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성도의 정치색 - 뉴라이트인가 올드레프트인가?
[단상] 성도의 정치색 - 뉴라이트인가 올드레프트인가?
♣ 눅22: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자살) 1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기리는 이들의 사연이 자못 가슴을 뭉클케 합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합니다.
특히 개그맨 김제동 씨의 사연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합니다. 장례식 노제 사회 본 죄(?)로 방송에서 강퇴 당한 것만으로도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1주기 추도식 사회까지 봄으로써 방송복귀는 아예 물 건너 간 것 아닌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김 씨를 비롯한 친노(親盧) 진영의 주장에 공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명백한 반노(反盧) 성향입니다. 일부 장점에도 불구하고, 참기 힘들 정도의 경박함도 싫지만, 눈만 뜨면 서로 대립케 만들던 언행도 아주 싫어 합니다. 나아가 그의 국가관 및 역사관과 지도력에는 결코 공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친노든 반노든, 각자마다 노 대통령을 보는 관점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일 뿐입니다. 이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 성질이 전혀 못됩니다. 단순히 어떤 인물에 대한 개인적 평가에 따른 선택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친노와 반노의 정오(正誤)를 가르려는 이가 있다면 그를 성숙한 지성의 소유자라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씨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아주 잘못된 일이고, 우리 사회가 이처럼 미성숙한 면도 있는가 싶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하루빨리 그가 방송에 복귀하도록 용납하는 슬기를 발휘해야 하리라 봅니다.
매우 미묘한 주제를 이야기한 것은, 이 묘한 주제가 하나님을 믿은 성도들 간에서조차 세상과 동일하게 편당을 만드는 것 같기에, 한번 생각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사실 인터넷을 서핑해 보면 친노 편향적 주장을 펴는 기독교 사이트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주장은 아주 확고합니다. 일반 인터넷의 노사모와 거의 유사한 수준입니다.
위에서 얼핏 말했듯이 까짓 일반 세상에서 친노 주장을 하거나 반노 주장을 하는 것은 누가 뭐라겠습니까! 순전히 개인의 일입니다. 나무랄 일이 전혀 아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나누겠다는 기독 사이트에서 세상 임금(대통령) 한 사람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가지고 얼굴 붉히며 다투는 것은 참으로 허황된 일입니다.
어느 사이트에 친노 글이 있기에 ‘이곳에 맞는 주제가 아니’라는 의미로 발언했다가 강한 반발과 함께 수구꼴통 ‘알바’로 낙인 찍혔던 적이 있습니다.
이 일을 당하면서 곧바로 떠오른 구절이 오늘 본문입니다. 성도가 그깟 임금 한 사람에 대한 평가 때문에 나뉘어서야 되겠느냐는 취지에서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매튜 헨리 주석을 참조하여, 아주 간략히 본문의 의미를 짚어 봅니다.
먼저, 세상 임금들과 백성들이 하는 일입니다(25절).
ㅇ 임금은 ‘주관’합니다. ‘퀴리유오’는 ‘주인이 되다. 다스리다.’는 뜻이라 합니다. 주석은 이렇게 부연 설명합니다.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의 통치 형태는 그들의 야망에 의해서 그 특징이 결정되는데, 이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왕들이 자기 권력을 잘못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ㅇ 임금은 또 ‘집권’합니다. ‘엑수시아조’는 ‘권리나 권세를 가지거나 행사하다.’는 뜻이라 합니다.
ㅇ 백성들은 ‘은인’이라 불러야 합니다. ‘유에르게테스’는 ‘선행자, 은인, 후원자’의 뜻이라 합니다. 주석은 이렇게 부연 설명합니다. 「이 구절의 특징은 그 칭호를 거부한다는 데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지배자들처럼 은인이라 칭함을 받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섬기는 자라 칭함을 받는다. 기독교인들은 유에르게테스라고 칭함 받기를 거절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모든 복의 근원이 되시는 참된 은인이요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사실상 인간적인 욕망의 충족을 암시하는 유에르케시아라는 표제 하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표제 하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음, 주님의 제자들 즉 성도들이 하는 일입니다(26절).
ㅇ 26절은 해석하고 말고 할 것 없을 듯합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라는 주님의 말씀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앞 25절과 정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ㅇ 임금은 주관하거나 집권하지 않으며 되고, 백성은 임금을 은인이라 부르지만 않으면 됩니다. 정말 간단한 원리입니다.
ㅇ 잘 보면 아주 묘한 말씀입니다. “큰 자와 두목”은 임금을 상징하고 “작은 자와 섬기는 자”는 백성을 상징합니다. 세상에서의 임금과 백성의 책무가 정확히 정 반대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25절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렇게 됩니다. ‘임금은 백성을 주관하거나 집권하지 말고 백성은 임금을 은인이라 칭하지 말라.’
* 이 해석을 잘못 적용하면 곤란합니다. 즉 주님을 임금으로 모시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제자들 상호간의 원리입니다. 교회 내 지도자가 세상 임금처럼 주관하거나 집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뿐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 25절과 26절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세상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오늘날 목사로 오해되는)와 추종자(오늘날 평신도로 오해되는)의 관계는 세상과 전혀 상이하며 거의 정반대의 개념이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세상 임금에 관한 평가 하나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는 게 올바른 처신일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계의 커다란 병폐 중의 하나는 성도들의 현실정치에 대한 태도입니다. 세상의 정치를 성경원리로 재단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자칭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보수성향의 사람들을 가리켜 뉴라이트New Right)라고 합니다. 얼굴 벌겋게 붉히며 당당히 외쳐대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칭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진보성향을 지닌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비록 정치단체를 결성하지는 않았으나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같습니다. 침 튀기며 자신있게 주장하는 이들을 올드레프트(Old Left)라 하는 게 마땅할 듯싶습니다.
뉴라이트(극우?)가 되었든 올드레프트(극좌?)가 되었든, 보수와 진보(이것이 친노와 반노로 표출되기도 하지요)로 대립하는 것은 우매한 짓입니다.
물론 아무리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성도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입니다. 따라서 현실정치와 무작정 담쌓고 살 수는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에 따라 특정 정치인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세상일(현실정치)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내의 가치까지를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지배해서는 아니 됩니다.
전혀 얼굴 붉힐 가치도 없는 세상 원리를 교회에까지 끌어들여, 뉴라이트니 올드레프트니, 보수니 진보니, 친노니 반노니 하며 싸울 일이 아닙니다.
허접한 세상가치 때문에 성도 간의 마음을 상케 하는 논쟁 따위는 발도 못 붙이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