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바사 왕 고레스의 귀환명령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단상] 바사 왕 고레스의 귀환명령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 스1:1-2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많은 역사학자들은 성경의 이 기록에 강한 의문을 품어 왔다고 합니다. 세계사는 페르샤 왕 키루스(Cyrus)의 이 기록 시기를 BC 539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의 반기성 전문위원은 ‘전쟁과 기상’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별도로 살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논리적이기 때문에, 그의 강연 내용을 최대한 요약하여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극히 일부는 생략하고 또 부분적인 표현을 바꾸기도 했으나 핵심의 변화는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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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철옹성 바빌론을 함락시킨 가뭄
성경 에스라서 1장에는 키루스 대왕에 의한 유대민족의 귀환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 기록에 대해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그러나 바빌론 성 발굴작업을 통해 이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학자들의 의문은 풀리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자 H. 라삼은 바빌론 성 발굴작업을 진행하던 중, 원통형 비문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키루스 왕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고, 유대인들의 귀환명령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빌론 정복과 업적 등도 기록됨으로써, 성경 기사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키루스 왕은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왕입니다. 그는 BC 541년 강대국 바빌로니아 공격을 결심합니다.
당시 바빌론 왕 벨사살은 성경에 나오는 대로 ‘먹고 마시고 놀기 좋아’ 했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만하기도 했던 베사살 왕은 “아무리 페르시아가 강하다 해도 바빌론을 함락시킬 수 없다.”며 자만했습니다. 그가 자신했던 이유는, 첫째 수심이 깊고 폭이 넓은 유프라테스 강에 둘러싸여 천연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고, 둘째 고대의 대표적 성으로 인정될 만큼 견고한 성벽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키루스 왕이 바빌론 성을 공격하였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철옹성을 어떻게 함락시킬까 고민하던 키루스 왕은 바빌론의 날씨에 유념했습니다. 바빌론은 5-10월이 건기로서 특히 7-9월에는 기온이 50℃를 넘는다는 것에 착안하였습니다.
“물이 없으면 결코 저항할 수 없을 것”임을 확신한 키루스 왕은 바빌론으로 들어가는 물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바빌론 성은 유프라테스 강에 수문을 설치하여 식수를 공급받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사실을 간파한 키루스 왕은 바빌론 성 고사작전에 돌입하였습니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벨사살 왕이 대연회를 베푸는 사이, 유프라테스 강은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성벽 밖에 건축된 대참호 속으로 돌려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강의 물줄기를 돌려서 식수공급을 봉쇄하자, 바빌론 성은 기근과 기갈이 덮쳤고, 항복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키루스 왕은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BC 539년 10월 29일 바빌론 성에 입성하였습니다.
후일 알렉산더 대왕도 키루스 왕의 무덤만큼은 잘 보존했을 정도로 존경했다고 하며, 지금도 이란인들은 ‘자랑스런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한다고 합니다.
키루스 왕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정복한 나라의 민심을 읽고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는 리더십을 갖춘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바빌론 정복 후에도 그는 바빌로니아 국민들이 원했던 마르둑 신에게 경외심을 표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바빌론 민족을 가장 협조적인 민족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한편 키루스 왕은 문화를 존중하고 인재를 수용했습니다. 리디아 전쟁에서 생포한 코로이소스 왕을 가장 충성스러운 국정의 조언자로 활용하였고, 민족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메대인들은 키루스를 정복자가 아닌 자기 민족이라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키루스의 이러한 포용력이,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준 원동력이었을 것입니다.
역사학자 레리 헤드릭은 키루스 왕을 이렇게 평합니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력,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인간미, 포로들을 존경으로 대우하는 포용력,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았던 냉정함. 현대를 살아가는 리더들은 키루스 대왕의 이런 모습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