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여성목사 안수 - 현대 신학의 틀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단상] 여성목사 안수 - 현대 신학의 틀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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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내에서 ‘여성목사 안수’ 문제에 관한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것 같습니다. 양측 모두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며 확신에 찬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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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주장들을 읽으면서 곧바로 떠오르는 상념은 ‘신학 내지 교리 차원에서 검토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배워온 교단의 신학적 틀에 너무 얽매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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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학과 교리의 틀(관점) 안에서 ‘여성목사 안수’ 문제를 풀려 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 수준 이상의 토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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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하든 반대하든, 진행되는 과정과 내용은 유사합니다.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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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자신의 논리에 유리하겠다 싶은 성경 한 두 구절을 선택하고,
② 이것을 교단의 신학적 틀에 맞추어 해석하고,
③ 최대한 강한 어조로 주장한다.
④ 이때 상대의 견해는 가급적 무시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내 말만 하면 충분하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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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해, 평행선을 달릴 뿐,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무척 낮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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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독신앙의 제반 문제들이 무조건적인 합의에 가치를 두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신앙은 성경에 근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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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목사 안수 불가’ 주장도, 성경 검토로부터 출발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는 신학적 관점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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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냐 하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신학 前提로부터의 출발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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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장자권과 지도권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겠지만, 아무리 간략히 처리하더라도 2가지에 대한 정의는 반드시 규정하고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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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목사’ 직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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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목사”가 “목자”의 오역이라든가 각 교단의 ‘목사 직능들’이 전부 성경의 ‘장로와 감독과 집사의 자질’을 차용하여 꾸며진 것이라는 점은 지적하지 않겠습니다(성경에는 목사 자체의 자질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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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늘의 신학이 규정하는 ‘성직자, 교사, 지도자, 관리자, 행정가’ 등의 개념을 재론하자는 뜻도 아닙니다. 이런 용어를 붙잡고 씨름해 봐야 결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쳇바퀴 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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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상당수의 기독교 신자들은 목사에 대해 영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리 목사에 대해 담대한 사람도 대놓고 시비 걸기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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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도 목사에게는 섣불리 평말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부모도 목사 아들에게 함부로 하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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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목사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라고 변명하지만 속내는 ‘영적 두려움’일 뿐입니다.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 앞에서 주눅 드는 것과 흡사한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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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목사를 ‘성직자’로 인식하지만 실제는 ‘영매’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두려운 존재로서 감히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준 신적 존재’가 목사 인식의 대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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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은 극히 잘못된(=비성경적) 것으로서 구구히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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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대 신학이 말하는 목사란 ‘성경에 근거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영매처럼 인식되고 있는 인간사유활동(종교라 이름하는)의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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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안수’의 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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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자들은 안수를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행하시는 신적 행위’로 간주합니다(기득권자들이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래서 안수 받으면 신적인 영력이 전이된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안수란 그냥 ‘손을 얻어 확인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의 구절들이 증명하고 있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어의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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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신학교)이 안수 행위를 할 때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목사 안수의 유일한 요건은 ‘과정을 이수하여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였는가?’라는 것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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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요건은 요구되지 않습니다. ‘인격을 구비했는가? 영성이 탁월한가? 성경지식이 우수한가? 지혜로운가? 지도력이 남보다 나은가?’ 등은 요건에 끼이지 못합니다. 특히 ‘성숙된 자인가?’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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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안수란 교단(신학교)이 자의적으로 행하는 단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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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목사와 마찬가지로 안수도 ‘성경과 달리 마치 무슨 영험한 신적 행위인 것처럼 변질시킨 인간사유활동(종교라 이름하는)의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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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목사’와 ‘안수’라는 종교용어의 미비점을 인식하였다면 이제 우리는 일반 사회의 현실과 비교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교육을 통해 어떤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는 절차를 ‘라이센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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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법학을 공부하고 사법고시(지금은 로스쿨)에 합격하고 연수교육을 이수하면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 자격이 부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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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이 되기 위해서는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고시에 합격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이수하면 전문의 자격이 부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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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도 마찬가지로 전공과목 공부 후 논문 통과 및 학위를 취득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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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되려 한다면 위와 전혀 동일한 과정을 밟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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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교회 전도사나 강도사 등의 수습과정을 거치고 목사고시에 합격하고 마지막으로 교단의 목사안수를 받고 나면 명실상부한 “목사”가 되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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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매처럼 대단한 영적 권력을 휘두르는 목사도 세상의 다른 전문인들 즉,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회계사, 간호사 등과 동일한 ‘자격’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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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주변의 목사들에게는 오직 자격만 요구되어 질 뿐, 영성의 성숙은 눈곱만큼도 요구받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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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날 ‘목사 직분 논쟁의 쟁점은 영매냐 라이센스냐?’의 문제임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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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현대의 목사는 성경의 근거가 취약한 직분이며 오해하듯 ‘영매’일 수는 없다.
② 현실적으로 볼 때 목사 안수 제도는 일종의 ‘라이센스’와 비슷하다.
③ ‘라이센스’라면 ‘소정의 과정을 이수한 자에게 교단 임의로 안수함으로써 목사 직분을 부여할 수 있다.’(위의 논리 선상에서)로 정리된다.
④ 이 경우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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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살핀 대로라면 목사 안수 대상에는 인종차별도 연령차별도 국적차별도 그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응당 성차별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든 다 안수의 대상입니다. 유일한 조건은 ‘자격 획득 여부’ 단 한가지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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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성목사 안수 불가 주장에 대해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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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목사 안수 불가 주장에 대한 성경의 근거는 매우 불명확합니다. 일부 구절들을 자의적으로 또는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들의 신학에 끼워 맞춘 것을 가지고 여성에게 안수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온전한 해석이라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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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행 제도 하에서는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자격을 구비한 자에게 성별에 관계없이 안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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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목사 안수 불가’ 주장은 성경과 세상 어디에서도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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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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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목사와 안수 개념’이라면, 여성에게 목사안수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성경과 세상 양측으로부터 타당성을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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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틀에서 탈피할 때, ‘여성목사 안수 가능’ 논리는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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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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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정리했으나 미진한 듯하여 기독교 신학의 개혁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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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합니다. 목사는 영매도 아니고 라이센스도 아닙니다. 오직 ‘성숙한 자’일 뿐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여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자에게 함께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이를 인정하여 안수하면 그로써 충분한 그런 직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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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의 정의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무리)가 함께 생활함으로써 눈과 마음으로 검증한 성숙된 자에게 ‘당신은 교회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온 지체들이 오랜 동안 살펴 온 성도이기에 더 이상의 요건이 필요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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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를 바꿔야 합니다. 무슨 ‘담임목사’가 필요합니까? 한 지역교회의 목사(엄밀히 말하면 장로)는 복수입니다. 여러 명의 장로들이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면 됩니다. 이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장로들이 돌아가며 설교하고 치리하고 합력하여 교회를 이끌어 가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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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학위(자격) 장사’로 존속된다면 교회의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원래 신학교는 불필요하지만 지역교회에서 목사로 위임받은 자들에게 보습교육을 실행하는 기관으로서의 신학교는 필요할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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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개념을 되짚어야 합니다. ‘성도’에 해당되는 헬라어 ‘하기오스’(형용사)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교회, 성도 모두에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남성 복수’로 문법분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법분해를 중시(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는 의미)한다면 교회에는 오직 남성들만 소속될 수 있고 여성들은 믿음을 가질 수도 없다고 해석할 여지가 생깁니다. 성경 전체의 뜻과 전혀 달라집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성도’는 남성 뿐 아니라 여성도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구성원 자격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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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교회의 정회원이라면, 지도자로 위임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순리이며 지극히 성경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