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배운 대로 하는 것일 뿐인데?
[단상] 배운 대로 하는 것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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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회자의 글을 한 편 읽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부교역자 등으로 사역할 때 살펴보니 성도들의 행동이 너무 수동적이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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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성도들도 자기 가정 일이나 사업을 할 때는 아주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 수동으로 교회생활하는 모습이 무척 서글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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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가정교회를 이끌게 되었는데 그제야 조금 나아져서 다행이라는 요지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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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댓글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옳은 말이고 바른 이해라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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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이해되며 모든 성도들이 적극적인 신앙생활 하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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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게 다일까? 더 다루어야 할 부분은 없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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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에 암송하게 되는 구구단은 모든 셈본의 기본입니다. 이거 잘 외워두어야 나중에 고급수학을 풀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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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직 구구단만으로 모든 고등수학을 풀겠다는 기대는 잘못입니다. 구구단도 필요하지만 더 많고 고차원의 공식들과 공리들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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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단처럼, 무슨 일이든지 가장 ‘기본’ 되는 원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흔히 ‘ABC’라든가 ‘101’이라 칭하는 것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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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하는 목적 또는 가치가 유사한 이들의 모임을 조직 또는 공동체라 합니다. 조직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수직조직과 수평조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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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양 조직 형태의 특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조직이론에 관한 학문적 견해가 아니라 순수 개인이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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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직조직은 최정점의 대표자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므로 각 소속원은 ‘충성심’을 요구받습니다. 설정된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개인적 생각과 가치에 앞서 공동선을 우선 추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것을 행동성향으로 표현하면 ‘수동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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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반해 수평조직은 협의체적 문화이기 때문에 충성심보다는 ‘협조심’을 더 중요시합니다. 스스로의 가치 추구를 선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행동은 자연스레 ‘능동성’을 띠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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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문화는 ‘수동성’, 수평문화는 ‘능동성’을 조직의 기본성향이라고 정리해도 그리 잘못되지 않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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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도 공동체이기 때문에 조직의 형태를 지닙니다. 따라서 위에서 이야기한 개인적 견해를 적용하려면, 교회가 수직조직인가 수평조직인가를 먼저 정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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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성도들은 교회를 ‘목사-장로-집사(권사)-일반성도의 위계체제’로 이해합니다. 전형적인 수직체계라는 이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충성”입니다. 설교와 교육과 모임 등에서 흔히 요구받는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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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으로까지 인식하는 설교는 물론이고, 심지어 목사의 사적인 발언에까지, 아무 이의 제기하지 말고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4:2)이라는 말씀이 완벽한 쐐기로 자주 인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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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에서 ‘충성’은 수직조직의 전형적인 특성이며 그것이 ‘수동성’으로 표현된다고 정리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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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 조직은 반드시 ‘수동성’을 지닐 수밖에 없어집니다. 오늘날 보게 되는 수많은 제도교회들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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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적 교회는 마치 몸처럼 전형적인 유기적 조직입니다. 수평문화의 능동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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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성도들이 간과하고 있는 성경용어 중에는 “서로, 피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수평문화 즉, 협조심과 능동성을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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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에게 “교회생활하면서 ‘충성’과 ‘서로’ 중에서 어느 말을 더 많이 들었는가?”를 묻는다면 답은 정해져 있을 것입니다. ‘충성’입니다.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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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새삼스럽게 성경에 사용된 ‘충성’의 원어적 의미(=신실함)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일반 인식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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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면 하라.’는 ‘수동성’ 사고입니다.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하여 자율적으로 시행하지 못하고 오직 상관의 명령과 지시가 있을 때라야 움직이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지요.
성도가 충성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이것은 기독신앙의 ABC요 101입니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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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실교회에서 ‘충성의 범위’를 설정할 때 발생합니다. 즉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대해서도 충성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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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언필칭 교회 지도자로 대접받고 있는 목사들(담임목사들)에게도 절대 충성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이르면 자못 심각해지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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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충성은 하나님 한 분을 지향하라는 절대명령이지, 교회 내 성도간의 행동지침을 규정하는 절대명령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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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 성도들 간의 원칙은 오직 하나 ‘서로 또는 피차’입니다. ‘충성’이 아닙니다. 위에서 살핀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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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한 지역교회에서 목사는 ‘충성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야 할 동반자’입니다. 이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고 그 책임은 목사들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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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교육 잘된 교회라면 그곳엔 스스로 하겠다는 능동성이 출렁일 것입니다. 시키면 하겠다는 수동성은 눈 닦고 찾아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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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에서 성도들은 ‘배운 대로’ 하고 있습니다. 특정 직분자에게 복종하고 충성하라 배웠기 때문에 그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응당 수동적일 수밖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정도는 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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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언급했던 글은 이러한 실상을 올바르게 파헤쳐서 바로잡으려는 의도라기보다, 잘못 교육받아 잘못 행동할 수밖에 없는 성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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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도자들은, 현재의 잘못된 현상을 한탄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제대로 교육시킴으로써 교회를 성경적으로 회복시키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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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큰 지도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