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바람소리
[목자상](07) 소명(사명/부르심) 신학의 오해(1) 본문
[목자상](07) 소명(사명/부르심) 신학의 오해(1)
성경의 ‘목자’가 현대교회의 [목사]로 탈바꿈되도록 작용한 용어가 곧 「소명(召命, Calling)」이라는 단어입니다.
욕심 충만한 일부 [목사]들이 ‘소명 = [목사]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신령한 용어’인양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나 깨어있는 성도들은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데 일부 몰지각한 [목사]들이 엉뚱하게 비틀어버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2회에 걸쳐, ‘소명’에 관한 문자적 의미와 종교개혁자들 및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본 다음에, 개인적인 이해를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 ‘소명’의 문자적 의미
각 언어별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 히브리어는 ‘카라/콰라’(qura)(사42:6 등)라 합니다. 부르다(창19:5), 칭하다(이름하다)(창1:5) 등의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목청껏 부르짖는 것입니다.
○ 헬라어는 명사 ‘클레시스’(klesis), 동사 칼레오(kaleo), 형용사 클레토스(kletos)가 있는데, 의미는 히브리어와 동일합니다.
○ 영어는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먼저는 잘 알려진 call/calling입니다. 히브리어 및 헬라어 의미와 동일합니다. 다음은 ‘직업’(profession, occupation)과 동등한 의미로 사용되는 ‘사명’ (voc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 ‘클레시스’를 어근으로 하는 라틴어 ‘보카시오’(vocatio=부름을 받다)에서 파생된 말이라 합니다. 따라서 vocation은 ‘봉사를 위한 부르심’의 뜻을 지니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 종합하면, 히브리어 ‘카라’, 헬라어 ‘클레시스’, 영어 ‘call/vocation’은 ‘부르다/칭하다/청하다’의 뜻으로서, ①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의 길로 부르시고, ②특별한 사명을 위해 불러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보다 상세한 내용은 직접 신학사전 등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그런데 ‘소명’에 대한 한글사전 및 Webster사전의 정의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듯싶습니다.
- 한글 사전은 “(기독교)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 Webster 사전은 “a strong inner impulse toward a particular course of action especially when accompanied by conviction of divine influence.”이라고 규정합니다.
- 여기서 한글 사전은 ‘현대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즉, 힘을 지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자의적 견해가 반영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웹스터 사전도 그럴 가능성이 느껴집니다마는 한글 사전보다는 조금 나은 듯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봤지만 정확한 이해에 이르기보다 약간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고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가인 루터와 칼빈의 견해를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들은 매우 정확하게 ‘소명’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Luther)와 존 칼뱅(JohnCalvin)은 당시의 금욕적인 이상과 세속적인 직업에 대한 비판에 반대하며, 세속적인 직업들도 영적인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틴 루터는 소명은 생산적인 어떤 일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함으로써 신을 기쁘게 하고 인류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소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발을 만들어 인간의 발을 따뜻하게 감싸 주는 구두 수선공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만큼이나 자신의 위치에서 신의 영광을 드높인다는 것이다. 소명이 성직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수행하는 모든 일이 신의 눈에 똑같은 가치를 지니며 신성한 소명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한마디로 루터는 ‘세속적 직업에 반영된 소명’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전문 사역자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 ‘소명’에 관한 전문가들의 견해
경건서적에서 읽었던 몇몇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종교개혁가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좋은 이해라 할 것입니다(전반적인 영성에 이견이 있는 이들의 주장도 포함되기는 하였으나 그 내용에만 주목하기를 권면 드립니다).
○ 강준민 [목사]의 말입니다. : “calling이 아니다. 부름받은 자의 자격/능력/가치의 인식개념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오히려 자격있는 자는 부르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포하신다. 지혜없는 자라야 부름받을 수 있다. vocation이어야 한다. vocation은 voice(음성)에서 나온 말이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 내면에 주신 음성을 듣는 것이다.”(무대 뒤에 선 영웅들. p.196).
○ 파커 파머의 말입니다. :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선물이다.”(무대 뒤에 선 영웅들. p.198에서 간접 인용).
○ 폴 스티븐스의 말입니다. : “소명이나 부르심이란 개념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발견한 신분에 걸맞게 어떤 것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소명은 부르심의 목적, 곧 ‘한 소망’이다.(엡4:4)”(참으로 해방된 평신도. p.39).
○ 오스 기니는 ‘소명’이라는 단행본에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그는 소명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결정적으로 부르셨기에, 그분의 소환과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의 모든 존재,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모든 소유가 헌신적이고 역동적으로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다.”(p.21).
○ 그레그 옥덴 [목사]는 ‘새로운 교회개혁 이야기’라는 책의 제10장 ‘새로운 소명의 시대’에서 역시 ‘소명’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성직임명(ordination=안수) 개념을 반대하면서(p.248), 소명은 소수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책임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는 모든 성도의 특권이요 책임이다.”(p.278).
▣ 현대의 ‘소명’에 대한 적용의 실패
앞서 살핀 몇 분의 이해는 상당히 정확합니다. 소명을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개념으로 잘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소명신학은, 소명을 [목사]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용어로 고착시키고, 일반성도로 칭해지는 각각의 성도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이러한 오류가 득세하게 된 원인은 소명의 참 뜻을 오해한 대다수 [목사]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목사]들에게는 자신들의 특별한 부르심을 내세움으로써 영적권위를 보증 받고 싶은 유혹이 있는데, 이에 넘어간 결과가 바로 소명신학의 왜곡인 것입니다.
거의 모든 [목사]들은 이런 주장을 합니다. “내가 [목사]된 것은 결코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감동으로, 꿈으로, 환상으로, 나를 부르셨다. 분명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체험의 산물이기에 내가 [목사]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나의 사명이다!”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당사자의 주장이 너무나 강력하고, 또 이를 부정할 뚜렷한 방법이 없기에, 듣는 자들은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용기 내어 “정말이냐?”고 물어봐야 “틀림없는 정말이다!”라는 데야 더 이상 할 말도 없습니다.
사실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이들의 주장에 일말의 타당성이 인정되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전하신 뜻에 따라, 환상이나 음성이나 다른 여러 방법으로, 특정인을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은 다분히 개인적이며 따라서 하나님과 당사자 외에는 알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달리 말하면 ‘개인적인 부르심은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쉽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제삼자는 수용(인정)하거나 거부(불인정)하거나의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소명론자는 항상 목소리가 크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소명을 의아스럽게 여기는 측의 이의는 미약할 뿐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소명신학의 왜곡이 시작됩니다. 즉, ‘소명’이라는 단어를 오직 [목사]에게만 개인적․배타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신앙의 여정 >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자상](09) 권위와 권세의 의미 (0) | 2019.05.19 |
---|---|
[목자상](08) 소명(사명/부르심) 신학의 오해(2) (0) | 2019.04.21 |
[목자상](06) [목사] 직분의 개관(Ⅲ) (0) | 2019.02.11 |
[목자상](05) [목사] 직분의 개관(Ⅱ) (0) | 2019.01.14 |
[목자상](04) [목사] 직분의 개관(Ⅰ) (0) | 2018.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