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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성도의 주초(酒草)문제(1) 본문
[단상] 성도의 주초(酒草)문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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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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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 주초는 굳이 다룰 필요가 없는 비본질적이고 개인적인 보건 및 윤리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는 그 적용상 모호성으로 인해 상당한 혼선을 초래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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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거의 모든 기독 사이트에서 한두 건씩의 질의답변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약 90%는 불가론으로, 약 10% 미만은 가능론으로 결론내리는 것 같습니다. 양측 모두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나름대로 설명들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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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초불가론에 의한 ‘주초금지’ 결론은 바람직하다 하겠으나(사회적 및 의학적 이유), 결론 도출과정의 정확성(성경과의 일치성) 측면에서는 부족(부정확)한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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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초문제는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부터 금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왔고 지금도 성도의 상징 내지 덕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상당수의 성도들은 성경이 주초를 엄격히 금지하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교육의 결과임), 행여 주초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성도들은 심리적(신앙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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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초는 건강상 유해성(환각/중독/질병유발 등)과 본능적 욕망(쾌락)의 자제 및 타인의 피해를 고려할 때, 금주금연은 정당성을 지니게 됩니다. 즉, 의학적 및 사회적 측면에서의 유해성과 불필요성은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미 증명된 의학적/사회적 판정인 ‘유해성’은 그대로 수용해야만 합니다. 당연히 금주금연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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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주초가 신앙의 걸림으로 작용하는 점에서 야기되는데, 신앙에 미치는 영향과 연계하여 성경을 살펴가면서 주초문제를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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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과연 주초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성도의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의 중요성을 지니는가? 흔히 말하듯 무조건 금해야만 하는가?’ 등에 대하여, 조금은 껄끄럽지만 열린 마음으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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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담배는 1492년경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에 전래된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될 수 없었습니다(따라서 이후부터 담배를 따로 구분하여 살피지 않고 그냥 술과 묶어서 ‘주초’ 또는 ‘술’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겠습니다). 반면 술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부정적인 표현도 상당수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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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성경의 일부 부정적 표현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주초에 대한 정죄의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점에서 이 단상은 의미를 지닌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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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성경의 ‘술’ 관련 구절은 총 260개가 검색됩니다. 이 부분은 [단상] 성도의 주초(酒草)문제(6)의 <별지 1>을 참조바랍니다. 조금 부연하면 성경에서 지적하고 있는 술에 대한 경계는 ‘단순음주’를 의미한다기보다, ‘의지를 상실할 정도의 만취상태’(drunkard, winebibber)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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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은 술에 대한 부정적 기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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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성도들은 주초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핵심은 무조건적인 금주금연이 성경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주초를 하면 믿음이 연약한 것이고 신실치 못한 현상이라고 여깁니다. 심하면 죄와 연계시키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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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 이르게 된 이유는, 성경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막연한 기대감으로 교육시킨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지도자들의 개인적 확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일부 편향 내지 왜곡된 부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부정확한 이해입니다.
아무튼, 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형성의 단초를 제공했던 사건 내지 구절 3곳만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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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노아의 실수입니다.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을 자다가 자식들에게 발각되어 애꿎은 손자 가나안이 저주를 받습니다. 신학적으로 이러 저러하게 설명은 되겠지만, 그냥 인간적으로 보면 잘못은 노아 자신이 해 놓고 벌은 엉뚱하게 손자가 받는 꼴입니다. 그리고 그 벌의 내용이 매우 큽니다. 영원히 형제들의 종이 되는 것은 엄청난 벌입니다. 술이 죄요 노아의 실수일진데 가나안이 받은 벌칙은 상당히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신학적 해석이 아닙니다). 어쨌든 술로 인해 발생된 사건이므로 술은 부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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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의 경우도 황당합니다. 술을 매개로 하여 딸들과의 근친상간을 하게 됩니다.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고요, 또 그 자손들에게까지 극히 참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후일 모압 및 암몬 족속은 멸족됩니다). 선조(롯과 그의 딸들)의 잘못 때문에 후손이 손해 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어쨌든 여기서도 술은 부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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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잠23:31)라는 말씀은 술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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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의 사례들은 일반론적인 명령의 근거로 작용한다기보다 그 상황의 고유한 교훈 제시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술이라는 음식이 워낙 특이하다보니 실수의 가능성이 높아 많이 경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이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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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은 술에 관해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 예수님도 술을 즐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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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구약도 온통 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잠31:6, 전9:7, 전10:19절 등은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개인적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술의 긍정적 사례는 신약 특히 예수님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물론 신약에도 부정적 이미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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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약성경을 살필 때, 아무래도 예수님의 행적에 유념하는 것은 아주 타당합니다.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관념처럼 술이 정말 부정적인 음식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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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를 면밀히 살펴보면 술과 관련된 예수님의 행적을 제법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우리의 일반적 생각과 달리, 극히 긍정적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예수님은 술을 저주의 음식이라 하신 적이 없으시고 오히려 즐기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상한 것 같지만 사실입니다. 술과 관련된 예수님의 행적은 따로 정리한 <별지>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여기서는 2 가지 사건만 조금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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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최초의 이적인 가나 혼인잔치(요2:1-10)입니다. 예수님은 최초 이적을 왜 술과 관련된 것으로 행하셨을까요? 영적으로는 ‘지상사역의 개시와 변화(회개)’의 교훈을 주신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 단상은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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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의 숫자와 미리 준비된 포도주의 양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축하객수는 기백명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고 또 술은 그만한 사람들이 충분히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술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추가로 더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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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추가로 만드신 포도주의 양은 항아리 6개 분량입니다. 한 개의 용량이 두세 말(헬라어 메트레테스를 번역한 것으로서 약 39ℓ임)이므로 총량은 약 600리터(헬라어 및 영어 단어를 엄격히 적용하면 480 내지 720리터로 환산됨) 정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드럼통 3개에 이르는 엄청난 양입니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이만큼의 포도주를 더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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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예수님은 단지 술을 만드시기만 하고 드시지는 않으셨을까요? 본문에 상세히 기록되지 않기에 확신할 수는 없으나, 다른 곳에서의 행적을 고려할 때, 예수님도 이곳에서 술을 드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 자, 이제 ‘음주는 곧 죄’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적용해 봅니다. 만약 음주 자체를 죄와 연관시킨다면, 우리는 실로 엄청난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즉, 예수님의 죄와의 연계성을 따져야 할 상황이 되고 맙니다.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께서 술을 드셨든지 아니든지 예수님과 연관시킬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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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당신께는 그렇다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잔치에 참석한 이들은 거의 모두가 술을 마셨으니까요. 술의 양으로 보아 제법 거나하도록 마셨을 것입니다. 하객들이 마신 포도주에는 예수님께서 추가로 만드신 것도 분명 포함되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주님께서 죄를 짓도록 방조(1차 음주 묵인) 내지 조장(2차 추가 음주환경 조성)하신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객들이 술을 마셨든지 아니든지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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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의 혼인잔치의 이적에서 보이신 예수님의 행적을 본다면, 음주와 죄를 연관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피상적인 음주불가론과는 많이 다릅니다.
○ 두 번째는, 아주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유월절을 잡수실 때 하신 말씀으로서, 오늘날에도 성찬식 때마다 낭독되어야 하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성찬식을 할 때, 목사님들께서 절대로 낭독하지 않고 바로 앞 절에서 끝내버리는, 아주 난처한(?) 구절이기도 합니다(마26:29 ; 막14:25 ; 눅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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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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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마시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이후 마취제인 쓸개 탄 포도주까지 거부하시면서 이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는 주님도 포도주를 당연히 마시셨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로부터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평까지 받으셨습니다(눅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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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당들이 기뻐할 말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가도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지요(미래적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성도와 함께 포도주를 드시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천국의 ‘새것’입니다.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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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당황한 어떤 목사님은 이 구절이 워낙 난처하니까 히브리어와 헬라어 등을 총동원하면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글쎄요, 그 목사님의 신앙심은 존경할 만하지만, 무척 궁색한 설명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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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죄와 연관시킨다면 큰일 납니다. 천국에서의 죄의 문제까지 비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주와 죄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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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목사님들이 중립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석한다면, 위의 해석에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상당수의 목사님들은 이미 그렇게 해석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소 성도들에게 교육한 것과 다르기 때문에 성경대로 솔직하게 말하기가 꺼려질 것입니다. 그래서 위의 말씀들은 결코 설교(교육)에서 다루지를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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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한국교회의 전통적 관념과 다르게, 음주와 죄를 조금도 연관시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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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 복음서에 기록된 음주관련 예수님의 행적/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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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요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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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최초의 이적.
○ 축하객의 수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추가로 만드신 항아리의 숫자는 6개였음. 이는 약 600리터(3드럼)에 이르는 상당한 양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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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도 이 자리에서 음주하셨다고 보아야 하며 축하객들은 이미 제법 마신 후, 추가로 더 마셨다고 봐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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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이 죄(음주)를 방조하거나 조장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따라서 음주 자체를 죄로 확정지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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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마 9:17; 막 2:22; 눅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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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새 포도주의 비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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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의학적 필요에 의해 새 포도주를 만들도록 허락하신 구절로 해석하기는 어려움. 포도주를 담그는 목적은 마시려는 데에 있다고 봄이 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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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눅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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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주나 소주를 입에 대지 아니 한 세례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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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주불가론을 지지하는 성도들의 기대에 맞아 떨어지는 구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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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눅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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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요한과 달리 포도주를 즐기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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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nebibber는 ‘모주꾼’으로서 술을 무척 많이 마시는 사람을 일컬음. 유대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모주꾼으로 보일 정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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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주불가론자들에게는 황당한 구절이나 사실임.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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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눅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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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임. 포도주를 의료용으로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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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치료용으로 포도주를 지참하고 다녔다고 볼 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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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기 위해 가지고 다니다가 치료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함(마취제 내지 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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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눅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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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포도주 사건으로서 또 한 곳의 치료용으로 사용된 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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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에서의 극한 고통을 덜어 드리려고 마취용으로 사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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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눅12:45; 눅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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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성실한 종을 나무라시는 예이며 술 취함을 경계하시는 구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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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취함은 마음이 둔하여 지는 원인이라고 말씀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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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마26:27; 막14:23; 눅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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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찬을 집행하시는 모습. 잔으로 축사하시고 주님의 언약의 피임을 선언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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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에게 나누어 마시도록 명령하심(눅22:17-너희끼리 나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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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취음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그 사실 여부는 크게 중요치 않음. 왜냐하면 이전에는 주님도 술을 종종 드셨기 때문임. 주님은 음주 자체를 결코 죄악시 하지 않으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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