은 58년에 기록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신뢰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관한 한, 마가복음 우선설과 마태복음 우선설이 대세인데, 누가복음이 마태복음(50-70년)과 마가복음(67-70년)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는 주장은 공감을 얻기 어려울 듯합니다(이 문단에서의 연대는 모두 톰슨성경에 기록된 숫자입니다).
반면 반기독교 인사인 ‘티모시 프리크’ 등은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서 바울서신은 50년대 경에, 누가복음은 70-11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봤습니다.
이처럼 신약성경 각 권의 기록연대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이른 시기를 선호하고 자유주의자들은 비교적 늦은 시기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디모데전서와 누가복음의 기록연대는, 위와 같은 한계 내지 제한을 고려하여, 각자가 나름대로 판단(위 학자들의 견해 중 선택)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디모데전서는 60년대 초경, 누가복음은 60년대 후반 내지 70년대에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택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눅1:2절의 분위기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직접 뵈었던 제자들’을 지칭합니다. 12 사도와 70 제자들 및 120 문도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 ‘사도 바울’은 포함되지 않을까요? 누가가 복음서 저술을 결심하고 여러 자료들을 살필 때, 바울의 서신들은 하나도 보지 않았을까요?
신약성서 형성사는, 비록 각 권마다 다소의 시차는 존재할지언정, 바울 서신서들이 비교적 먼저 기록되고 이후 복음서와 공동서신서가 기록되었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누가가 참조했을 법한 자료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정경의 범주에는 상당수의 바울 서신서들, 야고보서, 마가복음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존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로기아자료(Logienquelle=Q자료)도 가능할 것입니다. 아울러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일부 외경이나 단편 자료들도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가 복음을 기록할 당시 디모데전서도 참고했을 것인가 인데, 이 문제는 앞서 살핀 것처럼, 아무도 정답을 말해 줄 수 없다는 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론적인 추리를 시도해 보는 것이 더 나을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눅12절에는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전하여 준 내력’일까요?
일반적으로 누가는 베드로 및 바울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점을 고려한다면 누가의 이 표현은 ‘전하여 준 내력을 다 듣기 전’에 복음을 저술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력을 다 전하여 들은 후’에 쓰기 시작한 것 같다는 뉘앙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앞에서 말한 자료들도 참조했을 것이고, 베드로와 바울의 구두 전언도 고려했을 것입니다. 무슨 자료를 참조했든, 누구의 전달을 받았든, 누가는 전달자의 전달 내용을 “그대로” 저술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바울의 전언을 듣고 기록했을 것이다.’는 추론이 훨씬 논리적이고 합리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가가 바울의 기록(또는 전하여 준 내력)을 인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저자의 주장과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누가복음을 인용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견해는 타당성이 현격히 감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짚어볼 것이 있습니다. ‘일꾼의 삯’에 관한 언급인 눅10:7절과 마10:10절은 공히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일꾼의 삯’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만들어 내신 경구가 아니라, 당시 유대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속담 내지 격언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격언을 인용하셨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일꾼이 정당한 보수를 받는 것’은 하늘의 원리이기 이전에, 세상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던 그런 신비한 개념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육성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직접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회심 이후 베드로 등 사도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또는 삼층천 체험을 통해서, 뒤늦게 이 말씀을 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디모데전서에 기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후일 기록될 누가복음을 미리 내다보고 인용했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이 나중에 기록될 누가복음을 인용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견해는 공감하기 극히 어려운 주장입니다.
자신의 경건한 종교심에 볼모잡힘으로써 성경을 지나치게 신성시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자가당착에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하겠습니다.
♣ 이의 : 바울은 디모데전서 5:18절 말씀을 기록하면서 누가복음 10:7절을 인용하였는가? 아니면 위에서 살핀 대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가? 저자의 논리만으로 사도 생전에 신약이 이미 성경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