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여정/묵상

[묵상] 비판(5), 성경에는 비판이 없다?(Ⅱ)

맑은바람청풍 2016. 8. 7. 11:01


[묵상] 비판(5), 성경에는 비판이 없다?()

 

 

7:1-3(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성경이 무조건 비판을 금지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자칭 은혜주의자들의 착각처럼 비판을 경원시하는 것은 성경을 가려서 읽기 때문에 초래된 현상입니다. 즉 좋아하는 구절들만 편식하여 논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체적인 균형감을 지니고 해석해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취우치지 말라.”(5:22)는 말씀의 깊은 뜻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불가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금하라.’는 의미가 강한 구절들만 인용하면 안 됩니다. 다른 곳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오늘은 비판불가론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즐겨 인용하는 본문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반드시 비판을 금지하는 그런 내용이라 고집할 수 없습니다.

 

먼저 비판”(크리노 krino)의 문자적 의미부터 살펴야 할 것입니다.

 

고전 헬라어는 크리노분리/분할/구별/절단/선택/평가/결정/결심/판단/고소하다.’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칠십인역은 아래 3가지의 히브리어를 크리노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샤파트 : 재판하다. 다스리다.

: 판단/심판/처벌/논쟁/변호하다.

: 다투다. 소송을 제기하다.

 

신약성경은 크리노114회 사용하고 있는데 판단/고소/결심/결정/평가/간주하다.’의 뜻이라 합니다.

 

한편, “비판과 유사한 단어들도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방”(4:11)(카탈랄레오 katalaleo)험담하다. 욕하다. 중상하다.’의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 5회 사용되고 있다 합니다. ‘거슬러 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책망”(11:20)(오네이디조 onedizp)꾸짖다. 욕하다. 비난하다.’의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 9회 사용되고 있다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예수님을 비난할 때(29:44) 사용한 단어가 이것이라 합니다.

 

나아가 국어사전의 의미도 살펴야 할 것입니다.

 

비판(批判 criticism)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거나 밝힘으로 설명합니다. 두산백과사전은, 비판은 철학적 용어로, 비평은 문학/예술적 용어로, 구분하여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방은 남을 비웃고 헐뜯어서 말함.’으로 설명합니다.

 

책망은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며 못마땅하게 여김.’으로 설명합니다.


 

재미없이 문자적 의미를 살펴본 이유는, 평소 사용하는 비판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재검토해 보자는 뜻에서였습니다.

 

한글개역이 크리노라는 헬라어를 비판으로 번역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잘못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번역도 아닙니다.

 

위에서 살핀대로 크리노는 비방(카탈랄레오)과 책망(오네이디조)의 중첩 의미도 지닙니다. 당연히 판단/결정/평가/비난/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무심코 비판이라는 단어를 택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산백과사전이 설명하듯, 비판(criticism)은 문학/예술적 의미도 있습니다. 이때는 비평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적합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헬라어 크리노를 지나치게 철학적 의미를 강조하여 비판으로 번역함으로써, 본의를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길게 부연할 필요없이, 영어성경을 참조하면 금방 이해됩니다. 거의 모든 영역본들은 크리노 ‘judg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비판하다.’는 의미도 지니지만, ‘재판/심판하다.’는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

 

어찌보면 ‘judge’의 가장 성경적 용어는 정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비판정죄로 번역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랬다면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비판”(criticism)과 혼동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정죄는 하나님의 고유권한으로서 인간에게 결코 위임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정죄하지 말라.”로 번역되었어야 성경 전체의 의미에 부합된다 할 것입니다.

 

비판하지 말라.”니까 무조건 비판하면 안 된다.’는 짧은 생각에, 반드시 지적하여 고쳐야 할 잘못까지 건드릴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크리노라는 단어 하나를 건성으로 번역함으로써, 우리 신앙이 감수하고 있는 손실이 너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을듯합니다.

 

 

우스개소리 하나 하고 마칩니다.

 

어느 극단적 보수성향의 단체는 선배란 부모님과 동격이며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다!”라는 관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 단체는 일사분란한 상명하복을 특징으로 합니다.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인 것으로 압니다.

 

이 관용어가 좋아 보인다 해서, 교회의 목사 직분자에게 적용한다면 이는 망발입니다(‘선배대신 목사를 대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신앙손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이단으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이 적용되지 않는 조직은 없습니다. 교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교회 권력이 목사에게 집중되면 절대적으로 부패합니다.

 

성경을 꼼꼼히 읽으면, 결코 비판절대금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구절만으로 호도된 오해를 진리인양 착각함으로써 참 진리에서 멀어진다면 이보다 슬픈 일은 없습니다.

 

성경은, 교회와 목사에게 잘못이 있을 때, 거리낌 없이 지적하여 고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른 이해로써 헷갈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